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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일본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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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칠성 . . . . 35회 일치
         유년 시절에 기녀가 되어 “금죽”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였고, 후일 필명이자 아호로 사용하였다. 기생학교에서 수료한 후 한남권번의 기생으로 있다가 [[1919년]] [[3·1 만세 운동]]을 계기로 사회운동에 참여하였고, [[여성주의]]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24년]] [[허정숙]](許貞淑), [[정종명]](鄭鍾鳴), 오수덕(吳壽德) 등과 함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 여성들의 여성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를 창립하였고, [[일본]] 유학 중 1925년 도쿄에서 여자유학생단체인 삼월회를 조직했다.
         해방 후 조선부녀총동맹을 결성해 부위원장이 되고, [[조선공산당]]과 [[민족주의민주전선]]에서 활동하다 [[1948년]] [[4월]]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남북협상]]에 참가한 뒤, 그해 [[8월]] 미군정의 좌익 탄압을 피해 해주 남조선인민대표자 대회차 월북했다가 내려오지 않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1948년]] [[8월]]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48년]] [[10월]]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 1955년 민주여맹 부위원장, 1956년 4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을 역임하였으며, [[1957년]] [[8월]] 제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58년]] 국내파 [[공산주의]]자 및 사회주의자들을 제거할 때 숙청되었다.
         1923년 [[물산장려운동]]에 한때 참여하였다.<ref name="dispose"/> [[1923년]] [[10월 17일]] 조영수, 이춘수(李春壽) 등과 함께 [[대구]] [[명신여학교]] 강당에서 [[기독교]] 등 종교모임의 부녀단체와 여성단체를 본따 [[대구여자청년회]](大邱女子靑年會)를 창립발기하였다. 바로 [[대구여자청년회]] 통과위원에 선출되었다.
         10월 이춘수와 대구여자청년회 창립을 주도하고 집행위원이 되었다. 대구여자청년회의 창립은 당시 종교단체외에 여성운동을 조직적으로 하는 단체가 없던 상황에서 여성대중을 대상으로 조직을 결성한 첫 시도였다.<ref name="dispose"/>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의 부녀단체를 탐방, 연구한 정칠성은 전국적인 여성 단체, 여성 청년 단체 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후 대구여자청년회 집행위원(大邱女子靑年會執行委員)이 되어 [[1925년]] [[3월]]까지 대구여청에서 활동하였다.
         ==== 여성단체 조직 및 여성계몽 운동 ====
         ===== 여성동우회, 각 지역여성단체 운동 =====
         [[1923년]]말부터 [[허정숙]], [[정종명]](鄭鍾鳴), 오수덕(吳壽德) 등과 함께 여자도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가부장제]]의 억압과 남성들의 억압, 제국주의의 억압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였다. 이어 [[허정숙]], [[정종명]] 등과 함께 여성사회운동단체를 조직하려고 여학생과 부인 중에서 동지를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이 중 신분과 배경을 보지 않고 사람을 사귀던 [[허정숙]]과는 특별히 친하게 지냈으며, 이후 정칠성은 [[허정숙]]과 함께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사상을 조선에 소개하는데 앞장섰다.
         [[1924년]] [[5월 15일]] 그는 [[경성]] [[천도교당]]에서 [[허정숙]], [[주세죽]], [[김조이]], [[정종명]], 박원희, 김필애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여성 사회운동 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朝鮮女性同友會)를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으며, 여성동우회 창립발기식의 사회자로 활동했다. 바로 [[조선여성동우회]]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이어 신사회 건설과 여성해방운동에 참여할 여성의 단결 등을 목표로 설정하였고,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사회운동을 벌였다.
         정칠성은 정종명, 오수덕 등과 함께 종래의 소극적 여성운동을 극복하고자 여성해방단체조직에 착수하였다.<ref name="dispose"/> 당시 여성의 사회활동이란 생소한 것이었기에, 정칠성은 일반 부인을 대상으로 직접 회원모집에 나섰다.<ref name="dispose"/> 이후 그는 각지의 순회강연과 칼럼, 기고를 통해 여성 계몽운동에 나섰고, 경성에서 다른 여성단체의 일을 보면서도 [[1925년]] [[3월]]까지 대구여자청년회 집행위원을 겸직하였다. [[1924년]] [[7월 20일]] [[조선여성동우회]] 집행위원으로, 인천노동총동맹회 상무위원(仁川勞働總同盟會常務委員)에 선출, 겸임하였다. 또한 대구여자청년회 집행위원 일도 겸하였다.
         이후 [[일본]]에 건너가 체류 중, [[1925년]] [[3월]] [[도쿄]]에서 무산계급 및 여성의 해방을 목적으로 [[이현경]], [[황신덕]] 등의 유학생들과 함께 [[동경]]의 조선여성단체인 [[삼월회]](三月會)를 조직, 삼월회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3월 8일]] [[대구]]부내 노동공제회에서 [[대구여자청년회]] 주최 [[세계 여성의 날|국제부인데이]] 기념행사에 연사로 초빙되어 '국제부인운동의 의의'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5년]] [[3월 22일]]에는 [[대구청년회관]]에서 경북지역 인사들이 모인 사회주의 연구 사상단체 사합동맹(四合同盟)에 창립발기인으로 참여, 맹원으로 활동하였다. [[3월 31일]] 다시 유학차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도쿄 여자기예학교]]에 복학하였다.
         [[1925년]] [[11월]] [[일본]] 정부에서 가상의 적을 대비하여 각급 중고등학교에 군사훈련 및 각종 군사교육을 실시하자, 정칠성은 군사교육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다. [[11월 7일]] [[홋카이도]]의 소준고등학교 강당에서 일본내 시민단체, 여성단체, 사회주의 운동단체 및 조선인 유학생단체, 삼월회, 일월회(남성 단체) 공동 주최로 열린 [[군사교육 반대 집회]]에 그는 [[삼월회]]의 대표 자격으로 박경희(朴慶姫)와 함께 참여하였다. 그러나 [[일본]]경찰 2백 명이 급히 투입되어 진압하자, 바로 피신하였다.
         [[1926년]] [[7월 7일]] [[경성]]의 [[동아청년회]] 창립에 참여하고 회원이 되었다. 1927년 다시 귀국하여 [[1927년]] [[2월]] [[신간회]]에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신간회]]의 창립멤버가 되었다. 곧 [[신간회]] 경성지회 조직에도 참여하여, [[신간회]] 경성지회 중앙위원과 신간회 중앙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이 되었다. 한편으로 그는 여성단체 조직에 착수하였다.
         [[1927년]] [[4월 26일]]에 [[경성]] 중앙유치원에서 좌우합작의 여성단체인 [[근우회]](槿友會)가 창설될 때 [[유각경]], [[황신덕]], [[김선]], [[허정숙]] 등과 함께 [[근우회]]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운동의 연합체인 신간회의 자매단체로의 결연을 주선하였다. [[4월 28일]] [[근우회]]를 발족되자 [[근우회]] 회원모집부 부원이 되어 [[대구]]로 내려가 홍보, 회원을 모집하고 근우회 경상북도지회 조직을 주관하였다. 정칠성은 근우회가 전국에 지회를 결성할 때 대구지회 결성의 임무를 띠고 파견되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집행위원(당시 21명)을 구성하는 데까지 활약하였다.<ref name="dispose"/>
         [[10월 6일]] [[박원희]]와 함께 [[근우회]] 조사위원 겸 전권위원에 임명되어 [[경성]]에서 [[함흥]]으로 파견되었다. 바로 [[근우회]] 함흥지회를 개설하고, 함경도지역 조사 후 [[10월 6일]] [[함흥]] 오로리의 오로여자상조회(五老女子相助會)에서의 강연을 계획하였으나 함흥경찰에 의해 체포, 강연회 자체가 무산되고 되돌아왔다. 정칠성과 박원희가 경성으로 되돌아간 뒤 [[함흥여자청년회]]와 함흥기독청년회 주최, [[동아일보]], [[조선일보]] 후원 하에 부인문제대강연회가 열리자 연사로 초빙되었다. 그러나 경찰의 방해로 집회가 무산되자 오히려 사회단체의 집회를 방해한다 하여 지식인층의 반발을 불러오게 됐다. [[10월 16일]] 근우회 집행위원으로 대구에 다녀온 뒤 다시 함흥으로 가서 근우회 함경남도 지부 조직에 착수하였다.
         [[1927년]]에 조직된 항일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에서 활동하던 정칠성은 '적연비판, 콜론타이의 성도덕에 대하여 (삼천리, 1929.9)에서 기자가 '콜론타이의 "연애와 성욕은 별문제"이며, 사회운동을 하느라 연애하기 힘든 상황에서 필요에 따라 성욕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 의견을 물었을 때, 정칠성은 "현실을 잘 본 말이외다. 성욕과 연애는 당연히 갈라져야 하겠지요. 그러고 결혼의 자유, 이혼의 자유가 아주 완전하게 없는 곳에서는 그렇게밖에 더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ref name="seoji193">서지영, 《역사에 사랑을 묻다》 (도서출판 이숲, 2011) 193페이지</ref>
         [[1945년]] [[9월]]에 좌익계 여성단체인 [[조선부녀총동맹]]을 결성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그해 [[12월]] [[조선부녀총동맹]] 부위원장에 선출되었고, [[12월]]말 [[모스크바 삼상회의]]가 결정되자 정칠성은 [[박헌영]] 등과 함께 처음에는 [[신탁통치]]에 반대하였으나, 신탁의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찬탁으로 돌아섰다. 이후 찬탁매국노로 몰리자, 테러를 피해 [[대구]]와 [[경성]]과 각지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숨어 다녔다.
         [[1946년]] [[2월]]에는 범좌파 연합 단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이 조직되자, 그 간부가 되었다. 그해 [[2월 14일]]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중앙상임위원 겸 조직부 차장에 피선되었다. 이후 미군정의 좌익 탄압으로 은신처를 마련하여 전국 각지로 피신생활을 하였다.
         [[1948년]] [[4월]] [[남북 협상]] 직전 [[삼팔선]] 이북 지역으로 탈출하였다. [[4월]]부터 [[5월]]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에 남한측 여성단체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였으며, 제1차 남북협상을 마친 뒤 [[서울]]로 귀환하였다.
         [[1948년]] [[6월]] [[황해남도]] [[해주]]에서 열린 제2차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참석하였다. 그해 [[8월]] [[해주]]에서 개최된 남조선인민대표자 대회 참가차 3.8선을 넘어 월북했다가 내려오지 않고 [[북조선]]에 머물렀다. 그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1948년]] [[9월]]에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에 선출되고 [[민주여성동맹]]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48년]] [[10월]]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정칠성이 관여한 단체들은 한결같이 여성 해방과 무산계급 여성에 의한 새로운 사회 건설을 목표로 했다.<ref name="propp"/> 그녀는 남자에게서 그리고 사회의 억압과 인습의 굴레에서 독립하여 한 사람의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 중요하다 하였다. 정칠성은 3.1운동 뒤 화류계를 떠나 사회주의사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1922년 도일하여 일본 도쿄영어강습소에서 수학했다.<ref name="dispose"/>
  • 허정숙 . . . . 28회 일치
         [[일본]]과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다 귀국, [[여성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24년]] [[조선여성동우회]], [[1924년]] [[5월]]의 [[조선여성해방동맹]] 등 여성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했다. [[조선공산당]] 조직에도 참여하여 [[1925년]] [[11월]] [[제1차 조선공산당 사건]]의 관련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가 풀려났고, [[신간회]]와 [[근우회]] 등의 조직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동아일보]]의 기자와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26년]] [[5월]] 도미했으나 이듬해 귀국,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때 여학생들 선동을 이유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1936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 [[민족혁명당]], [[조선독립동맹]] 등에서 활동하였다.
         ===== 사회단체 활동과 계몽 강연 활동 =====
         그는 주로 그가 몸담는 신문, 잡지, 언론기관에 여성해방 이론에 관한 글을 발표하는 한편 강연활동 등을 통해 청년과 여성들에게 사회의식을 심어주고 여론을 환기, 단체를 조직하는 데 주력하였다.<ref name="shinyoung151"/> 그의 주요 강연활동은 3.8 국제무산부인데이를 맞아 3개 여성 단체, 즉 여성동우회, 경성여자청년동맹, 경성여자청년회 연합 주최 강연회를 비롯, 그 밖에도 [[경성]]은 물론 지방 청년단체 등 초청 강연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ref name="shinyoung151"/>
         ===== 여성단체 조직 활동 =====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부인의 경제적 독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던 그는 [[1924년]] 초부터 [[주세죽]], [[박원희]], [[정칠성]] 등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들과 연락, 여성 해방 운동 단체 조직에 착수한다. 허정숙은 여자들이 정당한 인격체로 존중받으려면 남자들에게 의존하거나 기생하려는 습관을 버려야 된다고 역설하였다.
         ===== 여성단체 활동과 동아일보 기자 생활 =====
         [[1925년]] [[1월]] [[화요파]]는 [[경성여자청년동맹]]을 서울파는 [[경성여자청년회]]를 결성했다.<ref name="yeosong182"/> 허정숙은 [[경성여자청년회]]와 [[경성여자청년동맹]]의 창립에도 참여, 가입하여 활동했다. 이후 허정숙은 세 단체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 합심, 협력을 것을 호소하며 통합, 연대를 추진한다.
         [[1925년]] [[1월]] 초 [[경성여자청년동맹]] 결성에 참여하고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해 [[1월]] 여성동우회가 경성여자청년회계와 신사상연구회계의 계파싸움 끝에 분열되었다. 여성동우회의 분열로 허정숙은 [[경성여자청년동맹]]으로 건너갔다. [[1월 17일]] 친경성여자청년회계로 조선여자강습소를 운영하던 [[김현제]](金賢濟)와 [[대한애국부인회]]의 이정숙(李貞淑) 일파, 그리고 [[주옥경]](朱鈺卿) 등 [[천도교]] 신파의 여성운동단체인 [[천도교내수단]](天道敎內修團) 등의 주도로 [[여성해방동맹]](女性解放同盟)이 결성되자 [[여성해방동맹]]에도 창립 발기인이자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허정숙은 분열은 세력의 약화를 꾀한다며 [[경성여자청년동맹]]과 [[여성해방동맹]]의 통합과 협력을 설득하였다.
         [[1925년]] [[3월 8일]] 전 세계 무산자 부녀들의 기념일인 [[세계 여성의 날|국제무산부인데이]](國際無産婦人紀念日) 기념행사에 참석하였다. 3개 여성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 [[경성여자청년동맹]], [[경성여자청년회]] 등의 연합주최로 [[천도교]] 기념관 내에서 열린 기념대강연회에서 그는 [[김조이]], [[박희자]], [[주세죽]], [[박원희]], [[김희자]] 등과 함께 연사로 참석, '[[세계 여성의 날|국제부인데이]]의 의의와 여성운동'이란 주제로 강연하였다.
         허정숙은 러시아와 독일이 [[세계 여성의 날]]을 꾸준히 챙겨오고 있음을 소개하고, 반면에 “우리 조선에서는 한 번도 이 강연 날을 기념치 못하였다. 작년 3월 8일에 기념강연이 있었으나 그 역시 중지되어버리고 우금(于今)까지 아는 중 모르는 중 또 1년을 맞게 되었다”며 애석해하였다.<ref name="gukks">[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7558616 <nowiki>[</nowiki>이영아 여론 女論<nowiki>]</nowiki> 국제 부인 데이]</ref> [[1924년]] [[3월 8일]] 사회주의 예술단체인 염군사(焰群社)에서 이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했으나 경찰의 방해로 중지되었다. (‘국제 부인 데이 기념강연 경찰 금지로 중지’, 『동아일보』, 1924. 3. 8) 그럼에도 여성운동가들은 매년 국제 부인 데이 기념식을 준비했고, 자주 금지조치를 당했다.
         특히 《[[신여성 (잡지)|신여성]]》지에 〈단발호〉를 내어 여성 단발을 주창, 자신은 물론 [[주세죽]] 등 [[여성동우회|여성동우회원]]들의 단발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또한 그는 월급의 대부분을 동지들을 위한 단체 활동비로 썼으며, 그래도 모자라면 부친에게서, 또는 집안의 골동품을 팔아 사용하였다고 한다.<ref name="shinyoung137"/> 그해 [[11월]]에 발생한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조선공산당|조선공산당원]] 전원이 체포되었다. 허정숙 역시 종로 관철동에서 [[종로경찰서]] 형사들에게 검거·투옥되면서 일시 휴직 제의를 사양하고 입사 2개월만에 [[신여성]]지 기자직을 그만두게 된다.
         당대 남성 지식인들은 그녀의 민족적·사회적 활동보다 그녀의 스캔들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1921년]] [[사회주의]] 운동가 [[임원근]]과 결혼했다가 [[1925년]] 남편이 검거된 뒤 송봉우와 동거를 시작하고, [[1929년]] 송봉우가 전향하자 다시 그와 헤어지고 [[중국]] 항일운동단체에 있던 [[최창익]]과 결혼했는데, 이러한 과정들이 남성 지식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임원근]]이 투옥당했을 때 몇명의 남자들과 어울려 자유로운 성관계를 갖기도 했고, [[송봉우]]와 헤어진 뒤에는 [[신일룡]]과도 동거하였다. 이전의 [[나혜석]], [[김명순]] 등에 대한 비판이 쏟아질 때보다는 비판이 다소 누그러졌지만 시중의 편견과 비방은 계속되었다. 허정숙은 자신에 대한 비방이 쏟아지는 것의 원인을 [[유교]] 봉건 잔재 때문으로 해석하였다.
         귀국 직후 그는 [[신간회]]에도 가담했고, [[근우회]]에서 본격 활동하였다. 근우회는 창립 초기 민족협동전선 [[신간회]]의 여성부 형태가 아니라 여성만의 별도 조직으로 출범했다.<ref name="parkeu3466">박은봉, 《한국사 100 장면》 (가람기획, 1998) 346</ref> 이를 당시에는 '성별 조직'이라고 불렀다.<ref name="parkeu3476">박은봉, 《한국사 100 장면》 (가람기획, 1998) 347</ref> 일각에서는 성별 조직을 만들어서 [[민족주의|민족 운동]] 단체의 분열을 촉진시킨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허정숙은 분열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며 이에 대해 해명하였다. 그는 여성만의 조직을 만든 이유를 해명하였다.<ref name="parkeu3476"/>
         [[1938년]] [[11월]] [[옌안]]으로 이주한 직후 허정숙은 화북 지역의 조선인 젊은이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청년 단체 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결성하였다. 그는 매주 청년들의 모임을 만들어 젊은이들을 [[조선독립동맹]]으로 이끌었다. [[1941년]] [[중국공산당]] 안에서 투쟁해오던 [[김무정]]<ref name="yeosong240"/> 을 화북조선청년연합회에 참여시켜 조직을 확장시켰다.
         {{참고|조선신민당|조선독립동맹|북조선인민위원회|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1946년]] [[7월]] [[북조선로동당]]의 주도로 평양에서 개최된 '[[북조선]] [[민주주의]]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회의'에 참석,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발족에 참여하였다. 이후 그는 문화, 선전 사업과 여성 단체 구성 조직 사업에 전념했고, [[소련]]군 철군 시에는 소련군의 환송을 주관하였다. [[1947년]] [[2월]] [[인민위원회|임시인민위원회]]가 정식 [[인민위원회]]로 승격, 발족되자 [[북조선인민위원회]] 선전부장이 되었으며, 이듬해 선전국장을 거쳤고, [[1948년]] [[3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파일:1948년 허정숙.PNG|섬네일|left|140px|[[1948년]] [[남북 협상]]에 참석하여 여성단체를 대표해 축사를 낭독중인 허정숙 (1948.04.10)]]
         {{참고|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김일성]]은 [[1947년]]과 애국가 제정 직후와 마찬가지로 시기가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좀더 기다려 볼 것을 권유했다. [[김일성]]은 허정숙의 건의에 대해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남북연석회의]]를 앞두고 [[애국가]]를 보급했으면 하는 동무의 심정은 안다"며 "그러나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연석회의]]에 참석하는 대표들의 구성이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f name="yuk49"/> 당시 상황에서 [[애국가]]를 내놓는다는 것은 연석회의에 참석하는 남한 정치인들에게 [[통일적 중앙정부]] 수립을 주장해 온 북한의 주장에 의혹을 품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ref name="yuk49"/>
         [[1948년]] [[3월]] 북조선로동당 제2차 당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다. [[1948년]] [[4월]]부터 [[5월]]에는 [[평양시|평양]]에서 열린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남북협상)에 연안파의 한 사람이자 38선 이북 측 여성단체 대표자의 한사람으로 참여하였다. 그해 [[6월]] [[황해남도]] [[해주]]에서 열린 제2차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도 참석하였다.
  • 전희숙 . . . . 22회 일치
         {{동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여자 플뢰레 단체전|플뢰레 단체전]]}}
         {{동메달|[[2006년 세계 펜싱 선수권 대회|2006 토리노]]|플뢰레 단체전}}
         {{동메달|[[2010년 세계 펜싱 선수권 대회|2010 파리]]|플뢰레 단체전}}
         {{동메달|[[2011년 세계 펜싱 선수권 대회|2011 카타니아]]|플뢰레 단체전}}
         {{금메달|[[2006년 아시안 게임|2006 도하]]|[[2006년 아시안 게임 펜싱|플뢰레 단체전]]}}
         {{금메달|[[2010년 아시안 게임|2010 광저우]]|[[2010년 아시안 게임 펜싱|플뢰레 단체전]]}}
         {{금메달|[[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플뢰레 단체전]]}}
         {{동메달|[[2018년 아시안 게임|2018 자카르타-팔렘방]]|[[2018년 아시안 게임 펜싱|플뢰레 단체전]]}}
         {{금메달|[[2009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09 도하]]|플뢰레 단체전}}
         {{금메달|[[2010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0 서울]]|플뢰레 단체전}}
         {{금메달|[[2011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1 서울]]|플뢰레 단체전}}
         {{금메달|[[2013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3 상하이]]|플뢰레 단체전}}
         {{금메달|[[2014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4 수원]]|플뢰레 단체전}}
         {{금메달|[[2015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5 싱가포르]]|플뢰레 단체전}}
         {{금메달|[[2017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7 홍콩]]|플뢰레 단체전}}
         {{금메달|[[2018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8 방콕]]|플뢰레 단체전}}
         {{은메달|[[2003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03 치앙마이]]|플뢰레 단체전}}
         {{은메달|[[2012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2 와카야마]]|플뢰레 단체전}}
         {{동메달|[[2009년 하계 유니버시아드|2009 베오그라드]]|플뢰레 단체전}}
         [[2009년]] FIE 펜싱 세계 선수권 대회 여자 플뢰레 개인 부문에서 결승에 진출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러시아]]의 [[아이다 샤나예바]]에게 패하며 은메달을 획득하였다.<ref name="코리아타임즈2009" /> [[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 아시안 게임]] [[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여자 플뢰레]] 개인전 준결승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남현희]]를 이긴 뒤 결승에서 중국의 리후이린마저 15-6으로 꺾으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단체에서도 금메달을 따 2관왕에 올랐다.<ref name="한겨레2014" /><ref name="연합뉴스2014" />
  • 성재기 (활동가) . . . . 16회 일치
         [[2013년]] 투신 직전 그는 자금난을 겪고 있었다. 그는 정부에 문의해봤지만 일반 시민단체와는 달리 여성단체들처럼 [[여성가족부]]의 관할이라 했고, 그는 [[여성가족부]]의 지원은 거부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3089755 성재기 투신…여성부 한해 예산 얼마길래?] 머니투데이 2013.07.26</ref> 후원금으로만 [[양성평등연대]](구 남성연대)를 운영하면서 '싱글대디 반찬배달', '무료 법률지원 서비스' 등 돈 드는 사업을 이어 가다 보니 재정난에 부닥쳤다. [[양성평등연대]](구 남성연대)는 [[2011년]] [[3월]]부터 [[2013년]] [[5월]]까지 각종 행사 비용 등으로 2억 4670만 원을 썼다. 하지만 후원금 수입은 1956만 원에 불과했다.<ref name="dongki">[http://news.donga.com/3/all/20130729/56716534/1 <nowiki>[기자의 눈/조동주]</nowiki> 男權을 대변한다며 몸던진 비극] 동아일보 2013.07.29</ref>
         * [[2008년]] [[1월 26일]] 남성시민단체 남성연대시절에 [[양성평등연대]](구 남성연대) 창설, 양성평등연대(구 남성연대) 대표에 취임
         [[2000년]]대 초 그는 [[네이버]]와 [[다음]], [[네이트]], [[야후코리아]] 등 포털 사이트와 인터넷에 글을 기고하며 [[여성 단체]]는 수십여개에 달하는데 왜 남성 단체는 없느냐며 남자들 스스로 자기 권리를 찾아 나서야 된다고 호소하였다. [[2002년]] [[1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찾아가 [[대한민국 여성부|여성부]]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였다. 이후 포털과 인터넷의 논객으로 활동하며 [[여성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2004년]]부터 [[2005년]] [[1월]]에는 [[호주 제도]] 폐지에 반대하였다. 남성의 유일한 권리인 친자 확인 권한을 없애는 것은 [[남성성]]에 대한 침해라며 그는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였으나 외면당하였다. 그는 [[호주제]] 폐지에 지지를 보내던 [[한지환 (운동가)|한지환]], [[정채기 (1962년)|정채기]] 등을 비판하였다. [[2006년]] [[1월 2일]] 그는 여성부, 여성계와의 전면전, 투쟁을 선언하고 건립준비위원회 청년동맹을 조직하였다.
         [[2008년]] [[10월 4일]]부터는 [[10월 2일]] 자살한 [[최진실]]의 유가족과, 야구선수 [[조성민 (야구인)|조성민]] 사이에 친권 분쟁이 발생하고, 여성계와 시민단체들은 [[조성민 (야구인)|조성민]]의 친권을 반대할 때 그는 [[조성민 (야구인)|조성민]]이 아이들의 아버지이니 아버지로서의 권리를 존중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2008년]] [[10월 29일]]에는 [[조성민 (야구인)|조성민]] 친권 반대 카페가 개설되자<ref>[http://sports.hankooki.com/lpage/entv/200811/sp2008113020111296010.htm '조성민 친권 반대 카페' 카네이션 달기 운동] 스포츠한국 2008/11/30</ref>, 그는 조성민 친권반대 카페에 찾아가 조성민의 친권을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및 [[네티즌]]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조성민 (야구인)|조성민]]의 아버지로서의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지 않느냐며 항의, 공방전을 벌이기도 했다.
         [[11월 11일]]에는 연예인, 방송인, 국회의원, 시민단체 회원들로 이뤄진 '한부모 자녀를 걱정하는 진실모임'(이하 진실모임)은 11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실에서 조성민의 친권 회복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ref name="bans">[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983074 손숙·허수경 "조성민 친권 절대 반대"] 노컷뉴스 2008.11.11</ref> '진실모임'은 여성학자 [[오한숙희]]와 [[호주제폐지시민모임]] 대표 [[고은광순]] 주도하에 배우 [[손숙]], [[김부선]], [[권해효]], 방송인 [[허수경]], [[민주노동당 (대한민국)|민주노동당]] [[이정희 (1969년)|이정희]] 의원, [[공선옥]] 작가, 만화가 [[장차현실]] 등 각계 인사들이 참여했다.<ref name="bans"/> 성재기는 [[11월 11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건물 앞에서 [[조성민 (야구인)|조성민]]의 친권은 정당하다며 1인 시위를 하였다. 당일 오전 11시 18층 외신기자실에 들어가려다가 제지당하고 외부로 축출당했고, 그는 광화문 프레스센터 입구 밖에서 준비한 성명서를 낭독하였다.
         [[7월 28일]] 성재기는 [[남성연대]] 회원 10여 명과 시민들을 데리고 [[인성동]] [[제천여성도서관]]에 두번째 진입을 시도하다가 제천시 시민단체 회원들에 의해 입구에서 봉쇄당했다.<ref>[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511020 "여성 전용 없애라"…남성들 역차별 '반란'] KBS 뉴스 2012.07.28</ref>" 도서관과 지역 단체들은 부지 기증자의 뜻에 따라 여성 전용도서관이 건립됐다며 기계적 평등만 내세운 것은 잘못이라고 반발하였다.
         ==== 여성단체에 토론 제안 ====
         [[2012년]] [[12월 20일]]에는 [[한국]]의 각 여성단체 대표들에게 'MT 초청장'을 보냈다. 성재기는 [[12월 20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12월 29일]] 남성연대 1박2일 MT 갑니다. 전국여대총학생회, 여성단체, 여초카페 등에 초청장을 보냈습니다"며 "여성대표들과 올바른 남녀평등을 위한 토론을 할 것이며 아프리카, 곰TV로 생중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성단체들은 그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12월 29일]] [[여의나루]] 역에서 집결하여 MT를 다녀왔다. 그러나 여성단체들은 그의 초청에 거부했고 [[남성연대]] 활동에 호의적인 일부 여성들이 참여하였다. [[12월 24일]]부터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서신, 연락을 통해 여성부 폐지를 거듭 제안하였다.
         한편 다른 시민단체에서 그에게 함께 연대할 것을 제안했지만 그는 답변을 회피했다.<ref>[http://news.donga.com/3/all/20130808/56924481/1 <nowiki>[지금 SNS에서는]</nowiki>SNS로 뜨고 진 성재기] 동아일보 2013.08.09</ref>
         10여 명의 자원봉사자로 현장 활동, 홍보, 문건 작업 등에 문제가 있다고 본 그는 [[2013년]] [[3월]]부터 공지, 유급 직원을 고용하였다. 그러나 유급 직원이자 [[일베저장소]] 회원이었던 최모는 그해 [[5월]] 자신이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일베저장소]]에 올리기도 했다. 이 내용에는 "[[양성평등연대]](구 남성연대)에서 털리고 나온 애들이 뭉쳐서 [[남성]] [[인권]]운동 단체를 만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 로힝야 . . . . 13회 일치
         미얀마에서는 '벵갈리'라고 부르며 방글라데시 출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를 꺼려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유엔난민기구가 인정하는 로힝야 난민이 3만명 가량 있으며, 유엔 난민촌 주위에는 미등록 난민 20만명 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2012년 방글라데시는 [[국경없는의사회]] 등 국제 구호단체의 활동이 난민 유입을 증가시킨다는 이유로 사업 중단을 요구했으며, 국경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심지어 비슷하게 방글라데시-미얀마에 분포하는 소수민족인 라카잉 족도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로힝야를 싫어한다. 라카잉 족은 불교도이다. 미얀마에서 분리독립을 노리는 라카잉 족 계열 아라칸 무장단체가 버마족 중심의 정부와 협력해서라도 로힝야를 때려잡겠다고 생각할 정도.[[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37086.html 참조]]
         2012년에는 라카인주에서 불교도 라카인족과 로힝야족이 충돌하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로힝야 남성이 라카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소문 탓에 촉발되어 200명 이상이 숨졌으며, 희생자는 대부분 로힝야였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는 보고서를 출판하여 이 사건을 비판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미얀마 정부와 군부, 불교 승려들이 라카인족이 로힝야를 살해하도록 선동하고 방조하는 [[인종청소]]를 저질렀다.
         2016년 10월 9일,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 마웅토 등의 국경 검문소가 무장괴한의 공격을 받아 경찰관 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얀마 군부는 이를 로힝야 무장세력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군사작전으로 반격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수십명~100여명의 사망자가 있었고, [[성폭행]] 사건과, 다수의 난민이 발생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위성사진을 분석하여 진압과정에서 1,200채의 민가가 불에 탄 것으로 분석하였고, 유엔은 난민의 수가 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 무장단체 결성 ===
         국제분쟁 전문 연구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은, 2016년 학살을 촉발한 무장괴한의 경찰 초소 습격 사건의 배후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한 로힝야 족의 지휘로 이루어졌다고 분석했다. 초소 습격 사건의 배후로 분석된 '하라카 알-야킨'(Harakah al-Yaqin, 믿음의 운동)을 조사하여 미얀마 내외에서 활동하는 단체 회원 6명과 인터뷰하여,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있는 로힝야 망명 위원회가 이 단체를 감독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하라카 알-야킨이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에 등장하는 지도자는, 파키스탄 카라치의 로힝야족 이주자 집단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이주한 '아타 울라'라고 분석되었다. 이 단체는 로힝야 남성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에서 활약시켜 게릴라전 경험을 쌓게 했고, 이렇게 20여명 내외의 '교관'이 2년 이상 수백 명에게 무기 사용법과 사제폭탄 제조기술을 전수했다고 한다.
         국제위기그룹의 보고서는 로힝야 무장단체가 국제무장세력과 연관이 있으나, 미얀마 내 불교도를 공격대상으로 삼는 것보다는 차별을 끝내고 시민권을 확보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종교적 주장을 펼치는 단체이고 국제 지하드 조직과 연결이 있어 언제나 목표가 바뀔 수 있으며, 미얀마 정부가 군사작전에만 치중하지 말고 로힝야의 고통을 외면하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분석도 있는데, 미얀마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1980∼1990년대 방글라데시 인근 접경지대에서 활동했던 무슬림 무장단체 '로힝야 연대기구'(RSO)와 연계한 신생단체 '아카 물 무자헤딘'이 배후이며 파키스탄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은 하비드 투하르(일명 아르푸 하마드 줄루니)가 리더이고, 그를 돕는 12명의 극단주의자가 로힝야 주민을 선동하고 훈련시켜 폭동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불교 승려들로 이루어진 '마 바 타'(Ma Ba Tha, 민족종교 보호를 위한 애국연합)라는 단체가 로힝야 탄압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로힝야 보트피플이 사망한 사고에 대해서 미국 대사관이 논평을 내며 '로힝야'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로힝야 같은 종족은 없고 그런 말을 할거면 이들을 다 데려가라고 주장했다.
  • 아스팔트 우파 . . . . 9회 일치
         정치(?) 용어. 2010년대 대한민국 재야 정치단체(?)에서 나타난 용어이다.
         '아스팔트'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된 길거리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길거리에서 [[시위]] 등의 활동을 주로 벌이는 우파 단체를 뜻하는 말이다.
         이 단어는 제도정치권의 보수 정당들과, 재야 정치단체의 차별화를 노리고 나타났다. 소위 '아스팔트 우파'들은 보수 정당이 진보 정당과 타협하고 투쟁정신이 없다고 비판하였으며, 이들을 '웰빙 보수'라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을 아스팔트 우파라고 칭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의 활동은 제도권 정당에 소속된 특정 정치인의 하부조직이나 다름없었다.
         과거에도 대한민국에 우파 정치단체가 존재하기는 했으나, 현존하는 아스팔트 우파와는 크게 관련성이 없다. 제1공화국 시기 [[자유당]]과 연계된 [[이정재]]의 [[화랑동지회]] 등 [[정치깡패]] 부류의 조직이 존재했으나, [[조직폭력배]]로서 처단, 와해되어 현재의 아스팔트 우파들은 이러한 조직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군사정권 시기에 정부에서는 우익성향을 가진 관변단체를 만들었으나, 민주화 이후로 이들은 대부분 몰락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못했고 현재의 조직들은 이러한 단체들과의 연관성이 모호하다.
         [[대한민국]]에서 '아스팔트 우파'를 자칭하는 단체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에 주로 조직되고 나타나게 되었다. 주로 사안에 따라서 정부나,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는 시위 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정부와 독립적인 단체로 위장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정계의 압박에 따라서 [[전경련]] 등에서 지원을 받는 등, 이면에서는 우파 정치인들의 지원과 지시를 받고 있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0656.html (참조)]]
         일본에서는 비슷한 말로 '가선 우익'이라는 말이 있다. 가두선전을 주로 하는 우익 단체라는 뜻이다.
  • 최병철 . . . . 9회 일치
         {{동메달|[[2007년 세계 펜싱 선수권 대회|2007 상트페테르부르크]]|플뢰레 단체전}}
         {{은메달|[[2002년 아시안 게임|2002 부산]]|[[2002년 아시안 게임 펜싱|플뢰레 단체전]]}}
         {{은메달|[[2006년 아시안 게임|2006 도하]]|[[2006년 아시안 게임 펜싱|플뢰레 단체전]]}}
         {{동메달|[[2010년 아시안 게임|2010 광저우]]|[[2010년 아시안 게임 펜싱|플뢰레 단체전]]}}
         {{금메달|[[2012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2 와카야마]]|플뢰레 단체전}}
         {{동메달|[[2007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07 난퉁]]|플뢰레 단체전}}
         {{동메달|[[2008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08 방콕]]|플뢰레 단체전}}
         {{동메달|[[2010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0 서울]]|플뢰레 단체전}}
         {{동메달|[[2011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1 서울]]|플뢰레 단체전}}
  • 프로 스포츠 . . . . 9회 일치
         프로 스포츠에서는 [[경기]]를 보러 오는 [[관객]]에게 징수하는 입장료 수익이나, 선수나 해당 스포츠를 주제로 한 상품의 판매, [[스포츠 마케팅]] 광고 효과를 노리는 광고 스폰서 등으로 수익을 얻어, 영리적으로 스포츠 단체를 운영한다.
         권투의 경우도 권투경기를 주관하는 주요 단체에 소속되지 않았다 뿐이지, 올림픽 권투경기를 보기 위해서 올림픽 관람료를 내야함은 물론이고 올림픽 성적에 따라 각 국가의 올림픽 관계 단체로부터 상금이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개중에는 스폰서가 붙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이전과는 달리 단순히 '돈을 번다'는 것 만으로는 프로 스포츠와 아마추어 스포츠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각 종목과 대회를 주관하는 단체가 규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종목에 따라서 상황이 상당히 다르지만,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대회와 그렇지 않은 대회는 어느 정도 방향성에서 차이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프로 종목은 흥행 때문에 규칙을 변경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같은 경기의 아마 종목과 차별성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프로 복싱과 아마 복싱은 프로 단체와 아마 단체에서 스포츠의 '규칙'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공통점은 있으나 동시에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경기가 되어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보호구로 헤드기어를 장착하는 아마 복싱은 프로복싱처럼 흥행에 도움을 주는 '화끈한 [[KO]]'를 내놓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 때문에 포인트와 기술 위주의 운영을 강요받게 된다. [[농구]]의 경우 [[NBA]]는 [[쿼터제]]나 [[덩크슛]] 같은 흥행 요소를 도입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프로 스포츠 대회에 참가하는 구단과 선수들은 영리를 추구하지만, 정작 이를 운영하는 단체들은 대개가 비영리조직인 경우가 대다수다. 매년 열리는 대회중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UEFA 챔피언스 리그]]라든가 [[NFL]] [[슈퍼볼]]등은 모두 비영리단체가 운영한다.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같이 영리단체가 운영하는 대회가 최근에는 매우 드문 편.
  • 한규복 (1881년) . . . . 9회 일치
         [[1902년]]에는 [[와세다 대학]]에 다니면서 [[일본]]의 [[유도]]도장인 [[강도관]](講道館)에 다녔다. 공승화전개(일본 工勝花雷介)의 《비록일본유도(秘錄日本柔道)》의 기사와 일본강도관에 조회한 바에 의하면 [[1902년]] 한규복 등이 [[강도관]]에 입문하여 [[유도]]를 배운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f>김정행, 《무도론》 (대한미디어, 1997) 129페이지</ref> 그는 [[1902년]] [[8월]]부터 [[유도]]를 배웠다고 한다.<ref>이학래, 《한국유도발달사》 (보경문화사, 1989) 37페이지</ref> 일본의 유도 전승에 자극받은 그는 귀국 후 [[조선]]의 [[유도]] 단체를 지원하는 한편 상소를 올려 [[택견]] 관련 인물과 유파를 찾아 지원해줄 것을 정부에 상주하기도 했다.
         [[1910년]] [[10월 6일]] [[한일 합병 조약]] 체결 이후 다시 조선총독부 [[고등관]] 7등에 임용,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1臨時土地調査局) 감사관(監査官)에 임명되었다. 이후 임시토지조사국 측량과장과 정리과장을 거쳐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서 감사담당관이 되었다. [[1913년]] [[1월]] 총독부 군수가 되어 [[경상남도]] [[진주군|진주]][[군수]] [[고등관]]6등(晉州郡守 高等官6等)이 되고, [[경상남도]][[참여관]]을 겸직하였다. [[1914년]]부터 [[1915년]]까지 [[경상남도지방토지조사위원회]] 조사위원을 역임했다. 그밖에 [[농업]] 단체인 [[조선농회]] 경상남도지회에 상의원으로 가입하였다. [[1916년]]과 [[1917년]] [[경상남도지방토지조사위원회]] 조사위원에 재위촉되었다.
         [[1926년]] [[8월]]에 다시 도지사로 승진, [[8월 14일]] [[충청북도]]도지사가 되고 [[1929년]] [[4월]] [[고등관]]1등(高等官1等)으로 승급되었다. [[1929년]] [[11월 28일]] [[황해도]][[도지사]]로 부임하였다. [[1930년]] [[1월 24일]] [[황해도농민회]] 회장에 임명되었다.<ref>조선총독부 관보 1930년 01월 24일자</ref> [[1930년]] [[2월]] [[황해도]] 도지사에 재임명된 뒤 [[1933년]] [[4월 7일]]에 사직서를 내고 퇴직했으나 그해 [[6월 4일]] [[조선총독부 중추원|중추원]] [[칙임관]]대우 [[참의]](中樞院勅任官待遇參議)에 임명되었다. 중추원 참의로 재직하면서도 그는 수당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업인으로 활동하면서 경성부 교화단체연합회 서부교화구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1934년]] 중추원 참의에 재선되었다. 특히 [[태평양 전쟁]] 기간 중 [[흥아보국단]], [[임전대책협의회]], [[조선임전보국단]], [[국민동원총진회]] 등 여러 전쟁 지원 단체에 적극 가담했다.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던 그는 [[1926년]]부터 [[1930년]]의 선전(鮮展)에서 4회 걸쳐 수상하였다.
         ==== 기업, 사회 단체 활동 ====
         [[1933년]] [[7월 21일]]에는 중추원 시정조사위원회 학예부장이 되었다. [[10월 21일]]에는 소작농심의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34년]] 경성부 교화단체연합회 서부교화지구위원장(京城府敎化團體聯合會 西部敎化地區委員長)이 되었다. [[1934년]] [[7월 14일]] [[금융]]단체의 연합회인 [[금융조합연합회]] 창립에 참여, 자문상담역<ref>"금조연합회, 자문기관 설치", 조선중앙일보 1934년 07월 22일자 4면</ref>에 위촉되었다. [[7월 21일]] [[금융조합연합회]] [[경기도]]지역 참여에 임명되었다. [[1934년]] 여름 홍수로 [[조선]] 삼남 지방에 수해가 심해지자, 그해 [[8월 30일]] [[조선총독부]]에서 [[치소조사위원회]]를 설치할 때 그는 민간측 위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묘소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서초동([[1973년]] [[서울시]] 영동출장소로 편입되었다가 현 [[서초구]]로 편입)에 부인 평양조씨 조인옥, 김해김씨 김학인과 합장되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중추원, 도지사, 도 참여관 부문,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중추원, 친일단체 부문에 각각 선정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제목=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 오은석 . . . . 8회 일치
         {{금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단체 사브르]]}}
         {{동메달|[[2013년 세계 펜싱 선수권|2013 부다페스트]]|단체[[사브르]]}}
         {{은메달|[[2006년 아시안 게임|2006 도하]]|단체 [[사브르]]}}
         {{은메달|[[2010년 아시안 게임|2010 광저우]]|단체 [[사브르]]}}
         '''오은석'''(吳恩錫, [[1983년]] [[4월 2일]] ~ )은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이다. [[런던]]에서 열린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 [[구본길]], [[김정환 (펜싱 선수)|김정환]], [[원우영]]과 함께 단체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대한민국 펜싱 역사상 처음으로 나온 단체전 금메달이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392494 '14초의 찌르기' 오은석, 金 찌른 비장의 '히든카드'], OSEN, 2012년 8월 4일.</ref> [[한국방송공사|KBS]]의 리듬체조 해설가인 [[김윤희 (체조 선수)|김윤희]]와는 부부관계이다.
         {{올림픽 펜싱 남자 단체 사브르 금메달리스트}}
  • 현주엽 . . . . 8회 일치
         {{금메달|[[2002년 아시안 게임|2002 부산]]|단체전}}
         {{은메달|[[1994년 아시안 게임|1994 히로시마]]|단체전}}
         {{은메달|[[1998년 아시안 게임|1998 방콕]]|단체전}}
         {{금메달|[[1997년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1997 리야드]]|단체전}}
         {{은메달|[[1997년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1995 서울]]|단체전}}
         {{은메달|[[1999년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1999 후쿠오카]]|단체전}}
         {{은메달|[[1997년 동아시아 경기 대회|1997 부산]]|단체전}}
         {{은메달|[[1992년 FIBA 아시아 U-18 선수권 대회|1992 베이징]]|단체전}}
  • 김보름 . . . . 7회 일치
         {{은메달|[[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2017 삿포로]]|단체 추월}}
         {{금메달|[[2011년 세계 주니어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2011 세이내요키]]|단체 추월}}
         {{금메달|[[2012년 세계 주니어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2012 오비히로]]|단체 추월}}
         [[평창올림픽]] [[2018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단체 추월|여자 단체 추월]]에서 [[박지우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박지우]], [[노선영]]과 함께 출전해서 준준결승에서 7위로 탈락했다. 그러나 이후 2월 24일의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018년]] [[2월 19일]] [[2018년 동계 올림픽]] [[2018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단체 추월|여자 단체 추월]]에 김보름, [[박지우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박지우]], [[노선영]]이 출전하였다. 경기가 시작되고 후반부에서 [[노선영]]이 김보름, 박지우에 비해 점점 뒤쳐졌다. 하지만 팀 경기인 만큼 팀워크가 중요시되는 종목이라 세 선수 같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김보름, 박지우는 노선영을 뒤로 한 채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 중 "마지막에 어.. 네.. 그 뒤에 조금 저희랑 격차가 벌어지면서 네.. 기록이 조금 아쉽게 나온 거 같아요."라는 발언을 하여 노선영 선수를 지목한 것 같은 발언을 하여 논란을 빚었다.<ref>{{뉴스 인용 |저자= 박재덕|제목=인터뷰 직후 인스타그램 비공개한 김보름 선수…무슨 일?|url= http://news.joins.com/article/22379572|뉴스= 중앙일보|출판사= |위치= |날짜= 2018-02-19|확인날짜= 2018-02-13}}</ref> 2018년 2월 20일 오후 11시 53분, 그와 관련된 국민청원이 40만명을 돌파했다.<ref>{{웹 인용|url=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42600|제목=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한 처벌을 청원합니다|출판사=청와대 > 국민청원 및 제안|날짜=2018-02-19|확인날짜=2018-02-25}}</ref>
  • 김시진 . . . . 7회 일치
         * [[KBO (단체)|KBO]] 경기 감독관 (2008년)
         * [[KBO (단체)|KBO]] 경기 운영위원 (2017년 ~ 2018년)
         * [[KBO (단체)|KBO]] 기술 위원장 (2018년 ~ 현재)
         '''김시진'''(金始眞, [[1958년]] [[5월 8일]] ([[1958년]] [[음력 3월 20일]]) - )은 전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이자, 현 [[KBO (단체)|KBO]]기술위원장이다.
         === [[KBO (단체)|KBO]] 위원 시절 ===
         그는 감독에서 물러난 뒤 [[2008년]] 한 해 동안 [[KBO (단체)|KBO]]의 경북 포항 감독관으로 재직하였다. 2017년부터 [[KBO (단체)|KBO]]의 경북 포항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 이갑성 . . . . 7회 일치
         이와 같은 이갑성의 논란은 [[민족문제연구소]]나 한겨레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되다. 2005년 3.1절 특집 SBS 뉴스추적 "누가 변절자인가" 편에서는 이갑성의 친일의혹을 면밀히 검증한 결과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민문연에서 제시한 것들도 근거가 희박한 것들이 많고, 이갑성이 광복 이후 우익계열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좌익단체로부터 집단적인 음해를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ref>{{뉴스 인용
         당시 조선에는 여러 정당, 사회단체가 생겼다. 이갑성은 [[1971년]] [[12월 9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해방이 되니까 왜 그리 많은 정당이 생기는지 한심한 상태였다. 그때가 언젠지 모르나하지 중장을 만나 등록된 정당이 몇개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74개라고 대답합디다"라는 것이다. [[한민당]]의 창립 발기인이었던 그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정부가 선후에라야 정당이 있는 법이지 독립도 정부도 아직 안섰는데 정당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1945년]] [[10월]] 우후죽순 생겨난 정당, 단체들을 하나로 모을 목적으로 정당통일기성회를 조직했고, 수십개의 단체들 중 뜻이 맞거나 성격이 비슷한 단체들은 통합되었다.
         [[1953년]] 집권당이던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의 최고위원과 당 정무부장이 되었고, 정·부통령 선거에 [[부통령]] 후보로도 출마하였다. [[1953년]] [[3.1 운동]] 관련 단체인 민족대표 33인유족회의 회장이 되고, 국산부흥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족청계가 숙청된 뒤 [[이승만]]의 특별 부탁으로, 혼란에 휩싸인 자유당을 재건하기 위한 8인 재건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이 되어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정무부장(政務部長)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기붕]] 계열과 주도권을 두고 암투를 벌이던 중 [[이기붕]]계열에 의해 숙청되어 당의 실세에서 밀려나게 된다.
         [[1960년]] [[4월]] [[이승만]]이 하야하자 야인으로 물러났다가, [[윤치영]], [[임영신]], [[임병직]] 등과 함께 우익 단체를 지도하였다. [[1961년]]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나자 혁명을 지지 하였고, [[1962년]] [[건국훈장|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 장세용 . . . . 7회 일치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20년만에 탄생한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TK 기초자치단체장'''[* 당시 경북 울진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의 [[신정]] 후보가 [[한나라당]]의 전광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포항시]]장으로 당선된 [[박기환(정치인)|박기환]] 전 시장을 포함하면 3번째 사례이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강하였기 때문이고 현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부패 스캔들 사태]]와 마약, 사기 등 박근혜와 박지만, 박근령 등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식들이 박정희 사망 이후에 저질러온 악행으로 인해 그 신화는 치명상을 입었다.[* 현재 박근혜가 정치적으로 파멸해버린 상황에서 박정희를 추종하는 친박 등 한국내 보수 우익 세력들이 박근혜의 친동생들이자 나머지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의 자녀들인 박지만이나 박근령을 새로운 친박 세력의 지도자로 정계로 영입하거나 세우지 못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박근령과 박지만 모두 사기, 마약 등 범죄 전과를 가진 전과자의 신분에다 과거에 행실이나 성품 등 여러 부분에서 정치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인물들로 박근혜가 몰락하기 이전부터 드러났기 때문에 친박계로서도 이들을 정계로 불러들이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렇다고 나머지 박정희-육영수 일가의 다른 일가족이나 친척들은 언제 오늘 내일 할지 모를 정도로 나이가 너무 많거나 인지도가 워낙 낮아서 박근령이나 박지만보다 내세우기 더 힘든 실정이다. 현재 대한애국당이나 신 새누리당, 박사모, 어버이연합 등 주류 친박 단체들과 친박 성향의 극우 원외 정당들이 박지만과 박근령을 기피, 거부하며 박근혜의 석방과 사면을 요구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나버린 박근혜와 70년대 총탄에 암살당한 그들의 부모인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특정 정당이 6선이나 한 지역이었지만 민주당 소속의 장세용 시장이 당선되며 그 신화도 마침표를 찍었다고 볼 수 있다. 후술되어 있지만 선거 구조가 민주당계로 유리하게 진행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민주당계의 시의원이 전원 당선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박정희]] 신화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현실적으로 1000억 넘게 들어가는 박정희 예산은 구미시에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미시의 18년 기준 1년 예산은 1조다. 비록 1000억이 1년만에 집행된건 아니지만 적어도 1년에 수백억씩 사용되기는 했고 실제 구미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 시청 새마을과를 시민사회단체지원과로
         7월 2일, 시정 첫 날부터 친박단체가 구미시청 앞에서 새마을운동 사업 재검토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69&aid=0000311116|#]]
         시장에 당선은 성공했으나 도지사, 국회의원 2명, 시의회의장 · 부의장 · 상임위원장 모두 자한당 소속으로 홀로 더민주당인 장시장으로 대립시 시정에 많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자치단체장-기초의회의장 소속이 [[수성구|어디]]하고 대비된다.-- [[http://www.dk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307|야당 의원에게 포위된 장세용 구미시장 고민 깊어지나]] [[http://www.h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62459|구미시의회, 8대 원구성 한국당 일당체제로 완료]]
          * TK에서, 그것도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비록 기초자치단체장이라고 해도 '''민주당 당적으로 한 번만에 당선된 기적을 일으켰다.''' TK 지역 타파의 아이콘인 [[김부겸]] 장관도 두 번의 낙선 이후 세 번째 도전만에 대구에 민주당 당적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주 놀랄 만할 일이다.[* 물론 상대가 경기도지사에서 도지삽니다 발언을 쏟아낸 김문수였고, 당시 새누리당이 대구를 자기들의 표밭이라고 대충신경쓴 덕분이기도 하지만.] 물론 자유한국당의 공천에 반발해서 무소속으로 뛰쳐나온 보수 성향 김봉재 후보가 9.5% 정도, 범야권인 [[바른미래당]] 유능종 후보가 또다시 7.5%를 들고 나르면서 (비록 TK긴 해도) 1여3야라는 역대급 꿀조건이 형성되었다는 것도 고려하긴 해야 한다. 참고로 '''[[김해영|본인도 당선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강원도 . . . . 6회 일치
         [include(틀: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
         [include(틀:강원도의 기초자치단체)]
         2016년 현재 강원도 내 지방자치단체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스포츠 팀으로는 [[K리그]]의 [[강원 FC]][* 메인 연고지는 [[강릉시]]이며 가끔 [[춘천시|춘천]]과 [[원주종합운동장|원주]]는 물론 [[알펜시아 리조트|평창]]에서도 홈경기를 치른다.]와 [[한국프로농구]]의 [[원주 DB 프로미]] 등이 있다. [[KBO 리그]]의 경우 과거 [[삼청태현|인천광역시를 제1연고지로 삼았던 팀들]]의 광역연고권에 강원도가 포함된 적이 있고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수원야구장]]이 세워지기 전인 1980년대 초·중반에는 [[삼청태현|삼미, 청보, 태평양]]의 홈경기가 춘천야구장에서 분산 개최된 적도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1982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치른 공식 홈경기 장소도 [[숭의야구장|인천]]이 아닌 춘천이다. 물론 이 때는 [[숭의야구장]]이 공사 중이어서 춘천에서 경기를 연 것이다. 이 때 야구 경기가 열렸던 춘천야구장은 철거되었고 [[의암 야구장]]이 그 대체 성격으로 완공되었다.] 현재는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각각 영서지역 고등학교(강원고, 원주고)와 영동지역 고등학교(설악고, 강릉고)들을 대상으로 신인 1차 지명권을 갖고 있지만 홈경기 개최 권한과 신인 지명권 관할 지역은 엄연히 별개의 사안이다. [[WKBL]]에서는 [[아산 우리은행 위비|우리은행 농구단]]이 오랫동안 춘천 연고팀으로 있었지만 2016~2017 시즌부터 돌연 [[아산시]]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강원도 연고의 농구팀은 [[원주 DB 프로미]]만이 남게 됐다.
         타 [[광역자치단체]]와는 달리 [[거점국립대학교]]가 압도적인 대입성적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여느 광역단체보다 수도권이 가까운 편이기도 하고 ITX-청춘과 KTX 경강선 개통으로 교통이 좋아진 요인과 90년대 이후에 가속화 된 [[인서울]] 대학 선호 현상으로 상위권 수험생들이 가까운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하는 현상을 막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거점국립대학교]]라는 특성이 있어서 인서울 진학 대신 강원대로 진학하는 강원도 학생들이 조금은 있다.] 현재는 춘천, 원주의 도시간에 각각 [[강원대학교]],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어서 우수한 신입생과 정부의 재정 지원을 나눠 먹고 있는 상황이다.
         [[분류:대한민국의 행정구역]][[분류: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분류:강원도]]
  • 국제복싱기구 . . . . 6회 일치
         [[미국]] [[플로리다]]에 본부를 두고 있는 프로복싱 단체. 약칭 IBO.
         역사가 짧아 프로복싱 주요 4개 단체(WBA·WBO·WBC·IBF)에는 크게 밀리는 마이너 단체이다. 하지만 본부가 있는 미국이 프로복싱이 활발하여, 프로복서로서 경력 닦기의 일환으로서 IBO 타이틀에 도전하는 선수가 많다. 패전이나 반납으로 타이틀을 잃은 선수가 IBO 타이틀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보니 의외로 유명한 선수가 이 단체를 거쳐갔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나 [[매니 파퀴아오]]도 한때 이 단체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이러다보니 타이틀이 공석이 되어 있는 때도 많은 편.
         1990년에 플로리다에서 설립되었다. 설립자는 에드워드 레빈, 그 아들 제레미가 부회장으로서 세습을 준비하고 있다.--이런 단체 세습하든 말든--
  • 박신혜 . . . . 6회 일치
         박신혜는 매년 팬미팅 수익금을 현지 NGO나 사회단체에 기부해오고 있다. 2007년, 박신혜는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의 순수제작비를 제외한 작가, 연출자, 연기자들의 원고료와 연출료 및 출연료 전액 등의 수익금을 NGO 단체를 기부하는 것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원고료-출연료 기부...첫 도네이션 극 방영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006327|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진도 |날짜 = 2007-05-14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2년에는 한국 공식팬클럽 ‘별빛천사’와 함께 한 한국 팬미팅 티켓 판매금 전액을 팬들과 대표적인 [[NGO]] 단체 ‘기아대책’에 기부하며, 박신혜가 봉사를 다녀온 아프리카 가나의 별빛 천사 마을을 위해 후원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노래선물, ‘팬 위한 노래’ 직접 작사한 곡 ‘최초 공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8&aid=0002231659|출판사 =리뷰스타 |저자 =김숙희 |날짜 = 2012-02-20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7월,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의 후지TV 방송을 기념해 [[정용화]]와 함께 7월 15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팬미팅 행사를 성공리에 마쳤고, 팬미팅 수익의 일부를 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 동일본대지진의 지원금으로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정용화, '넌 내게 반했어' 日 팬미팅 수익금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236717|출판사 =스포츠조선|저자 =김표향 |날짜 = 2012-07-17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3년 일본 팬미팅 후에는 기아대책 일본지부에, 필리핀 팬미팅의 수익금도 현지에 되돌려 한류의 이미지 제고에 앞장서오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中 반려동물 성금 기부… 경시풍조에 경종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056438|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이현아 |날짜 = 2015-04-05 |확인날짜 =2015-04-07 }}</ref> 같은 해 1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제작발표회에서 팬들에게 받은 쌀 화환을 나눔의 집에 기부했고, 같은 해 2월, 한국 팬미팅 수익 전액과 일본 팬미팅 수익 일부를 기아 대책에 기부했다. 4월에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CGV 스타리움에서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쇼케이스 행사에 참석한 박신혜를 응원하기 위해 일본 팬클럽과 공식 팬클럽 회원들은 쌀 화환 520kg과 공식 팬클럽은 '별빛천사는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응원합니다' 등의 메시지를 적은 쌀 화환을 보내고, 이날 받은 쌀 화환 520kg은 박신혜가 지정하는 기부처로 전달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쌀 화환 520kg 어려운 이웃에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330294|출판사 =조이뉴스24 |저자 =권혜림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6월 24일,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대사와 해설 자막, 시각장애인을 위시·청각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함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제작한 배리어프리 버전 녹음을 진행했고, 박신혜는 영화의 앞부분에 내레이터로 재능 기부에 참여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박신혜, 시청각 장애인 위해 재능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48112|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김미리 |날짜 = 2013-06-24 |확인날짜 =2013-09-01}}</ref>
         박신혜는 또한 2011년부터 기아대책 홍보대사로 활동, 서부 아프리카 가나에 있는 결연아동 아반네를 결연후원 해오고 있으며 팬들과 해외 빈곤국에 센터 세우는 일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팬과 함께 봉사활동 나선 별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196660|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 =김원겸 |날짜 = 2014-04-08 |확인날짜 =2014-04-09}}</ref> 국내외 팬들과 전 세계 빈곤국가 아이들의 교육적, 정서적 지원을 위한 ‘별빛천사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1호 센터로 서부 아프리카 가나 ‘신혜센터(Shin Hye Center)’가 2013년 11월 완공되어 5백여 명의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기아대책 홍보대사 박신혜, ‘러브백’ 특별행사 참여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405291628173210|출판사 =뉴스엔 |저자 =김찬미 |날짜 = 2014-05-29 |확인날짜 =2014-05-30}}</ref> 2014년에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위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5,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189349|출판사 =매일경제 |저자 =이슈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ref><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stoo.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42515493577725|출판사 =스포츠투데이 |저자 =김은애 |날짜 = 2014-04-25 |확인날짜 =2014-04-26 }}</ref> 또한 자신의 SNS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노란리본 사진으로 변경, 노란리본 캠페인에도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기부 이어 노란리본 캠페인 동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242446|출판사 =스포츠경향 |저자 =온라인뉴스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 }}</ref> 2015년, 박신혜는 ‘2015 Dream of Angel’ 타이틀로 아시아투어에 나섰고, 상해 팬미팅 수익을 [[NGO]] 단체 ’기아대책’의 별빛천사마을 만들기와 중국의 유기동물 보호단체 ‘타소원’에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상해 팬미팅 수익금 전액 기부.."한류스타 이례적 행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3217288|출판사 =이데일리 |저자 =강민정 |날짜 = 2015-03-30 |확인날짜 =2013-09-01 }}</ref> 4월, 박신혜는 큰 피해를 입은 [[네팔]] 국민들을 위해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를 통해 3,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네팔 지진 희생자 위해 3천만원 후원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54697|출판사 =OSEN |저자 =정유진 |날짜 = 2015-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6년 7월, 박신혜는 아프리카 가나의 신혜센터에 이어 필리핀 마닐라에 신혜센터의 건립을 진행했다. 이에 박신혜와 소속사 솔트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은 센터건립에 앞서 필리핀 쌈빨록 지역의 아이들과 1:1 결연을 맺었고, 지난 3월 박신혜는 필리핀의 결연아동의 집을 직접 방문하고 아동결연센터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센터 건립에 앞서 건축기념식을 가졌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489585|제목=박신혜가 또… 필리핀에 아동복지시설 ‘신혜센터’ 건립|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홍세영|날짜 = 2016-07-22|확인날짜=2016-12-09}}</ref>
  • 이상백 (1904년) . . . . 6회 일치
         사학자로도 활동하였고 각종 사회단체와 문교부 고시출제위원, 중앙공무원교육원 명예교수 등을 역임했다. 일제 강점기 중반의 농구선수였으며 각종 올림픽 대회의 선수단 대표와 대표단장을 역임하였다. 학회 활동으로는 [[진단학회]], [[연경학회]], [[대한민국 학술원]]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그후 제11회 도쿄 올림픽 대회 유치위원과 준비위원으로 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폴란드 등을 방문하여 대회 유치와 준비에 협조를 구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체육계의 공로자로 칭송받았다. [[1939년]]부터 [[1941년]]에는 모교인 [[와세다 대학]] 재외특별연구원으로 중국에 파견되어 동양학을 연구했으며, [[1940년]]에는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하였으나 도쿄 올림픽 유치와 추진의 공로로 [[조선총독부]]에서 그를 함부로 다루지 못했다. [[1944년]]에는 [[여운형]]이 결성한 지하독립운동 단체인 [[건국동맹]]에 참여하여 활동했다.
         광복 직후에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활동하였다. 건준의 해산 이후 별다른 정치적 입장표명은 하지 않았고 [[1945년]] [[9월]] [[조선 체육 동지회]]를 결성하여 회장에 취임, 본격적인 체육단체 조직 및 체육경기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해 [[12월]] [[조선 체육회]] 상무이사가 되었다. 그 뒤 IOC 가입을 목표로 활동하였으며, 반탁 시위에 휘말리지 않고 IOC 가입 문제를 논의하였다. [[1946년]] 초 IOC 가입 대책 위원회를 조직하고 부위원장에 위촉되었다.
         ==== 학술, 사회 단체 활동 ====
         그는 작가이자 수필가로도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 [[내무부]]의 고등고시 출제위원으로 국사, 문학 분야의 출제를 담당하였고, [[중앙공무원훈련원]] 고문 교수를 역임했다. 또한 [[대한민국 학술원]]이 출범하자 학술원 회원으로도 초빙되었다. 사회단체 활동으로는 연경학회(燕京學會) 회원, 동방문화 연구소 위원 등으로도 위촉되었다.
         장례식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한국사회학회, 진단학회, 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 등 5개 단체가 주관한 연합장으로 주관되어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현 [[대구광역시]] 남구 화원동) 가족 묘역에 안장되었다. 묘비는 사후 1년 뒤인 [[1967년]] 그의 1주기에 세워졌는데, 묘비문은 국문학자 [[이희승]](李熙昇)이 짓고, 글씨는 이기우(李基雨)가 썼다.
  • 이승엽 . . . . 6회 일치
         {{금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단체전]]}}
         {{동메달|[[2000년 하계 올림픽|2000 시드니]]|[[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단체전]]}}
         {{동메달|[[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6 샌디에이고]]|단체전}}
         {{금메달|[[2002년 아시안 게임|2002 부산]]|[[2002년 아시안 게임 야구|단체전]]}}
         {{동메달|[[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2003 삿포로]]|단체전}}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오릭스 버펄로스 선수]][[분류: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분류:지바 롯데 마린스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0타점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300홈런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400홈런 클럽]][[분류:한국시리즈 MVP 수상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MVP 수상자]][[분류:KBO 장타율상 수상자]][[분류:KBO 출루율상 수상자]][[분류:KBO 득점상 수상자]][[분류:KBO 안타상 수상자]][[분류:KBO 타점상 수상자]][[분류:KBO 홈런상 수상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광주 이씨]][[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이인영(정치인) . . . . 6회 일치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현행법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보조금의 경우 보조금이 지급되는 대상 사업의 범위와 기준보조율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으나, 중앙 및 지방정부의 예산규모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항인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지급 대상 사업 범위와 각 사업별 국고 보조율은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하려는 것임. 한편, 양로시설을 제외한 노인시설 운영사업은 보조금 지급을 제외하고 있음. 그런데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노인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종교시설에 설치된 노인시설에 대해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비를 일부 지원하여 종교시설 유휴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노인복지를 증진할 필요가 있음. 주요내용 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보조금의 경우 보조금 지급 대상 사업, 지급 제외 사업, 각 사업별 기준보조율을 법률로 상향규정함(안 제9조제2항?별표 1?별표 2 신설). 나. 종교시설에 설치된 노인시설 운영사업을 보조금 지급 대상 사업에 포함함(안 별표 1 제122호 신설)]
         - 지역문화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최근 각 종교단체는 전국적으로 산재되어 있는 종교시설을 활용하여 문화복지의 증대를 도모하는 봉사적 차원의 문화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신도들과 일반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부분적으로 충족시키고 있음. 특히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현실을 감안할 때, 종교시설은 부족한 문화기반시설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임. 그러나, 현행법에 따른 생할문화시설의 범위에는 종교시설이 누락되어 있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상·재정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으로, 종교시설은 유휴공간으로 머무는 경우가 많음. 이에 생활문화시설의 범위에 종교시설을 포함하고 공공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려는 것임(안 제2조제5호)]
  • 창원시 . . . . 6회 일치
         [include(틀:경상남도의 기초자치단체)]
         대한민국의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많은 5개의 [[일반구]]가 설치되어 있고, [[수원시]]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시의원 선거구도 18개로 가장 많다.[* 일반적으로 시의원 선거구는 '가'~'하' 순서로 선거구 기호를 매기는데, 통합되면서 '하'선거구까지 다 채우고도 모자라 '거'에서 '러'까지 매겼다. 참고로 거~러 선거구는 모두 진해구에 있다.] 전반적인 인구는 2010년대 들어 완만한 증가세를 보여 110만을 돌파했지만, 장기적으로 청년층의 인구 감소가 꽤나 심각하게 진행 중에 있다.[* 우선 조선과 기계, 자동차 등의 창원시 경제를 지탱하는 중후장대 산업 성장세가 규모 면에서 한계에 다다르고, 외곽 도로망이 확충되면서 집값이 비싼 창원을 떠나 시계 밖의 장유, 진영 등의 신도시로의 접근성이 향상되어 인구가 유출되는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또한 마산합포구 지역은 면지구뿐만 아니라 옛 시가지의 노후화 때문에 인구유출이 가속화되고 있기도 하며, 그나마 월영마을에 형성된 학군이나 현동지구 등의 신규 아파트 택지공급이 감소세를 덜어주는 정도다.]
         [[이명박 정부]] 들어 많은 인센티브를 거론하며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을 유도하였으며, 당연히 그전부터 경제/사회/문화적 교류가 많은 소위 마창진([[마산]], [[창원시/통합 이전|창원]], [[진해]])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에 자극받은 3개 시는 지난한 정치적 협상 및 행정적 조율을 거쳐 드디어 2010년 7월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게 되었으며,[* "경상남도의 창원시, 마산시 및 진해시를 각각 폐지한다."(경상남도 창원시 설치 및 지원특례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경상남도에 창원시를 다음과 같이 설치한다."(같은 조 제2항. 제1항에 따라 폐지되는 창원시 일원, 마산시 일원 및 진해시 일원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창원시 설치)] 이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수립 이후 첫 번째 사례가 되겠다. 이 과정에서 [[함안군]]도 포함될 뻔했으나 제외되었다.[* 마산과 함안이 밀었던 모델은 함안+마산+창원 이였고 창원이 밀었던 모델이 마산 + 창원+ 진해 였다. 마산은 이 3도시가 통합되면 마산은 발전동력이 다해 쇠퇴하던 도시가 다시 도시중심부가 되어 새로운 발전동력을 얻을수 있었고 함안은 새로이 공장이 들어서는 발전가능성이 높은 도시였으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탓에 과감한 투자를 할수 없으므로 많은 재정을 유치할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창원시는 아직도 북면의 개발등 개발지역이 남아있고 함안과의 연동으로는 별 메리트를 찾을수 없었던 터라 함안과 마산을 제외하고 신항이 들어서던 진해와 합쳐서 항만도시로의 발전을 추구하는게 낫다고 판단하고 도시통합을 추진했다.]
         여튼 현재 창원의 경제적 규모는 광역시급이며, 통합시 출범을 토대로 광역시 승격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창원시가 경상남도에서 빠져나간다면 경제적 타격이 크기 때문에 경남은 창원이 독립하고자 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역 균형발전 정책상 수원과 더불어 광역시 승격은 매우 힘들다. 다만 통합으로 인한 혜택을 몇 가지 받기는 했지만 역시나 시 규모에 걸맞는 권한을 못 가졌다는 문제가 있으므로 비슷한 처지인 [[수원시|수원]], [[성남시|성남]], [[고양시|고양]] 등과 더불어 새로운 자치단체 규정을 만들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는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 할 듯. 최근 여러번의 선거를 거치며 광역시로 승격하자는 슬로건과 플래카드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긴 한데, 이미 언급했듯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자세한 내용은 [[창원광역시]] 참고.
         경제 규모로는 이미 [[광역시]]급이다. 덕분에 [[경상남도]]는 [[부산광역시|부산]]에 이어 [[울산광역시|울산]]을 뱉어내고도 지역총생산이 '''광역자체단체 3위'''이다. 두산([[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LG([[LG전자]]), 한화([[한화기계]],[[한화테크윈]][* 구 삼성테크윈]), 현대차그룹([[현대위아]],[[현대로템]]) 등 많은 재벌기업들이 창원에 [[공장]]을 갖고 있다. 심지어는 정부, 정확히는 대한민국 육군에서도 [[종합정비창|초대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경제]] 항목 참조.
         [[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경상남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남도의 행정구역]][[분류:창원시]]
  • 최흥철 . . . . 6회 일치
         ||<#ffd700> 금메달 ||<#ffffff> [[2003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 게임|2003 아오모리]] ||<#ffffff> 노멀힐 단체전 ||
         ||<#cd7f32> 동메달 ||<#ffffff>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2011 아스타나·알마티]] ||<#ffffff> 라지힐 단체전 ||
         ||<#FFD700> 금메달 ||<#ffffff> [[2003 타르비시오 동계 유니버시아드|2003 타르비시오]] ||<#ffffff> 노멀힐 단체전 ||
         ||<#FFD700> 금메달 ||<#ffffff> [[2009 하얼빈 동계 류니버시아드|2009 하얼빈]] ||<#ffffff> 노멀힐 단체전 ||
         ||<#C0C0C0> 은메달 ||<#ffffff> [[2001 자코파네 동계 유니버시아드|2001 자코파네]] ||<#ffffff> 노멀힐 단체전 ||
         ||<#C0C0C0> 은메달 ||<#ffffff> [[2003 타르비시오 동계 류니버시아드|2003 타르비시오]] ||<#ffffff> 노멀힐 단체전 ||
  • 홍진 . . . . 6회 일치
         [[1923년]] 임시정부 법무총장에 선임된 뒤 여러 요직을 역임했다. [[1926년]] 7월 국무령(國務領)이 되었으며, 9월에는 외무총장까지 겸임하면서 비타협적 자주독립운동의 진작, 전민족대정당의 창당, 피압박민족과의 연맹 체결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시정 3대 강령을 발표했다. 임시정부를 강화하고자 노력했으나 독립운동단체들간의 분규가 계속되자 그해 12월 국무위원들과 함께 사직하고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1927년]] 4월 상하이에서 한국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를 결성하고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1월에는 [[베이징]]·[[우창]]·[[난징]]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연석회의를 열었다. 그해말에는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1930년]] 7월 [[한국독립당]]을 조직하고 중앙위원장 및 군민회의(軍民會議) 부위원장이 되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당의 무장부대로 한국독립군을 편성하고 중국과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활동했다. [[1934년]] 한국혁명당과 통합하여 [[신한독립당]]을 조직하고 위원장이 되었다가 곧 한국독립당을 재조직했고, 1935년 7월에는 이를 [[조선민족혁명당]]으로 발전시켰다. [[1937년]] 7월 만주와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독립운동단체들이 통합하여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을 조직하자 선전위원으로 활동했다.
         * [[1937년]] [[8월 17일]] 미주지역 6개 단체를 참여시킨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결성.
         * [[1938년]] 독립운동단체가 통합하여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이 결성되자, 광복전선 운영 간부에 선임.
  • 김재규 . . . . 5회 일치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 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정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하게 한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 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 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 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분류:일본군/조선인]][[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한국전쟁/군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26년 출생]][[분류:1980년 사망]]
  • 박근혜 . . . . 5회 일치
         [[1982년]] 박근혜는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였고, 최태민도 육영재단에 합류하였다. 이후 박근혜와 최태민은 함께 [[1989년]] 육영수를 추모하는 단체인 [[근화봉사단]]을 조직하였고, 박정희와 육영수를 추모하는 월간 신문인 [[근화보]]도 발행하였다. 1년 뒤인 [[1990년]] [[9월]] 근화보는 15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하였고, 박근혜와 여동생인 [[박근영]]과의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이 시작되었다. 박정희, 육영수 숭모회는 다툼의 원인은 최태민이 박근혜를 배후에서 조종하여 육영재단의 운영을 전횡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육영재단의 간부는 [[1987년]] [[9월 2일]] 어린이회관 노조원들이 외부세력 물러가라며 1주일 동안 농성하였던 것은 최태민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특별한 직책도 없으면서 육영재단 운영을 좌우해온 최태민을 싫어하면서도 박근혜와 막역한 관계 때문에 어느 누구도 기를 펴지 못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박근혜는 [[1990년]] [[11월]] 육영재단 이사장 퇴진 기자 회견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2015년이 되자 김정은은 탈상 3년을 계기로 고위급 접촉 재개는 물론 남북 정상회담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신년사를 밝힌 데 이어<ref>[http://imnews.imbc.com/replay/2015/nwtoday/article/3591606_14782.html 김정은, 남북 정상회담 언급…南 "진전된 자세" 화답]</ref> 1.20 북한 정부·정당·단체 연합회의에서 채택한 남북 대화 촉구 호소문을 청와대, 대한적십자사 등에 보내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대북전단 살포 중단 및 한미훈련 중단 등 한국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걸었다<ref>[http://news1.kr/articles/?2057625 北 남북대화 촉구 호소문 청와대 등에 전달]</ref>
         6월 4일, 세월호 사고 파동 속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예상을 깨고 선전하였다. 최종 결과는 광역단체장을 새누리당과 새정련이 각각 8 : 9로 분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박근혜의 대국민담화 및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운 선거유세’, 야당의 광주광역시장 후보에 대한 부적절한 공천 및 그로 인한 후폭풍 등으로 분석되었다.
         [[광주광역시]]의 시민단체와 법조계는 박근혜 후보의 발언이 사법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9/11/0200000000AKR20120911147200054.HTML?did=1179m "박근혜 인혁당 발언, 사법부 부정하는 것"] 연합뉴스, 2012년 9월 11일</ref> 또한 전국 11개 로스쿨의 인권법학회 학생들도 성명을 통해 박근혜의 발언은 역사인식의 심각한 결여와 법체계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81758&CMPT_CD=P0001 전국 로스쿨 학생들, 박근혜 인혁당 발언 비판성명] 오마이뉴스, 2012년 9월 23일</ref><ref>[http://www.lawissu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434 로스쿨 학생들 "박근혜 '인혁당' 역사인식 깊은 우려"] 로이슈, 2012년 9월 24일</ref>
         박근혜 후보의 벤처특보로 영입된 장흥순은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적자를 감추기 위해 700억 원대의 분식회계를 했다가 구속, 기소되어 2005년 유죄 판결을 받았던 전력이 있어서 당 안팎에서 논란이 일었다.<ref>[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2/10/13/9194267.html?cloc=olink|article|default '700억 분식회계 처벌 장흥순, 박 캠프 벤처특보로 임명 논란]{{깨진 링크|url=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2/10/13/9194267.html?cloc=olink%7Carticle%7Cdefault }} 중앙일보, 2012년 10월 13일</ref>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으로 영입된 김규옥 광주시민단체총연합회 대표는 2001년 1월부터 2006년 말까지 총 149차례에 걸쳐 노인무료급식 보조금 1억 7000여만 원을 자신의 생활비 등으로 사용해 업무상 횡령으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710909 박근혜, 국민대통합 때문에 정치쇄신 뒷전?] 아시아투데이, 2012년 10월 14일</ref>
  • 아이린(레드벨벳) . . . . 5회 일치
          * [[평양 공연]] 이후 단체사진을 찍을 때, 다른 멤버들은 외곽에 자리했으나 아이린은 [[김정은]] 바로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27875&ref=A|#]]
          * [[손가락 하트]]를 선호하지 않는데, 단체사진에서도 다른 사람들 모두 손가락 하트 포즈를 취해도 혼자 다른 하트 포즈를 취할 정도.
         [[분류:일본 연예인]] [[분류:1991년 출생]] [[분류:시노자키 아이의동생]]
         [[분류:일본 연예인]]
         [[분류:일본 인물]]
  • 양준혁 . . . . 5회 일치
         [[KIA 타이거즈|해태]]로 트레이드 된 이후 1년 뒤, 양준혁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를 결성하게 되었다. 그는 선수협의 설립 목적이 "국내 프로 야구 선수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대외 홍보를 강화하며 야구의 건전한 보급과 지원을 통해 장기적으로 한국 프로 야구를 국제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다"라고 밝히며 선수협은 노동 조합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ref name="양10">{{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300&page=66&type=&values= |제목=양준혁 "옷 벗을 각오로 선수협 결성을 성사시키겠다" |확인날짜= |확인날짜=2009년 1월 31일 |날짜=2000년 1월 18일 |출판사=스포츠투데이 |쪽=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300&page=66&type=&values= }}</ref> 그는 옷을 벗을 각오까지 하고 선수협 결성에 나섰다고 밝히면서 선수들의 권익과 복지차원에서 선수협 결성을 추진한다고 말했다.<ref name="양11">{{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99&page=65&type=&values= |제목=양준혁 일문일답 |확인날짜= |확인날짜=2009년 1월 31일 |날짜=2000년 1월 18일 |출판사=스포츠투데이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99&page=65&type=&values= }}</ref> 주변의 우려와 소속구단측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가 선수협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해태는 양준혁이 단체행동 사전 고지 임무를 어겼기 때문에 임의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강경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따라 은퇴까지 불사하고 선수협을 결성을 달성하려는 양준혁과 임의탈퇴라는 최후의 카드까지 꺼내든 소속 구단은 정면 대립의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ref name="양12">{{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97&page=65&type=&values= |제목=해태 "양준혁 임의탈퇴도 불사" |확인날짜= |확인날짜=2009년 1월 31일 |날짜=2000년 1월 19일 |출판사=스포츠조선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97&page=65&type=&values= }}</ref><ref name="양13">{{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95&page=65&type=&values= |제목=해태-양준혁 `임의탈퇴`-`야구포기` 정면충돌 |확인날짜=2009년 1월 31일 |날짜=2000년 1월 19일 |출판사=일간스포츠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95&page=65&type=&values= }}</ref>
         다른 선수들과 합심하여 투쟁을 계속한 끝에 결국 [[2000년]] [[1월 22일]] 한국 프로 야구 선수협회가 공식 출범하게 되었으며, 초대 회장은 [[송진우 (야구인)|송진우]], 감사는 [[정수근]], [[박충식 (1970년)|박충식]]이 맡게 되었다.<ref name="양14">{{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93&page=65&type=&values= |제목=선수회 출범 |확인날짜= |확인날짜=2009년 1월 31일 |날짜=2000년 1월 22일 |웹사이트= |출판사=스포츠서울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93&page=65&type=&values= }}</ref> 선수협 출범 후 하루 뒤 [[한국 야구 위원회|KBO]]는 양준혁의 영구 제명을 추진하였는데, 이러한 KBO의 움직임에 이번에는 시민 단체가 선수협을 지지하며 KBO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양준혁을 비롯한 여러 선수협 선수들은 선수협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전지 훈련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선수협 문제는 [[2000년 한국프로야구|2000 시즌]] 시범 대구 개막을 하루 앞둔 2000년 3월 10일 열린 선수협과 KBO의 협상에서, '선수협은 올시즌 종료후 결성하고 제도개선위원회는 4월 3일 발족시킨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합의사항이 도출되면서 극적으로 타결되었다.<ref name="양15">{{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89&page=65&type=&values= |제목=선수협 시민단체 동참 "실체인정" 압박 |확인날짜= |확인날짜=2009년 1월 31일 |날짜=2000년 1월 26일 |출판사=스포츠조선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89&page=65&type=&values= }}</ref><ref name="양16">{{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82&page=65&type=&values= |제목=선수협 승리 그날까지 |확인날짜= |확인날짜=2009년 1월 31일 |날짜=2000년 2월 8일 |출판사=스포츠서울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82&page=65&type=&values= }}</ref><ref name="양17">{{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0&page=1&type=2&values=%B4%EB%C5%B8%C7%F9 |제목=선수협 대타협 |확인날짜= |확인날짜=2009년 1월 31일 |날짜=2000년 3월 11일 |출판사=스포츠서울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0&page=1&type=2&values=%B4%EB%C5%B8%C7%F9 }}</ref>
         우리 세 명만의 모임이 아니라 100년, 200년을 바라보고 만든 단체다. 유소년 야구, 사회인 야구만이 아닌 중,고교에서도 야구를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우리가 앞장 서서 프로 야구의 초석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켜봐 주시고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은퇴 대구 시구는 양준혁의 아버지가 했고, 양준혁이 시타를 했다. 그가 그동안 밟아 왔던 그라운드를 되밟아 본다는 의미로 1회부터 4회까진 1루수, 5회부터 8회까진 우익수, 9회에는 좌익수로 대구에 나왔다. 공격할 때는 3번 타자로 출전하였다. 5회말이 끝나고 6회초가 시작되기 직전엔 10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여러 단체들이 준비한 공로패, 감사패 전달식이 있었다.
  • 오승희 . . . . 5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도쿄도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본의 여자 가수]][[분류:일본의 가수]][[분류:일본의 아이돌]][[분류:1997년 데뷔]][[분류: 충쿠 소속]][[분류:모닝구 무스메의 일원]]
         [[분류:일본 아이돌]]
         [[분류:일본 아이돌]]
  • 울릉군 . . . . 5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경상북도]]의 군. [[대한민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기초자치단체]]이자 경북 유일의 섬으로만 이뤄진 지자체다. 심지어 멀리 [[동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위치상으로는 오히려 강원도에 가까워 보이지만, 직선거리로 제일 가까운 곳은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이다(130.3km). 다만 울진은 1962년에 [[경상북도]]로 이관되기 전까지는 강원도 소속이었고 울릉도 자체도 1906년까지는 강원도 소속이었다. 그러다가 1906년 13도 분도 후에 뜬금없이 '''[[경상남도]]'''로 이관되었다가 1914년에서야 경상북도로 이관되었다.
         2016년, 국내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인구 네자리로 떨어지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07/2010090701865.html?rsMobile=false|2005년엔 9,538명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1만 명 넘어섰다고 마냥 좋아하기도 그런 게 지역주민들에게 배값을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걸 노리고, 유령주민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을 옮겨놓으면 10분의 1가격에 배를 타니 꽤나 혹하는 듯 하다.] 그러나 2017년 7월 기준으로 다시 1만 명을 넘어갔다...는 2017년 11월 기준 9,996명으로 떨어지며 네 자릿수가 되었다..가 2018년 6월 기준 10,010으로 다시 1만 명 선을 회복했다.~~다이나믹 인구~~
         [[대한민국|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지만 규모가 너무 작아서 [[제주특별자치도]]처럼 광역자치단체는 되지 못했다. 전 군수인 최수일 군수가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고 여러 울릉도 만의 특수성이 있기에 "특별자치군"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기는 했다. 물론 실현되지 못했다.
         [[분류: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북도의 행정구역]][[분류:울릉군]]
  • 유승민(정치인) . . . . 5회 일치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로도 [[박근혜정부]]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청와대]]와 여러 차례 충돌을 벌이다가, 2015년 7월 원내대표 당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갈등의 정점을 찍었다. 특히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15년 4월에 있었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로 대표되는 교섭단체 대표연설 이후였다. 그 연설 이후, [[박근혜]]로부터 이른바 '찍박'으로 낙인찍혀 결국 원내대표직 사퇴까지 이르게 된다.
         탈당 러쉬로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던 바른정당을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통해 [[바른미래당]]으로 탈바꿈시키며 30석을 가진 원내교섭단체로 다시 올라섰다. [[민주평화당|분열 사태]]를 맞은 국민의당과 대표직을 내려놓은 [[안철수]]와 달리 당내 입지의 변화 없이 합당을 마무리했으며, 바른미래당 초대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 [[친유|자신만의 정치 세력]]도 갖춰가고 있었으나 결국 '''[[7대 지선]] 참패로 바른미래당 대표에서 사퇴했다.'''
         하지만 이는 유승민이 국회법 개정안 관련 논란과 합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 '[[비박|찍박]]'(찍힌 친박)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20대 총선까지 충돌이 이어지며 공천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일게 된다. 이 연설 당시 박 대통령이 언급한 '''배신의 정치''' 라는 단어는 이후 박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박사모]] 등 [[친박]] 단체에서 유승민을 언급할 때 두루 응용되는 표현으로 회자되게 된다.
         >— 2015년 4월 8일 국회 교섭단체([[새누리당]]) 대표 연설 中 [[https://youtu.be/jdZyW-P-kzA|전체 보기]]
         >— 2015년 4월 8일 국회 교섭단체([[새누리당]]) 대표 연설 中 [[https://youtu.be/jdZyW-P-kzA|전체 보기]]
  • 이중환(법조인) . . . . 5회 일치
         ||<tablewidth=100%><-6><#3F51B5> [[박근혜-최순실 게이트|{{{#white {{{+1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white {{{+1 관련 인물 및 단체}}}}}} ||
         ||<#aaa><-6> 관련 단체 ||
         ||<-6> [[박근혜정부]] · [[새누리당]] · [[친박]] · [[미르재단]] · [[K스포츠재단]] · [[더블루K]] · [[비덱]] ·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 [[팔선녀(단체)|팔선녀]] ·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 [[삼성그룹/비판 및 문제점#s-10|삼성그룹]]([[삼성전자 승마단]]) · [[국민연금공단]] · [[이화여자대학교/사건사고|이화여자대학교]] · [[영세교]] · [[알자회]] · [[고령향우회]] · [[통일교]] · [[일베저장소]] · [[대한민국어버이연합|어버이연합]] · [[대한민국 엄마 부대|엄마부대]] · [[박사모]] · [[아프리카TV/사건사고#s-1.10|아프리카 TV]] · [[주식갤러리#s-2.5|주식갤러리]] · [[JTBC]] · [[회오리축구단]] · [[워마드]] ||
         ||<-6><#aaa> 기타 관련 인물 및 단체 ||
         [[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관련 인물 및 단체]][[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 [[분류:1959년 출생]]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 장헌식 . . . . 5회 일치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사회주의]] 사상이 널리 퍼지고 노동 운동이 활발해지자 이를 탄압하기 위해 설립된 친일 자본가 단체인 [[동민회]]에 가담했으며, 일제 말기 총독부 학무국과 밀착하여 또다른 친일 단체 [[대화동맹]] 결성을 조종했다는 증언이 있다.<ref>일제 말기 총독부 학무국과 밀착하여~ : 반민특위 조병상 공판조서 (제1회) 중 조병상의 수기 (1949).</ref> [[1924년]] [[12월 1일]] [[전라남도지사]]로 부임하였다. 전남 지사직에서 물러난 1926년부터 1945년까지 중추원 칙임참의를 7회에 걸쳐 중임하였다.<ref name="실록친일파" />
         1926년 5월 1일 정4위(正四位)로 승급했지만 1926년 8월 14일 스스로 의원면관(依願免官)하였다. 바로 조선총독부 충주원 참의 칙임관대우(中樞院參議 勅任官待遇)에 선발되었다. 1926년 9월 13일 종3위(從三位)로 승급하고, 1928년 11월 16일 다시 대례기념장(大禮記念章)을 받았다. 1927년 4월 6일에는 한식(寒食)일을 기념하여 사회단체에 5원을 기부하였다.
         장헌식은 관직에서 퇴임한 뒤로도 일본의 전쟁을 지원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937년에는 각지에 시국강연을 다녔다. [[만주 사변]] 이후 일본군을 후원한 활동을 인정받아 [[1937년]] 일본 육군대신 명의의 표창을 받은 바 있고,<ref name="실록친일파" /> 37년 8월 21일에는 애국금차회원으로 참여하였다. [[중일 전쟁]] 발발 이후로는 시국강연반에 가담하여 전쟁 지원 연설을 하기도 했다. [[1938년]] 친일 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에 발기인으로 참가한 뒤 [[1941년]] [[국민총력 조선연맹]]과 [[조선 임전 보국단]]에도 가담했다. 이때는 이미 70대의 노구였으나, 학병 지원을 독려한다며 전국에서 강연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1938년 8월 16일 조선총독부 칙임관대우 참의에 임명되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광복회]]와 함께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으며 부인인 [[임정재]]도 친일 여성 단체인 [[애국금차회]]에서 활동했다.
  • 정주관백 . . . . 5회 일치
         전국정주관백협회(全国亭主関白協会)라는 단체가 있다. 남편이 폭군이 되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는 아니며, 정주관백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자는 단체이다.(http://www.zenteikyou.com/zwhat.html)
         이 단체가 새롭게 해석한 정주관백의 정의는 이러하다. 사실 관백은 조정에서 두번째 지위이며 덴노를 보좌하는 지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집 안에서 덴노란 곧 아내이다. 그리고 정주는 차를 내오는 사람을 뜻하므로, ‘정주관백’이란 사실 아내를 보좌하고 떠받들어 주는 남편을 뜻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오해하여 집안의 폭군 같은 뜻으로 쓰고 있다고 말한다.
         [[분류:일본어]]
  • 허근욱 . . . . 5회 일치
         사회단체 활동으로는 한국부인회 중앙위원, 3.1여성동지회 중앙위원회 위원,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이사, 국제직업여성연맹 한국측 이사, 1980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중앙위원 및 편집위원, 1993년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등을 역임했다. 독립운동가 겸 변호사, 정치인인 [[허헌]]의 딸이며 독립운동가 겸 여성 해방 운동가, 자유주의 운동가인 [[허정숙]]의 이복 여동생이었다.
         === 사회 단체 활동 ===
         1965년 한국부인회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고, 1967년 [[황애덕]] 등 [[3.1 만세 운동]] 관련자 및 투옥,수감된 독립운동가 및 그 유가족들이 중심으로 조직된 3.1여성동지회 중앙위원회 위원으로도 위촉되었다. 1968년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이사, 1969년 국제직업여성연맹 한국측 이사, 1980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중앙위원회 위원 겸 편집위원 등으로도 활동하였다.
         * [[1980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중앙위원 및 편집위원.
  • 황희두 . . . . 5회 일치
         '''황희두'''(黃熙斗, [[1992년]] [[1월 29일]] ~ )는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이자 현재는 소셜 디자이너로 활동중이다. 비영리민간단체 [[청년문화포럼]] 초대 회장, [[주권자 전국회의]] 상임 공동대표이며, 호는 청도(靑道)다.<ref>{{웹 인용|url=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865208|제목=청년문화포럼 황희두 회장, 열암 송정희 선생으로부터 ‘靑道’ 호 선사 받아|언어=ko|확인날짜=2017-07-04}}</ref> 수필가 겸 칼럼니스트, 금융인 [[황태영]]의 아들이다.
         前 프로게이머 출신 황희두와 넛지스토리 대표 [[국도형]]이 만든 비영리 민간단체다. <ref> http://www.simin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9017 "비영리단체 청년문화포럼, 제1회 '컬쳐쇼' 녹화 성황리에 마쳐" 시민일보 2016.02.02. </ref>
         수필가 [[황태영]],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을 필두로 문화운동가 [[황희두]], 서양화가 [[송미영]], 캘리그라퍼 [[진성영]], 기업인 [[국도형]] 등을 모아 단체 [[대한북레터협회]]를 만들어 '북레터 365 운동'을 활성화 시키는 중이다. 책에 편지쓰기 캠페인을 진행하여 독서 장려, 따뜻한 사회 만들기 등을 목적으로 다양한 활동중이다. 2015년 11월 [[대한북레터협회]] 상임 부회장으로 선임되었다.<ref>[http://www.weeklypeople.co.kr/detail.php?number=1954 황희두 대한북레터협회 상임부회장 겸 H&P GLOBAL COMPANY 마케팅이사 2015.12.10 | 주간인물]</ref> <ref>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061951018&code=910100 황희두 부회장, “시민문화운동 ‘북레터 365 운동’으로 대한민국 소통문화를 혁신하겠다.” 2016.01.06 | 경향신문 </ref>
         2017년 4월 1일, 시민사회단체회원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광화문 광장에서 '적폐청산과 국가 대개혁을 위한 주권자전국회의' 출범식이 열렸다.
  • 강성호 (1966년) . . . . 4회 일치
         |직업 = 전.기초단체장 , 전.광역의원
         * 2011년 10월 27일 ~ 2014년 6월 30일:제23대 대구 서구청장(민선,[[새누리당]],대구의 최연소(46세) 기초단체장)
         2014년 6회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대구 서구청장 후보로 내정되었으나 여기자를 성추행 했다는 의혹이 퍼지면서 공천 철회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1&aid=0006904645|제목=새누리당 대구경북 단체장 공천 '삐거덕'|확인날짜=2016-12-18}}</ref><ref>{{뉴스 인용|url=http://www.weekly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9980|제목=[6·4지방선거] 새누리당, 대구 서구청장 후보 류한국 공천 - 위클리오늘|확인날짜=2016-12-18}}</ref> 이에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당시 선거공보물에 본인이 저지른 잘못을 최대한 오래전의 일로 포장하기 위해 '1년 11개월' 전의 사건을 '2년 6개월'로 표기하였으며<ref>{{뉴스 인용|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5117&yy=2014|제목=성범죄, 가십거리도 안되는 일? '강성호 선거공보물 거짓' 문제 제기|성=매일신문|이름=|날짜=2014-05-28|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피해여성이 먼저 술을 사달라고 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는 거짓으로 드러났다.<ref>{{뉴스 인용|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3876&yy=2014|제목="피해여성이 먼저 술 사달라 전화" 강성호 또 거짓말|성=매일신문|이름=|날짜=2014-05-21|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기자회견에서 “시간도 늦었고 술에 취해 택시를 타고 피해여성을 집 앞까지 바래다줬다”며 “집에 들어가기 전에 피해여성과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지며 어깨를 포옹하고 머리에 입을 맞추고 작별 인사를 했다”고 밝혀 행위자체가 있음은 인정하였다. 이 사건은 향후 새누리당 윤리위원에 내정되면서 다시 화제가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www.nocutnews.co.kr/news/4701668|제목='성추행 의혹' 인사가 새누리 윤리위원? "정신 나갔다" - 노컷뉴스|웹사이트=www.nocutnews.co.kr|확인날짜=2016-12-18}}</ref>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진주 강씨]][[분류:대구중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건중학교 동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과학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고다이고 덴노 . . . . 4회 일치
         [[분류:일본사]] [[분류:일본 인물]]
         [[분류:일본사]] [[분류:일본 인물]]
  • 김문오 . . . . 4회 일치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4대 | [[지방 관청|군수]] | [[달성군|대구 달성군]] | 무소속 | 31,378 표 | 47.22 | 1위 | 당선_대구 |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 대구광역시#기초자치단체장|초선]], 민선 5기 }}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5대 | [[지방 관청|군수]] | [[달성군|대구 달성군]] | 새누리당 | 무투표 | 0 | 단독출마 | 당선_대구 |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 대구광역시#기초자치단체장|재선]], 민선 6기 }}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7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6대 | [[지방 관청|군수]] | [[달성군|대구 달성군]] | 무소속 | 64,474 표 | 58.0 | 1위 | 당선_대구 | [[대한민국 제7회 지방 선거 대구광역시#기초자치단체장|3선]], 민선 7기 }}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방송의 직원]][[분류:대한민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
  • 마터니티 마크 . . . . 4회 일치
         1999년에 프리랜서 작가 마츠무라 준코(村松純子)가 임산부임을 어필하는 마크로서 『BABY in ME』를 발표( http://www.baby-in-me.com/ )했다. 이 마크의 디자인과 발표를 계기로 임신 초기 임산부에 대한 배려의 필요성이 알려져, 다양한 민간단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양한 종류의 임산부 어필 마크를 발표했다.
         그러나 지자체와 민간단체로서는 광범위한 보급이 어려웠고, 많은 마크가 발표되다보니 혼선이 일어났다. 또한 저작권 문제도 존재하고 있다.
         [[분류:일본 풍속]]
  • 문근영 . . . . 4회 일치
         다만, 류낙진이 생전에 고문으로 있었던 [[범민련]]에 류낙진의 조의금 5천만원을 "통일기금"명목으로 기부한 일이 있었는데 범민련이란 단체가 대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있어 문제가 되었다.[[http://thumbnail.egloos.net/600x0/http://pds21.egloos.com/pds/201509/29/94/a0200494_5609bdf60179c.jpg|*]]
         류낙진은 비전향장기수들의 묘역인 연화공원에 묻혔는데, 지만원의 비난과 소송 등으로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서 우익단체에 의해 묘비가 박살나거나 붉은 칠을 당하는 등의 훼손을 [[http://v.media.daum.net/v/20051207112410653|당하는 일도 있었다.]]
         [[분류:일본 여배우]]
  • 신민아 . . . . 4회 일치
         [[http://www.huffingtonpost.kr/2015/10/19/story_n_8328676.html|출처]] 약 7년간 10억원 가량의 기부를 해왔고 그 기부 소식이 기사를 타자마자 부산 지역의 미혼모들을 위해 기부한 사실 또한 단체의 대표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이 아닌 부산지역에 기부를 한 이유는 부산 지역이 다소 소외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페북에 올린 한 번의 절박한 글에 지원을 해줬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신민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대표 또한 소규모 비영리 단체에게는 큰 도움이었다고 밝혔다.
          * 2015년 10월 15일 약 7년째 꾸준히 기부를 해온 사실이 기사로 나왔다. 새터민들을 돕는 단체 및 사랑의 열매를 통한 매달 200만원, 연말에는 5천만원에서 1억정도의 액수를 기부해 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싱글맘들을 위해 분유를 기부하기도 하고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돕기도 하는 등 그동안 기부한 액수가 약 10억 원 정도라고 한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78574|관련 기사]] 특히 새터민들을 돕는 행사는 몇 년전 공개 행사를 할때 참석하였는데 드라마 작가인 노희경씨와 함께 하기도 하였다. 불교 단체를 통해 기부한 적도 있는데, 재미있게도 신민아는 개신교 신자. 이따금 절에서 목격담이 있기도 하고, 오래 전 인터뷰에서 자주 가는 장소 중 하나가 봉은사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타종교에 대한 편견은 없는 모양. --드라마 고사장에서 절을 하지는 않는 정도--
  • 실즈 . . . . 4회 일치
         일본의 학생운동 단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自由と民主主義のための学生緊急行動)을 뜻하는 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의 약자에서 따왔다. 단체 스펠링은 다르지만 일본어 발음은 영어 실즈(SHIELDS)와 비슷하여 영어로 '방패'와 연관을 지어서 지은 이름으로 추측된다.
         [[분류:일본 단체]]
  • 의성군 . . . . 4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2016년 ‘중앙 이코노미스트’가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과 국내 252개 기초단체의 인구 현황(2015년)을 분석한 결과 노인 인구 100명 당 20~30대 여성 인구 17명으로 30년 뒤 사라질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http://news.joins.com/article/19968138|# 젊은 여성 없는 의성·고흥·군위…30년 뒤 내 고향 사라진다]]. 참고로 [[고흥군]], [[군위군]]이 뒤를 이었다. 또한 2015년 인구총조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평균연령이 가장 높은 기초자치단체이기도 하다. 평균연령 55.3세, 중위연령 59.2세.
         [[분류: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북도의 행정구역]][[분류:의성군]]
  • 이시종 . . . . 4회 일치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3대 | [[지방 관청|지사]] | [[충청북도지사|충청북도]] | 민주당2008 | 349,913 표 | 51.22 | 1위 | 당선_충북 |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 충청북도#광역자치단체장|초선]], 민선 5기}}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4대 | [[지방 관청|지사]] | [[충청북도지사|충청북도]] | 새정치민주연합 | 361,115 표 | 49.75 | 1위 | 당선_충북 |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 충청북도#광역자치단체장|재선]], 민선 6기 }}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7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5대 | [[지방 관청|지사]] | [[충청북도지사|충청북도]] | 더불어민주당 | 468,750 표 | 61.15 | 1위 | 당선_충북| [[대한민국 제7회 지방 선거 충청북도#광역자치단체장|3선]], 민선 7기 }}
         {{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장}}
  • 이철우(1955) . . . . 4회 일치
         [[분류:대한민국 국회의원]][[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55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자치단체장]]
         '''자유한국당의 단 둘뿐인 광역단체장'''
         2018년 1월 31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경선 전에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계획을 돌연 철회했는데, 당에서 국회의원직 사퇴를 강력히 만류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국회의원 사퇴로 인해 다른 광역단체장 출마를 희망하는 국회의원들의 줄사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경북지사 선거 경쟁 후보자들이 국회의원 사퇴에 대해서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0년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한국당 김천당협위원장을 사퇴했다. 사실상 배수진을 친 셈이다. 4월 9일 경선에서 32%로 1위를 했다. 자유한국당의 경선은 결선투표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경북도지사 후보로 확정됐다. 당원 투표에서는 김광림 후보에 밀렸지만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1위가 됐다.
         [include(틀: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장)]
  • 전민제 . . . . 4회 일치
         * 1979년 대한과학단체총연합회 부회장(1984년 퇴임)
         * 1983년 동남아태평양지역공학단체연합(FEISEAP) 부총재(1985년 퇴임)
         * 1984년 대한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고문(1992년 퇴임)
         [[분류:192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화학자]][[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구 전씨]][[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러시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프랑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
  • 전여옥 . . . . 4회 일치
         2008년 3월 서울 영등포갑에 출마했다. 2008년 4월 [[박근혜]]의 팬클럽인 박사모는 전여옥의 낙선운동을 했다.<ref name="인권1">[http://www.cbs.co.kr/Nocut/Show.asp?IDX=794156 노컷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4월 6일 [[박사모]]는 전여옥의 낙선을 위해 민주당 후보인 [[김영주]]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언론에 발표하기도 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8040610580120426&outlink=1 박사모 "전여옥 퇴출 위해 민주당 지지" - 머니투데이:투자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2008년 5월 영등포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2008년 한나라당 국제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08년 국회 연구단체 미디어정치2.0 활동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19592 55개 국회의원연구단체 명단 - 오마이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2008년 12월 국민일보 20주년에 축사를 보냈다.<ref>[http://www.kukinews.com/news2/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1124081&cp=nv [쿠키뉴스] 갓 구워낸 바삭바삭한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2008년 3월 27일 18대 국회의원 선거 유세 도중 노숙자를 정리하겠다 는 발언이 파문이 되기도 했다.<ref name="인권1"/><ref name="봉사1">[http://www.frontiertimes.co.kr/news_view.html?s=FR01&no=27152&s_id=12&ss_id=0 프런티어타임스<!-- 봇이 붙인 제목 -->]</ref><ref name="박사1">[http://polinews.co.kr/viewnews.html?PageKey=0101&num=81961 시사1번지 폴리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종교단체와 인권단체 등은 노숙자들에게도 인권이 있다 하며 발언 내용을 비판했다.<ref name="인권1"/><ref name="봉사1"/><ref name="박사1"/> 한편 박사모 대표 정광용 등은 그를 퇴출시켜야 한다며 비판하기도 했으며,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ref name="박사1"/>
  • 정광조 (1883년) . . . . 4회 일치
         정광조는 [[1942년]]에 천도교 교령으로 뽑히는 등 교단 원로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전시체제 하에서 천도교를 대표해 여러 친일단체에 가담했다. [[1941년]] 발족한 [[조선임전보국단]]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민정신총동원천도교연맹, 국민총력천도교연맹 등 어용 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 태평양 전쟁 전몰 장병을 위한 위령제를 개최하기도 했고, [[1943년]]에는 [[이종린 (1883년)|이종린]]과 함께 [[조선종교단체전시보국회]]에 천도교 대표로 참가해 학병제를 선전하는 강연회를 열었다.
         |제목=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 칠곡군 . . . . 4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서울특별시]] [[서초구]]와 함께 가장 살기 좋은 지방자치단체 1위에 오르기도 하는 등 생활여건은 꽤 좋다. 전국에서 강수량이 가장 적은 편에 속해, 수해를 거의 입지 않는 편이라고 하지만 바로 읍내에 흐르는 낙동강에 쌓은 둑이 없던 시절에는 툭하면 범람해서 읍내에 수해를 자주 입었다고 하며 수해를 심하게 입을 때에는 경부선 왜관역 인근까지 물이 찼다고 옛날부터 사시던 어르신분들이 자주 증언하기도 했다.1970년대 이후 강 주변에 높은 둑이 생기면서 수해가 없어졌다고 한다. 이곳은 대구와 매우 인접해있다보니 여름철 더위는 대구보다는 낫다고는 하지만 타지역 사람들에게는 지독한 수준이며 이러한 기후 탓에 눈은 더더욱 오지 않는 편이다.
         == 생활권과 [[행정구역 개편/기초자치단체 통합|행정구역 개편]] 문제 ==
         [[분류: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북도의 행정구역]][[분류:칠곡군]]
  • 황교안 . . . . 4회 일치
         서울지검 공안2부에 재직하던 1990년 2월 7일 "한통련ㆍ유럽민협 등 해외단체와 범민족대회 관련한 자료를 팩스를 통해 주고 받았다"는 이유로 전민련 국제협력국장 김현장을 국가보안법의 국가기밀누설ㆍ회합통신ㆍ금품수수죄 등을 적용하여 구속하여 징역10년 자격정지10년을 구형하여 징역 7년 자격정지7년을 선고받게 하였다.
         황교안은 2013년 2월28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제가 그 많은 급여를 받은 점에 대해서는 거듭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주변 분들이 다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봉사활동과 기여활동을 하겠습니다."고 약속했다. 2015년 6월 9일 인사청문회 둘째 날에 황교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익명으로 기부한 사실을 공개하며, "장애인단체나 또 해외봉사단체나 이런 데 제가 기부했던 부분들이 있습니다. 있지만 그런 것들을 얘기하고 싶지 않고 아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도 사실은 제가 그때 익명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공동회에도 ‘내가 했다는 걸 외부에 알리지 마라’ 그래서 지금까지 안 알렸던 겁니다. 지금은 자꾸 그런 얘기가 나오니까 할 수 없이 제가 신고하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라고 공개 경위를 설명하였다.<ref>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ref>
         * 아가페는 민영 교도소 설립을 추진해온 개신교 단체로, 2010년 12월 [[경기도]] [[여주시]](당시 [[여주시|여주군]])에 민영 교도소인 '[[소망교도소]]'를 개소했으며, 황교안은 2001년 12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아가페의 이사를 맡은 바 있다. 교도소 건립을 위해 본인 명의로 30만원을 헌금했고, 법무법인 로고스는 1,783만 9,000원을 기부한 것으로 아가페소식지에 기재돼 있다.
  • 구미시/인물 . . . . 3회 일치
         * [[김관용]] - 전 광역단체
         * [[김만제]] - 특수단체
         * [[김승목]] - 전 사회기관단체인, 전 국회의원
  • 구본길 . . . . 3회 일치
         '''아시아 펜싱 최초의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팀 동료 [[김정환(펜싱)|김정환]], 오은석, 원우영과 함께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본인의 첫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
         [[8월 20일]] 무난하게 결승까지 올라와 오상욱과의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내어 아시안 게임 개인전 3연패를 달성했다. 단체전도 우승하며 2연패를 달성했다.
  • 김대휘 . . . . 3회 일치
         '''김대휘'''(金大彙, 1956년 ~)는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춘천지방법원]], [[의정부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고, 법무법인 화우 소속의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법조인과 대학교수로 구성된 학술단체인 형사판례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0년 2월 11일에는 민혁당을 결성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무기징역이 구형된 하피고인에 대해 국보법상 반국가단체 구성죄 등을 유죄로 인정,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226118]</ref> 6월 15일에 1994년말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추종하는 국제사회주자들이라는 조직에 가입한 뒤 이 조직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노동자연대 등을 소지한 혐의 등으로 4월달에 구속되어 징역 3년이구형된 피고인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의 이적단체 가입혐의에 대해 논란이 있는데다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는 것으로 보여 보석을 허가한다"고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244671]</ref>
  • 김필곤 . . . . 3회 일치
         * 대구지방법원 형사1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7월 29일에 [[대구 지하철 화재]] 현장을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 대구지하철공사 사장 윤진태에게 징역 3년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98906]</ref>11월 28일에 [[한총련]] 중앙위원으로 활동한 [[계명대]] 총학생회장에 대해 "11기 [[한총련]]은 10기 한총련의 기본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고, 이적단체인 [[범청학련]] 남측본부의 집행부를 장악해 [[범청학련]]의 기본 대오로 활동하고 있다”며 처음으로 11기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면서 "11기 한총련이 범청학련을 통해 북한의 대남 공작부서인 통일전선부의 사실상 지휘·조정을 받아 북한의 적화통일 노선을 수용하고 있고, 북한 쪽과 빈번하게 불법 접촉 및 서신교환을 하면서 하달받은 투쟁지침에 따라 11기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의 사업계획을 수립·시행했다"며 [[국가보안법]] 이적단체 가입죄 등을 적용해 징역2년6월 자격정지1년 집행유예4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36082]</ref> 2004년 2월 6일에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하 직원 2명으로부터 "당선되면 잘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2000만원, 아들 축의금으로 1000만원을 받은 [[박진규]] 영천시장에 대해 "시장에 당선된 후에 받은 1천만원은 대가성이 인정된다"면서도 2000만원에 대해서는 "범죄 입증이 어렵다"고 하면서 수뢰액이 1천만원이상 5천만원 미만 일 때는 5년이상 징역에 처함에도 불구하고 징역2년6월 집행유예4년 추징금100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0026584]</ref>
  • 김형준(배우,가수) . . . . 3회 일치
          * 9월 9일, 16일 SS501 전원이 위대한 임신에 출연해 임신 체험을 했다. 닭싸움에서 진 사람이 보통 임신체험복 보다 두배다 더 무거운 임신체험복을 입어야 하는데 단체로 김형준만 공격해서 닭싸움에서 져서 쌍둥이 임신 체험복을 착용했다. --막내라서 만만했나보다--
          * 5월 10일 SS501 전원과 함께 쇼! 음악중심에서 단체로 MC를 진행했다.
          * 6월 7일 SS501 전원과 함께 쇼! 음악중심에서 단체로 MC를 진행했다.
  • 김희정 (펜싱선수) . . . . 3회 일치
         {{금메달|[[2002년 아시안 게임|2002 부산]]|에페 단체전}}
         {{금메달|[[1993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1993 도쿄]]|에페 단체전}}
         '''김희정'''(金熙正<ref>{{뉴스 인용 | 제목=<프로필> 펜싱 에폐 금메달 金熙正 | 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013398 | 출판사=연합뉴스 | 저자= | 쪽= | 날짜=1995-04-15 | 확인날짜=2018-09-14}}</ref>, [[1975년]] [[1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펜싱]] 선수로 주 종목은 [[에페]]이다. [[1996년 하계 올림픽|1996년]]과 [[2004년 하계 올림픽]]의 출전 경험이 있다.<ref name="sports-reference">{{웹 인용|url=http://www.sports-reference.com/olympics/athletes/ki/kim-hui-jeong-1.html |제목=Kim Hui-Jeong Olympic Results |확인날짜=2012년 2월 19일 |웹사이트=sports-reference.com}}</ref> 그녀는 [[2002년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하여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을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0154716 펜싱 이승원-김희정 2관왕 찔렀다]</ref>
  • 난치병 모금사기 . . . . 3회 일치
          * 의료비를 모금하는 단체나, 단체에서 제시하는 의료비의 내역이 불투명하다.
          * 당초 예정제시 했던 목표 모금액을 달성해도, 단체는 모금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 박옥수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종교인]]. [[개신교]] 계통 [[신흥종교]]인 [[기쁜소식선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산하 단체로 국제청소년연합(IYF)을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음력]] [[1944년]] [[6월 2일]] 출생이며, 출생지는 [[경상북도]] [[구미시]].
         여담으로 기쁜소식선교회 산하 집단인 국제청소년연합의 약자와 마크가 [[IYF]]인데 Y자 모양이 유명 선교단체인 [[IVF]]와 헷갈리기 딱 좋게 되어있다.
         예수교장로회연합회라는 단체에서 발표한 [[정통과 이단]]이라는 책자에서는 이들이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만든 사람이 친이단인사로 유명한 사람이고, 주류 개신교단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비평으로 볼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8592|참조]].] 결국 교단 측에서 이단 옹호책자로 완전히 털리고 책 자체가 완전 폐기되었고 예장연 측에서도 이 책의 내용을 공식 부정하고 있다.
  • 박희광 . . . . 3회 일치
         일제 강점기 시절 만주에서 활동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다. 무장독립운동단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통의부)와 임시정부와 연계를 맺고 조직되어 압록강 연안지역을 관할하던 참의부(參議府)에 가담하여 만철연선 친일파 제거등에 참가하였으며, 이후 김광추(金光秋), 김병현과 함께 3인조 암살단을 조직, 활동하였다.
         박희광은 만주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통의부, 참의부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일본 영사관 습격, 친일파 정갑주와 가족 암살, 독립운동가 체포를 위해 활동한 스파이 배정자(裵貞子, 일본식 이름: 다야마 사다코) , 이용구, 최정규 암살임무 등 항일 독립운동단체와 임시정부에 무기와 군자금을 조달 했었다.
         1922년 가을 쯤 300엔이라는 돈의 가치를 추정한다면, 당시 찬거리로 5전(錢)을 내면 푸줏간에서 150g 정도의 작은 쇠고기 덩이를 주었다니까 600g 1근에 20전 정도. 지금의 쇠고기 값 횡성한우 1등급 국거리 600g기준 26,800원으로 잡으면 1전에 1,340원, 그 당시 환율로 100전은 1엔이니 300엔은 40,200,000원정도 추정된다. 당시, 권총 한자루를 구하는데 10개월이 걸렸던 임시정부와 독립운동단체의 자금난을 고려한다면 군자금으로는 거금이라 할수 있겠다. (姜東鎭, ‘日帝의 韓國侵略政策史 – 1920년대를 중심으로’, 한길사, 1980, 394~395쪽)
  • 법테라스 . . . . 3회 일치
         법테라스의 업무는 문의내용에 따라서 해결에 도움을 주는 법률이나, 지방공공단체, 변호사회, 사법서사(법무사) 회, 소비자 단체 등을 안내하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무료 법률 상담이나, 필요에 따라서는 변호사나 법무사 비용을 대행한다. 또 범죄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지원을 주는 범죄 피해자 지원 업무도 하고 있다.
         [[분류:일본 행정]]
  • . . . . 3회 일치
         방탄소년단 비주얼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유순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미남인 [[진(방탄소년단)|진]], [[정국(방탄소년단)|정국]]과는 반대로 섹시한 [[삼백안]]을 가진 [[고양이상]] 미남이라 무표정일 때는 차가운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상남자 활동 시절 [[A.R.M.Y|팬들]]이 뽑은 가장 상남자같아 보이는 멤버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들은 멤버들은 가장 상남자같지 않다며 단체로 반발했다는 게 함정.] 하지만 실상은 식물, 동물, 사람 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는 [[4차원]] 소년이었으니... 오죽하면 멤버들도 처음엔 뷔의 독특한 --정신세계-- 성격이 컨셉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한 [[정국(방탄소년단)|익명의 방탄소년단 멤버]]는 밤에 컴퓨터 앞에서 자는데 '''뷔 형'''이 혼자 부엌에서 음식을 조용히 먹더니 "음, 역시 음식은 안 치우는 게 맛이지♬" 라고 혼잣말을 하고 들어가는 걸 목격했다고 한다. 또한 이어지는 멤버들의 증언으로는 숙소에서 혼자서 빨래를 개다가 1인 2역을 한다거나, 갑자기 사랑에 빠진 연기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스타쇼 360' 2016년 11월 7일자 방송에서는 팬들도 잘 몰랐던 재능인 [[색소폰]]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색소폰으로 [[EDM]](!)을 시도하는 등... 여러 가지 4차원스러운 매력을 뽐내고 있다. [[https://youtu.be/yOMe1SBHDt4|직접 보자]] [[http://tv.naver.com/v/1223489|유튜브가 안 보이면 여기로]] 이런 뷔의 남다른 성격(?)과 행동(?)에 [[일본]] 팬들은 그를 '残念なイケメン(아까운 [[꽃미남]])이라 부른다고(...) [[중국]] 활동은 하지 않음에도 항상 TOP3에 거론될 정도로 중국 팬층이 어마어마하고 탄탄하다.
          * [[방탄소년단]] 멤버 중 가장 마지막으로 공개되었다. 다른 멤버들은 모두 데뷔를 한참 앞두고 공개가 되었었는데 혼자만 데뷔 직전까지 공개되지 않았었다. 어린 나이 + 잘생긴 얼굴 + 좋은 목소리를 가진 탓에, 타 연예 기획사에서 채갈까 봐두려워 마지막까지 공개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생긴 별명이 '뷔밀병기'이다.] 이게 어지간히 답답하고 서러웠는지 첫 로그에서 본인이 계속 방탄소년단과 함께 해왔음을 어필했다. [[크리스마스]] 때도, [[RM]]의 졸업식 때도, 심지어 단체 로그찍을 때도 같이 있었다고. [[정국(방탄소년단)|정국]]의 [[중학교]] 졸업식 때는 숙소에서 잤다고 한다. 그리고 혼자 “2013년 몇 월 며칠, 오늘은 뭐했다, 이거 공개 안되겠지? 슬프다.”는 식으로 로그를 찍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로그들은 공개되지 않았다. --[[안습]]-- 마침내 자신이 방탄소년단 멤버로 공개됐을 때 팬으로부터 편지를 딱 한 통 받았는데, 너무 좋아서 새벽 4시까지 안 자고 열다섯 번 정도 읽으면서 멤버들에게 자랑을 --좀 많이-- 했다고 한다.
          * [[방탄소년단]]의 [[단체]] [[카카오톡|카톡]] 방에서 가장 톡을 많이 하는 멤버. 아무도 대답을 안 해도 계속 혼자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 서병조 . . . . 3회 일치
         [[1919년]] 4월 [[3·1 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조직된 대구자제단 발기인 겸 평의원으로 활동한 것을 비롯해서 [[동민회]],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흥아보국단]], [[조선임전보국단]] 등 각종 친일단체에 가담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의 중추원 부문과 기타 부문,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중추원 부문과 친일단체 부문에 선정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수록되었다.
  • 서석구 . . . . 3회 일치
         [[1982년]]에 판사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198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1987년]]에는 대구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이 발표한 [[4·13 호헌 조치]] 규탄 성명에 참여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대표, 대구YMCA 이사, 낙동강살리기운동협의회 집행위원장, 대구사회연구소 이사장 등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의 여러 시민 단체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다.
         [[2013년]]에는 자신의 SNS에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이재명 (1964년)|이재명]] 성남시장, [[김성환 (1965년)|김성환]] 노원구청장을 [[종북주의]] 성향의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비난하여 [[2014년]] 지방 선거([[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에서 퇴출시켜야한다는 글을 올려 명예훼손, 모욕 등의 혐의로 인한 민·형사상 고소를 당했던 [[정미홍]]의 소송을 담당했다. 정미홍은 서석구, [[전원책]] 등 8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변호인단을 통해 재판에 나섰지만 패소했고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게 된다.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이며 세례명은 '''빈첸시오'''(Vincentius)이다. 보수주의 성향의 로마 가톨릭교회 단체인 대한민국 수호 천주교인 모임의 대표 등의 직책을 역임하고 있다.
  • 실업팀 . . . . 3회 일치
         실업팀의 운영 실태는 모 회사나 운영단체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일반 종업원과 똑같이 업무를 하고, 잔업 시간이나 여가 시간에만 연습과 시합을 하며 어디까지나 부가 활동으로서 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실상 실업팀 활동이 주가 되며 활동이 거의 프로 스포츠 [[클럽팀]]과 같은 수준으로, 형식만 실업팀일 뿐이지 종업원으로서의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스포츠 활동에만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해당 종목을 관할하는 협회의 기준에 따라 준프로 내지는 세미프로로 규정되기도 하며,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다.[* 축구의 경우, KFA에서는 세미프로로 규정된 실업팀들은 대학팀 같은 완전한 아마추어 팀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팀으로 규정된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FA컵]]에서 1라운드 예선을 면제받고 2라운드부터 참가할 수 있는 등의 혜택을 받는다.]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 시기에 올림픽의 상업화가 추진되면서, 프로 선수의 출전을 용인하는 흐름이 되었다. 이 때문에 올림픽이라는 세계 무대가 프로 선수에게 전면적으로 개방되면서, 많은 스포츠 단체가 굳이 실업팀 같은 형태로 아마추어 신분을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프로 스포츠로서 활성화된 종목에서는 실업팀이 대부분 고사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축구는 아예 "프로화"를 FIFA와 대륙급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권장함은 물론이고 [[AFC 챔피언스 리그]]와 같은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인화가 완료되었으며 프로선수로 구성된 "완전한 프로팀"만이 참가가 가능하도록 규정하는 등, 사실상 프로와 아마추어의 간극을 넓게 만들고 있다.
  • 안지만 . . . . 3회 일치
         {{금메달|[[2010년 아시안 게임|2010 광저우]]|[[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단체전]]}}
         {{금메달|[[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단체전]]}}
         '''안지만'''(安志晩<ref>{{웹 인용|url= http://www.koreabaseball.com/file/ebook/pdf/2009KBO_guide.pdf|제목= KBO 프로야구 가이드북 2009|출판사=[[KBO (단체)|한국야구위원회]]|확인날짜=2017-01-10}}</ref>, [[1983년]] [[10월 1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 영양군 . . . . 3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경상북도]] 동북부에 있는 군. 면적은 815.14㎢ , 서쪽은 [[안동시]], 북쪽은 [[봉화군]], 남쪽은 [[청송군]], 동쪽은 [[영덕|영덕군]], [[울진군]]과 접하고 있으며 인구는 2018년 2월 기준 약 1만 7천 명. 영양군보다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는 [[경상북도]] [[울릉군]]뿐이다. 그나마도 울릉군은 자그마한 섬이라는 특수성이 있으니, 이 영양군이 (섬을 빼고) [[육지#s-2|육지]] 중엔 사실상 한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셈이며, 이는 [[팔라우]] 전체 인구와 거의 비슷하다. 아울러 인구 밀도 21명/㎢로 전국에서 [[강원도]] [[인제군]]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밀도가 낮은 시군이다. 참고로 인제군의 인구밀도는 20명/㎢. 그러나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고 인제군에서 군 복무를 하는 대다수 군인들을 감안하면, 실제 인구밀도는 오히려 영양군이 인제군보다 더 낮을 수도 있다.
         [[분류: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북도의 행정구역]][[분류:영양군]]
  • 울진군 . . . . 3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가끔 일부 주민들이 원자력 발전소 앞에서 시위를 하는데 이건 [[환경단체]]와 연계된 일부이고 대다수의 주민들은 별 신경 안 쓰고 발전소의 혜택을 꽤나 많이 보고 있다. 발전소 하나가 '''울진군 세수의 70%'''를 담당하고 있고 부구리의 [[초등학교]]에는 놀랍게도 인조[[잔디]][[운동장]]이 깔려있다. ~~부럽다~~ 울진읍의 중학교에도 인조잔디운동장이 깔려있다.
         [[분류: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북도의 행정구역]][[분류:울진군]]
  • 이각종 . . . . 3회 일치
         [[1925년]] 6월부터 1930년대 초 중반까지 잡지 《신민(新民)》의 발행 겸 편집인을 맡았다. [[1936년]] 2월 전향자 출신 인사들이 결성한 황국신민화 단체인 백악회(白岳會)를 조직했고 같은 해 7월에는 백악회를 확대 개편한 단체인 대동민우회를 조직했다. 1937년부터 1939년까지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 촉탁과 경성보호관찰소 촉탁보호사를 겸직하는 한편 1937년 이후부터 시국강연회, 시국대응강연회, 시국유지원탁회의 등에 참석하여 국민정신총동원과 내선일체를 적극 주장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의 기타 부문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다. [[2005년]] 고려대학교 교내 단체인 일제잔재청산위원회가 발표한 '고려대 100년 속의 일제잔재 1차 인물' 10인 명단<ref>{{뉴스 인용
  • 이산하(시인) . . . . 3회 일치
         절필의 기간 동안 그는 재야 민주단체와 시민단체에서 활동했고 각 단체들에서 발행하는 기관지와 문학지에서 편집 일을 하며 사회운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절필 11년 만인 1998년 계간지 <[[문학동네]]>에 시 4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복귀하여 다시 문학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이종원 (1953년) . . . . 3회 일치
         [[분류:일본의 정치학자]][[분류:일본의 역사가]][[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본의 대학 교수]][[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국제 기독교 대학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교수]][[분류:도호쿠 대학 교수]][[분류:릿쿄 대학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종화 (1949년) . . . . 3회 일치
         |직업 = 전.기초단체장, 전.공무원
         * 2004. 06. 08 ~ 2014. 06. 30 : 26~28대 대구 북구청장 (3선, [[한나라당]]→[[새누리당]])[대구의 최초 3선 기초단체장]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내성초등학교 (경북) 동문]][[분류:오성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전인범 . . . . 3회 일치
         2007년 7월 국제 테러단체인 [[탈레반]]에 의한 [[탈레반 한국인 납치 사건|아프간 한국인 납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한 카불 군사협조단장으로 급파, 인질 구출작전을 지휘하여 사건 발생 43일 만에 21명의 인질을 구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임무는 군사협조단 단장으로서 [[:en: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국제안보지원군사령부]]에 파견돼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외국군을 설득할 논리가 부족하니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자고 생각하였다. 우선 [[:en:Swedish Armed Forces|스웨덴군]] 소장에게 ‘사람들 살려야 한다’, ‘사무실이 필요하다’, ‘상황실 출입을 허가해달라’, ‘인터넷, 유선전화, 휴대전화 쓰게 해달라’, ‘숙식 제공해달라’ 등을 부탁했다. 상황실에서는 유학시절에 알고 지낸 [[:en:Bundeswehr|독일군]], 미군을 만나 사람들이 죽고 사는 문제이니 많이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ref name="a"/> 이렇게 군사협조단을 통해 수집된 인질 및 탈레반 세력의 동향 첩보 등은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는데 기초자료가 됐고, 특히 인질 억류지역에서 동맹군의 불필요한 군사행동을 억제한 노력은 인질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743352 <軍, 아프간 인질 석방 숨은 공로자>-1,2], 《연합뉴스》, 2007년 9월 2일</ref> 이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80303&parent_no=8&bbs_id=BBSMSTR_000000000138 아프간 인질석방 공로 군인 '훈·포장' 수여], 《국방일보》, 2008년 3월 3일</ref>
         2016년 10월부터 [[:en:Brookings Institution|브루킹스 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방문연구원, [[:en:Paul H. Nitze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1년 동안 활동했다. 미국 연구기관의 연수는 연수자가 주제를 선정해 그 분야를 연구하며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는 활동을 하는데,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한국의 핵무장, 한미 군사동맹 강화 방안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111010007259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미국, 북핵 심각하게 평가... 미 공격 초래 상황 가고 있어”], 《아시아투데이》, 2017년 1월 12일</ref> 연수 3개월 동안 프린스턴 대학교 등 학교에서 특강,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세미나 참여, 워싱턴 내의 많은 연구소와 기관 발표, 세미나, 회의에 참석해 미국의 생각을 이해하고 한국의 입장을 미국 전문가들에게 적극 설명하였다고 말했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59&bbs_id=BBSMSTR_000000000138&ntt_writ_date=20170117 ‘한국 안정·동북아 평화=美 국익’ 각인시켜야], 《국방일보》, 2017년 1월 16일</ref> 2017년 1월에는 특전사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전국적으로 2만 6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사단법인 봉사단체인 특전동지회의 제2대 총재로 취임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3180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제2대 특전동지회 총재 취임], 《뉴데일리》, 2017년 1월 16일</ref> 전 총재는 취임사를 통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대한민국 친목단체의 새로운 章을 열겠다”고 다짐하며, “현역 후배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고, 회원을 편애하지 않는 모두의 특전동지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역설했다. 같은 달 [[북한]]의 [[김정은]] [[조선로동당|노동당]] 위원장에게 [[대륙간탄도유도탄|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등의 재고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A4 용지 4장 분량의 영문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ref>[https://www.nknews.org/2017/01/dear-kim-jong-un-an-open-letter-from-a-former-s-korean-lieutenant-general Dear Kim Jong Un: An open letter from a former S. Korean lieutenant general], 《NK NEWS》, 2017년 1월 23일</ref>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편지’라는 제목의 이 편지에서 그는 “평화를 추구할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라면서 “가장 필수적인 첫 단계는 공공연한 위협의 회피, 핵과 미사일 실험의 중단, 핵무기 개발부터 인권에 이르기까지 신뢰를 증진시킬 협상에 참여하는 것 등을 포함합니다”라고 평화 프로세스를 제안했다.<ref>[https://kr.nknews.org/%EA%B9%80%EC%A0%95%EC%9D%80-%EC%9C%84%EC%9B%90%EC%9E%A5%EB%8B%98%EA%BB%98-%EC%A0%84-%EB%8C%80%ED%95%9C%EB%AF%BC%EA%B5%AD-%EC%9C%A1%EA%B5%B0-%EC%A4%91%EC%9E%A5%EC%9D%98-%EA%B3%B5%EA%B0%9C-%ED%8E%B8/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 편지], 《NK NEWS》, 2017년 1월 25일</ref>
  • 정광용 . . . . 3회 일치
         '''[[박사모]]를 비롯한 [[친박]][[극우]]단체들을 이끌며 그들의 추악하고 광신도적인 모습을 세상에 보인 악질 선동꾼.'''
         2017년 4월 10일 정광용은 40억원대 기부금법 위반 및 사기‧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이후 친박 단체간 내홍은 더욱 격화되어 5월 13일 대선이 끝난 직후 벌어진 첫 주말집회에선 정광용 찬성파vs반대파 인원들간에 험한 욕설과 몸싸움이 빚어지는 꼴사나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991276|#]]
         [[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관련 인물 및 단체]][[분류:대한민국의 범죄자]][[분류:1958년 출생]][[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차금봉 . . . . 3회 일치
         서울 미동보통학교(渼洞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1917년]] 용산(龍山) 기관차 화부 견습공으로 일하던 중,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노동자들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식민지 현실의 노동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1920년 2월 조선노동문제연구회 발기인으로 참가했고, 같은해 3월 [[김명식 (1890년)|김명식]]·[[오상근]] 등과 함께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를 조직하여 교양부 간사를 맡았다. [[1922년]]에는 최상덕 등과 함께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조선노동공제회의 쇄신운동을 폈으며, 동년 9월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었다. 조선금물직공조합·경성신문배달조합 창립을 지도했으며, 1923년 9월에는 조선노농대회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1924년 5월 [[조선노농총동맹]]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었으며, 각지의 공장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활동했다. 1926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노동운동 단체와 농민운동 단체를 분리하는 정책을 실행시키기 위해 힘썼다.<ref name="역대"/>
         [[1927년]] 비타협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연대하여 결성한 [[신간회]] 단체가 결성되자, [[1928년]]에는 신간회(新幹會) 경서(京西)지회 설립을 주도하여 간사를 맡았으며, 한편으로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책임비서 등으로 활동했다. 그는 3·1운동 기념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에 지시하여 선전전단 20만장을 도쿄의 동성사에서 인쇄했는데, 우송 도중 서울우편국에서 발각되고 말았다. 1928년 7월 제4차 조선공산당이 발각되는 상황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피신했으나 도쿄에서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당한 뒤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1929년 3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옥사했다.
  • 창작:IDF . . . . 3회 일치
         전차의 경우 특성상 높은 기동력으로 적 기갑전력을 상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만큼 평화유지 부대가 이러한 전차부대를 운용하는데 필요성이 적다는 이유로 정규군에 준하는 군대를 제압하기 위해서 2개 정도의 여단만 보유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중 1개 여단은 현재 [[IS]](이슬람 무장 단체)로 인해 바그다드에 주둔중. 1개 여단은 중앙아프리카에 있다고는 하나 정확한 위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쿠데타가 일어났을때 즉각적으로 조치하기 위해 숨겨놓는것 이라고 추정된다.
         주요 활동 지역은 미국-멕시코 국경, 아프리카 전역, IS(이슬람 무장 단체) 활동지역 부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경지대이다. [[http://rigvedawiki.net/w/%EC%9C%A0%EB%A1%9C%EB%A7%88%EC%9D%B4%EB%8B%A8|유로마이단]]으로 인해 국가간 국경지역에 약간의 부대가 '완충제' 역할을 하고 있다..
         >상기 사항은 입수된 대외비 등급의 자료에서 확보한 것 입니다. 이 단체가 국제기구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조직의 가장 기본적인 내역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모르겠군요.
  • 청도군 . . . . 3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경상북도]]의 최남단에 있는 군이다. 인구는 약 4만 3천명 정도. 인접한 자치단체로는 [[경상북도]] [[경산시]], [[경주시]], [[영천시]], [[대구광역시]] [[달성군]][* 정확한 위치는 [[가창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경상남도]] [[밀양시]], [[창녕군]] 등이 있다.
         [[분류: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북도의 행정구역]][[분류:청도군]]
  • 추미애 . . . . 3회 일치
          * [[1997년]] ‘여성권익디딤돌'수상 <한국여성단체연합> (남녀평등실현과 여성권익 향상에 디딤돌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 [[2003년]] 차세대 지도자감 1위 <시사저널> (시민단체 활동가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 [[2014년]] 국정감사 과학기술 최우수 의정상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 트로피코 4/칙령 . . . . 3회 일치
         국제 구호 단체를 받아들인다. 구호 단체는 원조 캠프를 치고 5년간 무상 의료와 무상 식량을 나누어준다. 외국인 따위의 도움을 받는 것이므로 국수주의자의 존경심이 하락한다.
         발표할 경우 국수주의자들이 "국제 구호 단체 직원들 때리기"라는 스포츠를 만들어 낸다. 관심 있는 사람은 엘 디아볼로에게 연락할 것.
  • 하시다 스가코 . . . . 3회 일치
         [[분류:192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본의 영화 각본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의 텔레비전 각본가]][[분류:기쿠치 간상 수상자]][[분류:일본여자대학 동문]][[분류:사카이시 (오사카부) 출신]]
  • 홍승목 . . . . 3회 일치
         홍승목은 [[1907년]] [[대한제국 고종|고종]]이 강제 퇴위된 후부터 친일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여, [[1910년]] [[한일 합병 조약]] 체결 직전부터 협조한 관료들에 비해서는 좀 더 이른 시기에 적극적으로 친일파로 전향한 편이다.
         [[대동학회]] 부회장을 맡았다가 회장 [[신기선 (1851년)|신기선]]이 사망하자 회장직을 물려받았고, 대동학회 후신인 [[공자교회]]의 부회장도 역임했다. [[1908년]]에는 [[민원식]]이 주도한 [[제국실업회]]의 회장을 맡았는데, 이 단체 역시 일본인을 고문으로 위촉하고 친일 성향의 보부상 등을 끌어모아 합방을 앞당기기 위한 활동을 벌인 친일 단체였다. 이 무렵 [[윤덕영]], [[민영기 (1858년)|민영기]]가 [[박제순]]을 회장으로 내세워 조직한 [[관진방회]]에 가담했고, [[1909년]] 이완용이 [[일진회]]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국민연설회]] 기초위원도 지냈다.
  • 황보관 . . . . 3회 일치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코칭스태프]][[분류:1988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침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서울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영천 황보씨]][[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감독]][[분류:J1리그의 축구 감독]][[분류:J2리그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재팬 풋볼 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감독]]
  • UR임대 . . . . 2회 일치
         과거에 공단주택(公団住宅)이라고 불렸으며, 도시공단에서 관리했다. 현재는 도시재생기구(都市再生機構)에서 관할하고 있으며, 이 단체의 영문명인 Urban Renaissance Agency 에서 UR을 따와서 UR임대주택이라고 불린다. 일본 전국에 약 75만 가구가 존재한다.
         [[분류:일본 풍속]]
  • 고사기 . . . . 2회 일치
         [[분류:일본사]][[분류:역사서]][[분류:일본어]]
  • 고성국 . . . . 2회 일치
         사면된 이후인 [[1988년]] [[11월 5일]]에는 진보적 학술단체인 학술단체협의회의 대외협력분과위원장으로 참가했다. 이 학회에는 고성국을 비롯, [[송건호]], [[최장집]] 등 진보 지식인들이 참여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1040028910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11-04&officeId=00028&pageNo=7&printNo=150&publishType=00010</ref> 이후에도 진보 학술, 정치세력의 포럼에 다수 참가했다.
  • 광언 . . . . 2회 일치
         [[분류:일본어]][[분류:일본 풍속]]
  • 김관용 . . . . 2회 일치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0대 | [[지방 관청|지사]] | [[경상북도지사|경상북도]] | 한나라당 | 913,812 표 | 75.36 | 1위 | 당선_경북 |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 경상북도#광역자치단체장|재선]], 민선 5기}}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1대 | [[지방 관청|지사]] | [[경상북도지사|경상북도]] | 새누리당 | 986,989 표 | 77.73 | 1위 | 당선_경북 |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 경상북도#광역자치단체장|3선]], 민선 6기 }}
  • 김충섭 . . . . 2회 일치
         [[분류:1954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자치단체장]]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 . . . . 2회 일치
         이 과정에서 우익 정치 세력과 결탁하게 되었으며, 베르사유 조약으로 [[무직]](…)으로 전락한 많은 독일군 퇴역 장교들은 우익 민병대로 흘러 들어갔다. [[나치 돌격대]]나 [[철모단]] 같은 우익 정치 조직은 퇴역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다.(물론 좌익으로 흘러들어간 경우도 적지 않았다.) 독일군 내부에도 우익 세력이 침투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우익 단체들 가운데 [[나치]]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1996~1997년에는 전시회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했으며, 여기에는 [[기독교민주당]], [[기독교사회당]], [[민족민주당]](NPD), 그리고 퇴역군인 단체가 나섯다. 하지만 결국 국방군 전쟁범죄는 공식적으로 추궁받게 되었고, 마침내 독일 국방부가 국방군의 전쟁범죄 참여를 인정하게 되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8화 . . . . 2회 일치
          * 다음날 미도리야는 인턴으로서 첫 일을 받는다. 임무는 패트롤과 "감시". 팀은 나이트아이와 버블걸, 밀리오와 미도리야로 나뉜다. 현재 나이트아이는 "시에핫사이카이"라는 과거의 야쿠자, 현재의 "지정 빌런 단체"를 비밀조사하고 있다. 특히 그들의 차기 보스 "치사키", 통칭 [[오버홀]]은 요주의 인물. 나이트아이는 밀리오와 미도리야에게 그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가 묘한 움직임을 시작했다고 전달한다.
          미도리야도 지정 빌런 단체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대개는 얌전한 사람들이다. 과거 대대적인 해체로 힘이 약해졌기 때문. 그런데 이 치사키만은 힘을 끌어모으며 최근엔 [[빌런 연합]]과도 접촉했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범죄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증거없이 구속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나이트아이 사무소가 비밀리에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5화 . . . . 2회 일치
          * 착석이 끝나고 회의가 시작된다. 나이트아이의 사이드킥 [[버블걸]]이 간단히 브리핑을 시작한다. 나이트아이의 사무소는 2주 전부터 지정빌런 단체 "시에핫사이카이"를 조사하고 있었다. 계기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레저보어독스라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0화|빌런 강도단의 사고]]였다. 경찰은 사고로 처리했지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그들에게 의뢰, 조사가 시작되었다.
          이것만 가지고는 시에핫사이카이를 추적할 만한 근거는 안 되지만, 이번엔 류큐의 사무소가 처리한 일이 연결고리가 됐다. 네지레, 오챠코, 츠유가 함께 처리한 빌런단체의 리더가 방금 전 유통망에 끼어 있던 조직의 일원이었다. 게다가 이때 거대화했던 빌런은 "개성을 강화하는 약"을 사용했는데, 이건 키리시마가 상대한 빌런과 일치한다.
  • 노해 . . . . 2회 일치
          * [[프로레슬링]] 같은 경우는 종목 특성상 유명 선수가 오래 뛸 수 있으며, 집객능력 면에서 베테랑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몇몇 유명 선수가 '챔피언병'(…)에 걸려서 장기집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결과 신인데뷔가 줄어들고 단체나 종목 전체 에서 고령화 현상이 일어나서 심각한 문제를 겪기도 한다.
         [[분류:일본어]]
  • 니시키노미하타 . . . . 2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일본 풍속]]
  • 다이코쿠바시라 . . . . 2회 일치
         이것이 바뀌어서, 한 일가나 가문, 단체나 나라의 기둥 같은 존재. 중심인물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분류:일본어]]
  • 데부센 . . . . 2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일본 속어]]
  • 데키콘 . . . . 2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일본 속어]]
  • 디아스포라 . . . . 2회 일치
         분산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오픈소스]]로 개발되는 [[비영리]]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디아스포라 재단이라는 단체에서 관리하고 있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서비스이지만, [[트위터]]에서 퇴출당한 [[이슬람 국가]]가 디아스포라를 조직원에게 지령을 전달하는 정보 소통 통로로 악용하고 있는 문제가 생겨났다. 디아스포라는 보안 수준이 높기 때문에 그룹에 참여한 사람들 끼리만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네트워크 관리자도 이에 접근하는 것에 쉽지 않아 테러 단체가 악용하여도 추적이 어렵다고 한다. 디아스포라 개발자들은 이에 우려하고 있으나 통제가 어렵다.[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H11&newsid=01161126606190272&DCD=A00801&OutLnkChk=Y 참조기사] 뭐든지 좋은 뜻으로 만들면 나쁘게 써먹는 놈들이 있는 것 같다.
  • 마카나이 요리 . . . . 2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일본 풍속]]
  • 메탈슬러그 시리즈 . . . . 2회 일치
         일본의 런앤건 [[슈팅 게임]] 시리즈. 로널드 모덴 원수가 일으킨 반란군 및 사이비스러운 불법 무장 단체, 괴생물체, 외계인, 그 외 등등에 대항해 싸우는 특수부대를 다루고 있다.
          메탈슬러그 5에 등장하는 적들. 불법 무장 단체다.
  • 미즈코 . . . . 2회 일치
         일본 오컬트 용어. 본래는 어린 시절에 죽은 아이들의 영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1980년대 무렵부터 [[낙태]]로 죽은 아이들의 영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미즈코 공양'이라고 하여, 낙태로 죽은 아이들을 공양하는 종교단체(주로 불교사원)이 있다.
         [[분류:일본어]]
  • 박진성(시인) . . . . 2회 일치
          * 故 [[성재기]]를 비상식적이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성재기는 [[성재기/평가|'박근혜 지지=남성연대지지'라며 박근혜 지지철회자들에게 "병신"이라며 "조금만 좋으면 학학대고 조금만 싫으면 획 바뀌는 인스턴트인생들,너희들이 하찮다.굿이나보고 떡이나 처먹어"]]라고 말했다. 그런데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당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박근혜를 밀어줬고 박근혜 측도 "준비된 여성대통령" 슬로건을 사용했는데도 그는 계속 '박근혜 지지=남성연대 지지'라고 주장해서 제대로 된 남성인권단체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게 했다. 아래는 박진성 시인의 평가다.
          >'''성재기 류의 비상식적이고 몰시대적이고 희화화된 단체 말고''' '남성의 인권'을 대변해줄 기관이나 시민 연대 같은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단지 남성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량한 남성들을 지키고 싶은 여성들을 위해서라도.
  • 배천석 . . . . 2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포항제철동초등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비셀 고베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이천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 . . . . 2회 일치
         [[분류:일본 논란]], [[분류:일본 사건]]
  • 분류:일본 여배우 . . . . 2회 일치
         [[분류:일본 연예인]]
         [[분류:일본 여배우]]
  • 불심자 . . . . 2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일본 풍속]]
  • 사람의 소문도 칠십오일 . . . . 2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일본 속담]]
  • 산킨고타이 . . . . 2회 일치
         [[분류:일본사]] [[분류:일본어]]
  • 세속주의 . . . . 2회 일치
         세속주의는 [[정교분리]]를 주장하며, 특정 종교의 규범이 국가기관을 통하여 사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반대한다. 세속주의는 국가기관이 어떤 형태로든 종교 단체와 관련되는 것을 비판한다.
         세속주의 단체에서는 세속주의가 [[민주주의]]와 [[평등]]을 옹호한다고 본다
  • 손치은 . . . . 2회 일치
         |제목=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친일단체 부문에 선정되었다.
  • 시노자키 아이 . . . . 2회 일치
         [[분류:일본 연예인]]
         [[분류:일본 인물]]
  • 식극의 소마/211화 . . . . 2회 일치
          * WGO는 미식계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단체로 이들이 내리는 별점평가는 요식업에선 절대적. [[시노미야 코지로]]가 달한 "별을 딴다"는 것도 이것이다.
          * WGO는 기독교 신앙에 기반한 단체인지 미식과 자기네 평가서를 "교전"라 지칭하고 [[나키리 아자미]]와 비슷한 광신적인 행태를 보인다.
  • 영덕군 . . . . 2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분류: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북도의 행정구역]][[분류:영덕군]]
  • 영주시 . . . . 2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북도의 행정구역]][[분류:영주시]]
  • 영천시 . . . . 2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북도의 행정구역]][[분류:영천시]]
  • 예천군 . . . . 2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분류: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북도의 행정구역]][[분류:예천군]]
  • 오냥코 클럽 . . . . 2회 일치
         [[분류:일본 아이돌]]
         [[분류:일본 아이돌]]
  • 오이다시베야 . . . . 2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일본 풍속]]
  • 오재희 . . . . 2회 일치
         [[분류:193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컬럼비아 대학교 동문]][[분류:일본 주재 대한민국 공사]][[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차관]][[분류:일본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파키스탄 주재 대한민국 대사]]
  • 옴 진리교 . . . . 2회 일치
         [[아사하라 쇼코]](본명 마츠모토 치즈오)를 [[교조]]로 하는 [[컬트 종교]] 집단. [[불교]]와 [[요가]]에 바탕을 둔 신흥 종교 단체로서 1984년에 활동을 시작하였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하여 다수의 신도를 모았으며, 점차 급진, 과격한 교리에 몰두하게 되어 다양한 범죄 활동을 일으켰다. 1995년 아사하라 쇼코의 지시로 일으킨 [[지하철 사린 사건]]을 계기로 하여 교주 아사하라가 체포되었으며, 2000년에 [[파산]]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그 잔당은 [[아레프]]와 [[빛의 고리]]라는 단체로 분열하여 여전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 우현(배우) . . . . 2회 일치
         물론 논란이 될 사항은 아니다. 민주화 운동가였던 故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도 [[1987(영화)|1987]]에서 [[전두환]]의 심복이자 [[안기부]]의 수장이었던 [[장세동]] 역으로 출연했는데(...) 정작 문성근 씨는 진보 성향인데다 과거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역임한 바 있으며, 또한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라는 [[시민단체|시민운동단체]]를 조직하는데 앞장서서 진보시민운동을 주도하기도 했고, 현재도 [[진보]] 진영에서 여러 활동을 하지만 영화, 드라마 등 작품에서는 반대 성향의 역할을 맡아왔다([[군부]] 정권 시절의 친 정부 성향 경찰 간부나 [[정보기관]] 수장, 부패한 정치인, 언론인 등등). 본인 스스로도 [[한밤의 TV연예]] 인터뷰에서 “그 영화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라고 밝혔다.
  • 원피스/829화 . . . . 2회 일치
          * 부하들은 수도의 호텔에 "슈크림 단체 손님"[* 문자 그대로 말하는 슈크림들. 자아가 있다.]이 있는걸 떠올리고 그들을 포섭하려 하지만 하필 오전에 체크아웃했다.
          * 그는 오전에 체크아웃했던 슈크림 단체 손님을 찾아서 크로캉 부슈로 만들어왔다.
  • 유토리 . . . . 2회 일치
         [[분류:일본어]][[분류:일본 풍속]]
  • 윤석용 . . . . 2회 일치
         [[2012년]] [[2월 14일]]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대한장애인체육회가 후원받은 8275만원 상당의 옥매트 250개를 횡령해 지역 복지단체와 동료의원 사무실 등에 임의로 전달한 혐의, 자신의 지역구(서울 강동을) 선거구민과 연관된 단체에 축구공 100개와 30여만원 상당의 김ㆍ빵을 기부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 2011년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장애인체육회 직원 20여명을 동원해 단계적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내용의 투표 운동을 시켜 주민투표법을 위반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횡령혐의는 무죄,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확정되었다.<ref>{{웹 인용|제목=옥매트 횡령 윤석용 의원 불구속 기소(종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512434.html|저자=[[연합뉴스]]|확인날짜=2012-02-14}}</ref>
  • 이경희 (1880년) . . . . 2회 일치
         광복 직후 초대 [[경상북도]] [[부지사]]와 초대 [[대구광역시장|대구부윤]], 미 군정 경상북도사령부 민정관 등을 역임했으나 [[미군정]]과의 갈등으로 사퇴했다. 이후 시민단체,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자는 군선(君善) 또는 군미(君美)이고, 호는 지오(池吾), 본관은 [[인천 이씨|인천]](仁川)이다. [[경상북도]] 출신.
         [[1927년]] [[2월]] [[경성]]으로 상경하여 [[허헌]], [[조병옥]], [[김병로]], [[이인]], [[허정숙]] 등과 함께 [[신간회]] 발족에 참여하였고, [[신간회]] 경성중앙본부 총무간사를 맡았으며, 곧 [[신간회]] 경상북도지회가 결성되자 [[신간회]] 중앙본부 총무간사와 경상북도 지회장을 겸하였다. 그 뒤 [[신간회]] 경상북도 대구부지회가 결성되자 [[신간회]] 대구부 지회장을 겸임하시면서 한때 30여 세포와 만여 회원을 포섭, 가입시켜서 단체를 키웠다. 1927년 12월 [[신간회]] 대구지회장 직을 부회장 [[최윤동]]에게 넘겨주고 이후 평회원으로 활동했다. 이어 [[신간회]] [[밀양]]지회 조직을 지원하러 내려갔다가 불심검문을 받고 [[밀양]]에서 검속되었다. 그뒤 [[신간회]] 밀양지회 산하 조직인 [[밀양청년회]](密陽靑年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는데, 항상 [[밀양경찰서]]와 파견된 총독부 경찰의 요시찰인으로 감시를 받았다.
  • 이시영(배우) . . . . 2회 일치
         [[분류:일본 연예인]]
         [[분류:일본 여배우]]
  • 이인 . . . . 2회 일치
         이인은 [[1896년]] [[10월 26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사일동(射一洞)에서 아버지 이종영(李宗榮)과 어머니 연일 정씨 정복희(鄭福姬)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할아버지 이관준은 영남의 명망가이자 [[성리학]]자였고, 삼촌 [[이시영 (1882년)|이시영]]은 독립운동가로 순국하였다. 아버지 이종영은 [[대한제국]] 당시 애국 계몽운동단체인 [[자강회]](自彊會)와 [[대한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던 계몽운동가였다.
         이후 [[장택상]] 등과 고학생의 상조(相助)기관인 갈돕회를 조직했다. [[1925년]]에는 갈돕회의 총재를 맡고 여자고학생상조회를 조직하는데 도움을 주어 고학생을 돕는 한편, [[조선어연구회]]의 [[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위원이 되어 사전편찬사업을 적극 지원했다. [[1927년]] [[신간회]]의 창립과 더불어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신간회]]의 해소론이 제기되자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만의 민족단체를 조직할 것을 주장했다. [[1930년]] 수원고등농림학교 학생들의 흥농사(興農社) 사건을 변호하다 [[재판정|법정]]에서 일본의 학정(虐政)을 비난하여 법정불온변론 혐의로 6개월 동안 [[변호사]] 자격정지 및 정직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조선물산장려회]] 회장이 되었다. 1931년에는 조선변호사협회 회장이 되었고, 1935년에는 [[이우식]](李祐植)·[[김양수]](金良洙) 등과 함께 조선어사전 편찬을 위한 비밀후원회를 조직하여 재정지원을 했다.
  • 이장섭 . . . . 2회 일치
         '''이장섭'''([[1963년]] ~ )은 [[대한민국]]의 시민사회 운동가 출신 정치인, 공무원이다. [[1986년]] [[민주화운동협의회]] 충북지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국회의원 [[노영민]]의 보좌관, 국회의장 비서실 비서관 등을 역임했고,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자 캠프에서 활동하였다. [[2017년]] [[5월 11일]] [[문재인]]이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청와대]] 경제수석실 산하 산업정책비서관실 선임행정관(2급 [[이사관]]급 상당)에 임명되었다.
         * [[대한민국 국회|국회]]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회 위원
  • 이정호 (1982년)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단체)|KBO]] / [[2001년 한국프로야구|2001년]] [[4월 6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한화 이글스|한화]] 전 [[구원 투수|구원]] <br /> (4이닝 4피안타 1피볼넷 2탈삼진 1세이브)
         |마지막 경기 = [[KBO (단체)|KBO]] / [[2010년 한국프로야구|2010년]] [[5월 14일]] <br /> [[목동야구장|목동]]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 전 [[구원 투수|구원]] <br /> (3이닝 1홀드)
  • 이지은(2000) . . . . 2회 일치
         122번으로 예고편[[http://tv.naver.com/v/2125890|링크]]에서 0.5초 분량으로 등장했다. [[10월 26일]] 믹스나인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뮤직웍스 소속으로 [[한지예]], [[김시현(뮤직웍스)]], 마이틴 멤버들과 같이 공개됬다.[[https://www.instagram.com/p/Batfyb3n40r/|링크]] 최초 쇼케이스에서 얼굴을 드러내며, 방송 참여를 알렸다. 같은 소속사 [[김시현(뮤직웍스)]]과 참여하게 되었으며, 최초 B클래스 소속에 48번으로 호명되었다. 이후 [[http://tv.naver.com/v/2259465|30초 선공개영상]]과 [[http://tv.naver.com/v/2287038|뮤직웍스 단체무대 풀샷]]이 공개되었다.
          * 단체사진을 찍을 때 의도적으로 얼굴을 가리곤 한다. --셀카는 잘찍으면서...--
  • 이태현(씨름) . . . . 2회 일치
         그러나 2006년 한국씨름연맹[* 흔히 (프로)씨름을 관장하는 단체가 대한씨름협회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됐다. 쉽게 말하자면, 야구로 치면 대한씨름협회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한국씨름연맹은 [[한국야구위원회]]와 같은 위치의 단체들이다.]의 막장 행정, 세력간 정치다툼으로 흑화가 되고 [[최홍만]]이 [[K-1]]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자, 이태현은 소속팀 현대삼호중공업과 2012년까지 맺었던 계약을 파기하며 [[종합격투기]]에 뛰어든다.[* 이 때 소속 팀인 현대삼호중공업이 이태현에게 계약파기에 대한 소송을 걸었다가 취하했을 정도로 이태현은 종합격투기 진출 선언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다.] 이태현은 국내 복귀 후 인터뷰에서 "그저 관중이 있는 곳에서 시합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는데, 종합격투기의 화려한 조명과 관중들의 환호, 매스컴의 관심 등을 보면서 엄청난 유혹에 시달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일즙삼채 . . . . 2회 일치
         [[분류:일본 요리]] [[분류:일본 풍속]]
  • 장도 (1876년) . . . . 2회 일치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에게 사살되었을 때 추모 사업에 동참했다. [[1921년]]에 [[이완용]] 등 거물급이 대거 참여한 고급 사교단체인 [[조선구락부]]의 발기인을 지냈고<ref> {{서적 인용
         |제목=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 장발 (화가) . . . . 2회 일치
         장발은 [[일제 강점기]]에 친일단체로 분류되는 [[조선미술가협회]] 서양화부 평의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으며, 이 사실은 [[전남대학교]] 교수 이태호가 [[1992년]] 발표한〈[[1940년대]] 초반 친일 미술의 군국주의적 경향〉이라는 논문에서 알려졌다. 서울대 미대 교수인 [[김민수 (1961년)|김민수]]가 [[1996년]] 개교 50주년 기념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서울대 미술대학 디자인 - 공예 50년사〉라는 논문의 각주에서 이 논문을 인용한 바 있다. [[2005년]]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ref>{{뉴스 인용|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5-04-07|확인날짜=2008-03-05|제목=서울대 일제청산위, 1차 친일인물 12명 발표|저자=조호진|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47516}}</ref> 그러나 다른 친일 화가들에 비하여, 장발이 적극적으로 일제를 미화하는 작품을 남겼거나 열성적으로 친일하였다는 증거는 없다.<ref>{{뉴스 인용| url =| 제목 = 서울대미대 장발 교수 흉상에 일장기 부착| 저자 = 서울대 인터넷신문 S&U| 날짜 = 2001년 3월 3일| 출판사 = 오마이뉴스}}</ref>
  • 장진남 . . . . 2회 일치
         * [[2000년]] KBK 코리아 마스터즈 단체전 준우승
         * [[2000년]] 한솔 국제 게임랭킹 단체전 준우승
  • 장혁주 . . . . 2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다. [[1926년]]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아나키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29년]] 이후부터 대구 희도(喜道)소학교 훈도로 근무했고 [[1932년]] 소설 〈아귀도(餓鬼道)〉를 발표하여 [[일본]] 문단에 등단했다. [[일본어]]로 쓰인 소설이지만, 식민지의 참혹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당시 계급문학에서 유행하던 농민소설에 못지않은 현실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url=http://www.artnstudy.com/zineasf/Nowart/penitence/lecture/03.htm}}</ref>, 이 시기에 [[황도조선연구회]], [[대륙개척문학위원회]] 등의 친일단체에 가담한 바 있다.
  • 저변교 . . . . 2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일본 풍속]]
  • 정재안 . . . . 2회 일치
         |직업 = [[대한민국 |시회기관단체인]]
         |소속 = [[사회기관단체인]]
  • 조응천 . . . . 2회 일치
         이때 자리에 함께 있던 부인은, 조응천 의원이 자주 입고 다니는, 땡처리로 구입한 ~~[[김영란법]]에 안 걸리는~~ 몇 천 원짜리 회색 후리스 스웨터를 '남편을 잘 부탁한다는 뜻의 징표'라며 [[문재인]] 대표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표는 그 후리스를 자주 입고 다니며 커플룩을 인증하기도.[* 해당 후리스는 [[문재인]], 조응천 지지자들에게 있어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고, 심지어 같은 후리스를 사서 단체로 입고 별주부짱을 방문하여 인증샷을 남긴 사람들도 있었다.] 참고로 부인은 남편이 정계 입문한다고 하자 "미친놈", "이혼하자" 등 격한 언사를 퍼부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재인]] 당시 대표의 눈빛에 감전되더니, "쓸 만한 놈이니 잘 써달라"고 하면서 정계입문을 허락했다고(...)
          * 많은 사람들이 검사, 공직기강비서관 등을 맡은 경력으로 인해 법조인으로 인식하고 있어 묻히는 느낌이 있지만 조응천 의원은 '''첫 현직 [[자영업자]] 출신 국회의원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기초의원이나 광역의원 중에는 [[자영업자]] 출신 의원이 몇몇 있다.] [[자영업]]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자영업자들이 먹고 살기 어려운 세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서, 자영업자들을 위한 법안에도 적극 매진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내비친 바 있다. ~~법조계에서 좀 날리다가, 먹는 장사로 업종을 바꿔 보니 녹록치가 않더라고~~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200655&CMPT_CD=MSUB1_2015#cb|##]]
  • 차준환 . . . . 2회 일치
         2016 동계 청소년 올림픽 출전 자격을 2016 랭킹대회를 통해 획득했다. 개인전 경기에서 쇼트 68.76점으로 4위, 프리 130.14점으로 5위, 종합 198.90으로 5위를 기록한다. 프리 경기만으로 겨루는 단체전은 처음에는 선발되지 못했으나, 로만 사돕스키의 기권으로 대체 선발된다. 속한 팀은 team courage로 슬로바키아의 하가로바, 이탈리아의 칼다라/카푸토 조, 러시아의 슈필레바야/스미르노프 조와 한 팀을 이룬다. 단체전에서의 성적은 139.97로 3위를 기록하면서 퍼스널 베스트 기록을 세운다. 팀 성적은 6위를 기록한다.
  • 청년 튀르크 당 . . . . 2회 일치
         청년 투르크 당이라고도 한다. [[오스만 제국]]의 사회 혁명 단체. [[술탄]] 전제 정치를 펼치던 오스만 제국을 개혁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파리]]에서 학생, 청년 사관, 지식인들이 비밀 결사인 '통일진보위원회(Committee of Union and Progress/CUP)'를 조직하여, 헌법의 부활과 전제 정치 폐지를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아메드 리자라는 지식인이 이 단체의 주대변인이 되었다. CUP는 [[자유주의]] 사상을 유포하고 고무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 청송군 . . . . 2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분류: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북도의 행정구역]][[분류:청송군]]
  • 체육회계 . . . . 2회 일치
          * 단체 책임을 중요시한다. 경기에서 패배하는 등 조직 차원의 문제가 있으면 전원이 삭발을 하는 등.
         [[분류:일본 속어]]
  • 최문식 . . . . 2회 일치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199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코칭스태프]][[분류:K리그2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코칭스태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최성국 (축구선수) . . . . 2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가시와 레이솔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FK 라보트니치키의 축구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7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정명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해설자]][[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최여진(탤런트) . . . . 2회 일치
         최여진의 모친인 정현숙은 경기도 양평에서 1천평 부지의 '''드림애견호텔'''이란 개 위탁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최여진이 엄마에게 이 마당 넓은 집을 선물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국가대표 양궁선수 [[기보배]]와 그의 부모에게 모욕적인 쌍욕과 패드립을 날렸다. '''6년 전'''에 기보배 선수 부친의 인터뷰에서 딸이 보신탕을 먹는다는 인터뷰 내용을 가지고 바로 올림픽 여자양궁 '''단체전 본선 당일'''에 이런 인신모욕과 욕설로 [[저격]]한 것이다.
         현재 최여진 모친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비공개 아이디로 전환되었다. 물론, 비공개로 전환된 뒤에도 활발히 따봉 박고 있는 걸로 보면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하나도 없는 듯 하다. 게시글에도 쉴더들이 '''영국 시민단체가 지금 내한해 개고기 반대 시위를 하고 있으므로 이 시점에서 국가대표의 아버지가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둥의 논리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듯한 쉴드를 치고 있다. 저 기사는 6년 전에 올라왔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듯.
  • 취활 . . . . 2회 일치
         민간 기업에서 타사보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려고 취업 활동을 조기화하는 경향이 강하여 취업 활동 기간이 장기화하자, [[일본 경제단체연합회]]에서는 1997년에 윤리헌장을 제정, 2013년에 채용전형지침을 제정하여, 취업 활동 기간에 제한이 생겼다. 일본에서는 졸업 전년도 3월 부터 학생 대상 설명회가 해금되고, 이때부터 취업 사이트에 등록할 수 있다. 면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졸업 학년도 8월 1일 부터이다. 그리고 내정은 졸업 학년 10월 1일 이후로 되어 있다. 이 규정은 신사협정으로 벌칙 규정은 없다.
         [[분류:일본어]]
  • 코토부키 퇴사 . . . . 2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일본 풍속]]
  • 콘도 마코토 . . . . 2회 일치
         1989년 유방온존요법을 받은 자신의 환자를 중심으로 하여 의료시민단체 「이데아포(イデアフォー)」를 설립. 유방온전요법 보급에 후원.
         [[분류:의사]] [[분류:일본 인물]]
  • 테미야게 . . . . 2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일본 풍속]]
  • 하정우(영화감독) . . . . 2회 일치
         하정우 라이트 팬이 신분을 속이고 친구 대신 다녀온 캠프 인증글이 디시인사이드 기타 국내 드라마 갤러리에 올라와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각종 사이트로 배달되며 화제가 된 사건. 하정우가 더 테러 라이브, 군도 촬영 전 팬미팅 성격의 캠프를 주최하였다. 하정우와 정경호를 비롯한 후배들 대거 참여(전날 롤러코스터 크랭크업을 했다고) 피의 선착순 댓글을 뚫고 캠프에 당첨된 하정우 팬 80명은 경기도 모처 살얼음이 낀 논두렁 위에서 팀을 나누어 단체 티셔츠를 입은 후 각종 게임을 하였다. 퀴즈 1등 상품은 하정우 그림액자(하정우가 직접 시상). 참가 후기에 따르면 하정우는 동네 형과 싱크로율이 100%라는 이야기가.. 본인이 질식할 만큼 말보로 화이트를 석션했다카더라.. 80명의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털털하게 소맥을 마는데 이 때 머리 크기가 배우치고가 아니라 일반인 치고도 크고 아름다운 사이즈라 카더라. 마지막날 1대1 딥포옹 셀카 촬영 등 지옥의 팬서비스. (하정우에겐 호된 경험이었는지.. 그후 2차 캠프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없는 실정이라고) 이후 하정우 캠프에 대타로 참가한 글쓴이는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를 볼 때마다, 하정우 티셔츠를 맞춰 입고 하정우 앞에서 단체 줄넘기 하던 자신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 캠프 이후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를 잃었다는 안타까운 썰이 있다.
  • 학동 . . . . 2회 일치
         후생노동성이 소관하며, 지자체나 민간사업체, NPO단체 등을 중심으로 설치된다.
         [[분류:일본 풍속]]
  • 한국영 . . . . 2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카타르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쇼난 벨마레의 축구 선수]][[분류:가시와 레이솔의 축구 선수]][[분류:카타르 SC의 축구 선수]][[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201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2015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알가라파 SC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카타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카타르 스타스 리그의 축구 선수]]
  • 한비야 . . . . 2회 일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펴낸 후부터 대중 강연 활동을 펼쳤으며 2012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의 초빙 교수로 임용되었고 각종 교육 관련 단체, 기업 등에서 강연하고 있다.
         * 2005년 [[시민단체]] 선정 평화를 만드는 100인
  • 한승조 . . . . 2회 일치
         [[고려대]] 정치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를 딴 후, 1967년부터 1995년까지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다. 재임 중 정경대학장을 지냈으며, 퇴임 후 명예교수로 있다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는 글을 쓴 것이 문제가 된 후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했다. 한국유신학술원 회원, [[한국정치학회]] 회장, 국민윤리학회 회장, 보수단체인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도 역임했다. <!--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보충 필요 --> 정년 퇴임 후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명예 교수에 선임되었다.
         이 주장에 책임을 지고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42805 오마이뉴스 - 한승조, 고대 명예교수직 사퇴] : 한승조는 "최근 저의 글 '친일행위가 반민족행위인가'로 인해 사회적 물의가 일었고 이로 인해 고려대에 간접적인 피해를 입힌 데 대해 책임을 지고 명예교수직으로부터 사임하고자 하니 선처가 있기 바란다"라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ref> 그러나 한국 국내의 움직임과는 반대로 일본의 우파는 “양심적 한국인”이라고 평가를 했다.<ref>[http://myhome.cururu.jp/doronpa/blog/list/bt0_ct3_dc_pg4 Doronpaの独り言-CURURU] - 이 사람은 일본의 우파적 시민 단체의 회장이다.</ref>
  • 함구료 . . . . 2회 일치
         [[분류:일본어]][[분류:일본 풍속]]
  • 함화진 . . . . 2회 일치
         일제 패망 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이왕직아악부가 사라지고 함화진을 중심으로 [[대한국악원]]이 결성되었다. 대한국악원은 아악 전통을 고수하던 구 이왕직아악부와는 달리 창악, 기악, 창극, 무용, 농악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민족음악의 수립을 목표로 했다. 대한국악원이 전국농악경연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악계 내부에서 일종의 사회참여파를 형성하면서, 이 단체를 이끈 함화진은 [[남로당]] 불법화와 [[좌익]] 세력 색출 과정에서 좌익으로 몰려 피검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국악계의 대표 격으로 [[조선문예회]], [[조선음악협회]] 등 친일성이 강한 음악인 단체에서 활동한 일이 있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인 부문에 포함되었다. 이 명단에 수록된 국악인은 함화진과 [[김기수 (국악인)|김기수]] 두 사람이다.
  • 현정건 . . . . 2회 일치
         이때 청년동맹회의 선언 문제로 [[의열단|의열단(義烈團)]]에서 시비를 걸어와 의열단측에서 윤자영을 구타하는 등 청년동맹회와 의열단과의 마찰이 있었는데, 의열단에서 먼저 자신들의 출판물 가운데 청년동맹회를 공격하는 글을 취소하고 청년동맹회에서도 성명서를 수정 발표하였고, 이때 청년동맹회 위원이던 윤자영ㆍ현정건 두 사람도 청년동맹회를 핑계로 일본공산당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사사로이 쓴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일시직권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으나 사실무근으로 판명되면서 이틀만에 복권되고 두 단체간의 시비도 일단락되었다고 한다.<ref>「上海淸年同盟 宣言問題 解決」, 『동아일보』1925년 1월 9일자.</ref>
         [[1925년]] 5월 9일에는 상하이에 있던 [[조소앙|조소앙(趙素昻)]]ㆍ여운형ㆍ윤자영ㆍ김상덕(金尙德)ㆍ최창식(崔昌植)ㆍ김규면(金圭冕)ㆍ손두환(孫斗煥) 등 약 30명의 조선인 동지와 함께 서문 밖 체육장에서 배일(排日) 중국인 단체의 집합에 참가하였고 이곳에서 "중국과 한국이 합동하여 일본에 맞서야 한다"는 취지의 『상하이주간(上海週刊)』5월 9일자 특별호에 실린 사설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다.<ref>이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에 의해 7월 1일에 일본 외무성의 외무차관에 보고되었다. 국회도서관(國會圖書館) 편찬 『한국민족운동사료(韓國民族運動史料)』(중국편), 1976년, 567~568쪽.</ref> 9월 8일에는 상하이교민단의 의사원(議事員)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 현제명 . . . . 2회 일치
         1926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 있는 기독계 무디성경학교에서 음악 교육을 이수하고, 귀국한 뒤에는 조선음악가협회를 창설하고 연희전문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그 후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주관한 조선문예회 정회원으로 가입하다가, 독립 계몽단체인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 이후 친일 성향 단체인 대동민우회의 정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총독부의 내선일체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음악가협회를 해체하고 이후에도 시국대응전선보국연맹, 조선음악협회, 경성후생실내악단 등에도 가입하면서 친일 행위를 하였던 전적이 드러나게 되었으며, 특히 친일 찬양적인 성향의 '''[[후지산]]을 바라보며'''에 작곡자로 개입하면서 친일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 황성관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단체)|KBO]] / [[1997년 한국프로야구|1997년]]
         |마지막 경기 = [[KBO (단체)|KBO]] / [[2001년 한국프로야구|2001년]] [[10월 3일]] <br/>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두산 베어스|두산]] 전
  • BBA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Crusader Kings 2 . . . . 1회 일치
         == 단체 ==
  • DQN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인터넷 은어]]
  • DQN 보복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인터넷 은어]]
  • DT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GHQ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사]]
  • JK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KY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U턴 취직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V-22 오스프리 . . . . 1회 일치
         2016년 12월 14일 주일미군 MV-22 오스프리가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660105&code=11141100&sid1=int|훈련중 오키나와 앞바다에 추락했다.]] 이전부터 오키나와의 반전단체들은 오스프리가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으로 더욱 불이 붙었다.
  • ℃-ute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아이돌]]
  • くぁwせdrftgyふじこlp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속어]]
  • . . . . 1회 일치
         [[분류:한자]] [[분류:일본어]]
  • 野良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가면부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가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강대식 . . . . 1회 일치
         [include(틀:대구광역시의 기초자치단체장)]
  • 강사빈 . . . . 1회 일치
         '''강사빈'''(姜士斌, [[2001년]] [[3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이자 [[청소년]] 지역 활동가이다.<ref>{{웹 인용|url=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2141282|제목=강사빈|언어=ko|확인날짜=2018-10-06}}</ref> [[2017년]] 사단법인 한국역사진흥원 창립준비위원회를 설립하고 위원장이 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청소년]]의 신분으로는 [[전례]] 없는 [[사단법인]]의 설립을 도전하여 6개월여만에 성공하였다. [[2017년]] [[12월]], 그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에서 [[민법]] 제 32조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및 [[문화재청]]" 소관으로 사단법인 한국역사진흥원의 설립을 허가받았다.<ref>{{뉴스 인용|url=http://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86987|제목=고등학교 다니며, 사단법인 경영하는 한국 최연소 사회기관단체인 강사빈 - 국제뉴스|날짜=2018-03-09|언어=ko|확인날짜=2018-10-06}}</ref> 이외에도 [[2017년]] [[8월]] [[헤이그 특사 사건]]의 주요 인물이었던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의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에서 청소년위원장으로 위촉되기도 하며 여러 활동들을 펼쳐나간다.
  • 강원 FC . . . . 1회 일치
         일화가 한때 강원도로 연고를 옮기는 것이 사실상 확실시 된 것으로 보이자 이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강릉시에 걸렸을 정도면 강원도가 축구를 얼마나 절실하게 바래왔는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결국 일화는 성남으로 연고를 옮기게 되고, 강릉시의 환영 현수막 대신 기독교 단체의 "일화 OUT" 현수막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1999년 8월 22일에 강릉에서 있었던 K리그 야간경기에서 천안과 별반 다르지 않는 조명탑 문제로 경기가 취소되고 기물이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일화 입장에선 오히려 강릉을 선택하면 그게 이상한 상황이 될 정도.
  • 강유미(코미디언) . . . . 1회 일치
         거기에 소속사는 "수능의 경우에도 민간단체 구급차가 수험생을 이송해 강유미도 이용하게 됐다"는 되도 않는 해명을 하면서 사과했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듯. [* 이후 구급차 관련 글에는 일단 강유미를 까고 보는 댓글이 어김없이 보인다.]~~아주 경찰한테 태워달라고 하지~~
  • 갸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거유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가슴]]
  • 검은 조직 . . . . 1회 일치
         국제적인 범죄단체로서, [[에도가와 코난|코난]]이 어려지게 만든 원흉이다.
  • 게스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고미야시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고산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사]]
  • 고아성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연예인]]
  • 고양이를 덮어쓰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고유민 . . . . 1회 일치
         초등학교 6학년때 부터 [[배구]]를 시작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위기가 많았지만[*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98227|프로입단 당시의 지역신문 기사]]] 복지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배구]]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2013년 [[대구여자고등학교]]의 주 공격수였으며 [[이고은]]과 콤비를 이루어 주요 대회인 2013년 [[기독교방송|CBS]]배 전국남녀 중고배구대회 여고부에서 우승했다. 이때 선수는 겨우 10명 이었고 악조건 속에서의 우승이었다.
  • 고준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연예인]]
  • 곤조야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골든 위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곰보도 보조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속담]]
  • 공기교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인터넷 은어]]
  • 공산당 지도 원리 . . . . 1회 일치
         [[공산당]]이 [[혁명]]의 '전위'가 되어, 국가, 정부, 군대, 사법, 종교, 사회단체 등 사회의 모든 요소를 '지도'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 괴인 통카라통 . . . . 1회 일치
         [[분류:도시전설]][[분류:요괴]][[분류:괴인]][[분류:일본 요괴]]
  • 교육 마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구성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구자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장관]][[분류:대한민국의 자치단체장]]
  • 권은희 (1959년) . . . . 1회 일치
         * 2013년: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협회 공로패
  • 권해효 . . . . 1회 일치
          * [[조선학교]]를 지원해주는 단체 몽당연필의 공동대표를 맡는다는 점 때문에 보수 성향의 네티즌들로부터 이따금 먹잇감이 되고있다. 조선학교가 대체로 [[조총련]]의 지원을 받기 때문.
  • 귀적에 들어간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관용어]]
  • 김갑수(배우) . . . . 1회 일치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된 작품은 1994년에 개봉한 영화 [[태백산맥(영화)|태백산맥]]. [[안성기]], [[김명곤]]을 포함하여 [[신현준(배우)|신현준]], [[오정해]] 등등의 젊은 배우들이 기대 이하의 연기를 선보이며, 우익단체의 상영반대에 협박을 당하였다는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 유일한 연기로 압도하고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 개봉일에 관객들이 사인받으려고 저 네명의 배우에게 많이 몰렸는데, 겨우 1회 상영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김갑수에게 관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금홍아의 금홍아나 TV 소설 등에서 난장질 치는 아저씨 연기는 일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윈터스 소령을 연기한 데미안 루이스와 너무 닮아서 윈갑스 소령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연극 배우 출신으로, 지금도 대학로 등지에서 꾸준히 연극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로 맥도날드에 가끔 나타나서 일행들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얘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역]]과 [[악역]][* 악역을 예로 들자면 드라마 '타짜'의 아귀, '연개소문'의 수양제, '개와 늑대의 시간'의 국정원 국장 역을 꼽을 수 있다.]을 둘 다 소화해내는 몇 안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비슷한 타입으로 김상중은 연극에서는 경박한 연기도 했지만 TV에서는 그런게 없다!]
  • 김강민 . . . . 1회 일치
          * 고교야구 시절, [[군기반장]]이었다고 한다. 주장을 맡은 적이 있는데 선수들이 단체로 김강민을 피해 탈출한 적이 있을 정도.[* [[2016년]] [[1월 13일]] 라디오볼에서 언급.]
  • 김덕 . . . . 1회 일치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자 [[국가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원장|부장]]에 임명되었고, 1994년 12월까지 부임하였다. 1994년 12월 내각 개편으로 통일원(현 [[통일부]]) [[통일부 장관|장관]] 겸 부총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연기 문건이 논란이 되어 같은 해 2월 경질되었다.
  • 김동건 (법조인) . . . . 1회 일치
         * 1991년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사노맹 사건]]으로 사형이 구형된 중앙위원 [[박노해]]에 대해 "사노맹이 사유재산제와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부정하는 반국가단체임이 인정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91000289101007&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9-10&officeId=00028&pageNo=1&printNo=1026&publishType=00010]</ref>
  • 김동명(가수) . . . . 1회 일치
         2014년 10월 24일에 통일부 주체로 [[https://www.youtube.com/user/mounikorea/search?query=%ED%95%9C%EB%B0%98%EB%8F%84+%EB%B6%80%ED%99%9C%ED%94%84%EB%A1%9C%EC%A0%9D%ED%8A%B870|'''부활과 함께하는 한반도 부활 프로젝트 70''']]의 일환으로 부활은 보컬 김동명과 테너 안세권(feat.)의 보이스로 담은 싱글 부활 '[[To be ONE]]'을 발표했다. 이 노래에선 부활 밴드와 더불어 김동명의 맑고 울림 있는 보이스와 안세권의 힘 있는 목소리와 인생 연륜의 청춘 합창단이 서로 어우려져 통일으로의 아름다운 숙원을 표현해 냈다. 2016년 6월 1일은 '하나의 코리아'를 염원하는 NGO단체 '하나의 코리아'에서 제작한 싱글곡 (14개 곡 수록)중 1번 김동명 보이스로 해석한 부활의 윤동주의 '''서시'''는 고요하지만 통일에의 강한 의지의 끈을 잘 해석했다.
  • 김만수(정치인)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기초자치단체장이다.
  • 김문집 . . . . 1회 일치
         중학교 때부터 일본에서 수학한 김문집은 일본 문학이론을 수입해 와 한국문학의 전통을 부정하는 친일적인 성향을 초기부터 보였다. [[중일 전쟁]] 발발 후에는 [[조선문인협회]] 발기인과 간사,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촉탁을 맡는 등 친일 단체에도 가담했다.
  • 김성주 (기업인) . . . . 1회 일치
         매년 60여 개의 국내외 NGO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코소보의 전쟁피해자 지원 및 Asia House(UK)와 Victoria & Albert Museum(UK)등과 같은 각종 문화, 자선공연, 세계 여성 대회(Global Summit of Women)네트워크를 통한 여성들의 경제/사회 활동 활성화를 위한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힘쓰고 있다.<ref>http://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3110&g_serial=457190</ref> <ref>http://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3110&g_serial=454351</ref> <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0112153405&code=910110</ref>
  • 김성현 (1989년) . . . . 1회 일치
         2012년 초,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과 함께 [[2012년 한국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승부 조작 사건]]의 당사자로 밝혀졌다. 박현준과 마찬가지로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2012년 2월 28일, 국민 체육 진흥법 위반으로 [[대구지방검찰청|대구 지방 검찰청]]에 체포되었고, 3월 1일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를 없애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 김성현은 8시간 가량 조사를 받았고, 넥센 시절이던 2011년 시즌 4~5월 브로커와 짜고 두 차례에 걸쳐 일부로 '1회 첫 볼넷'을 던져 승부를 조작하고 이에 따른 사례금 1,0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2012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대구 지방 법원]]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집행 유예]] 2년, 추징금 700만 원을 선고하고 사회 봉사 활동 120시간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2012년 3월 6일, 박현준과 함께 같이 LG 구단에서 웨이버 공시되고 [[KBO (단체)|한국 야구 위원회]](KBO) 상벌 위원회는 4월 18일자 재판 결과를 근거로 김성현을 영구 제명했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5588057</ref>
  • 김승대 . . . . 1회 일치
         이후 계속 겉돌면서 제로톱의 파괴력이 약해졌고 포처로써도 약점이 드러나 별 활약을 못했고 그와 동시에 포항의 공격진은 단체로 침체에 빠지면서 팀 성적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하지만 동아시안컵 출전 이후 자신감을 회복했고 경기력도 완벽하게 살아나서 다시 팀 성적을 끌어올리고 있다.
  • 김영인(탤런트) . . . . 1회 일치
         || 경력 ||<(> (사)한국영화배우협회 감사[br](사)한국영화인총연합회 감사[br](사)한국문화예술인단체총연합회 대의원[br]새길건설 대표이사 ||
  • 김운용 . . . . 1회 일치
          | 직업 = 스포츠기관단체인, 대학교수
  • 김을동 . . . . 1회 일치
         2008년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친박연대에 입당, [[미래희망연대|친박연대]]의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아 당선되어 [[대한민국]] 최초의 부녀 국회의원이 됐다.[* [[박근혜]]의 경우에는 아버지 [[박정희]]가 국회의원을 역임하지 않았다. 대신 대통령을 지냈다.] 친박연대가 한나라당에 통합되면서 한나라당에 자연히 재입당했고, [[새누리당]]에서 활동하면서 최고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2012년 6월부터 2014년 8월까지 [[한국여자야구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현직 국회의원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 권고에 따라 사임했다.]
  • 김태희 . . . . 1회 일치
         1999년 의류학과에 입학하여 2005년 졸업했다.<ref name="일요시사"/><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단체 졸업사진, 2005년 서울대 졸업당시 김태희 모습 ‘똑같아’|url=http://boo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516050025|출판사=[[서울신문]]|저자=김채현|날짜=2012-05-16|확인날짜=2014-02-25}}</ref>
  • 김형렬 (1959년) . . . . 1회 일치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영선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효진 (배우) . . . . 1회 일치
         또한 그녀는 배우 활동 외에 세계적인 NGO단체 월드비전의 홍보대사로 활동했고, 최근에는 유기견과 환경을 위한 자선 활동에 묵묵히 앞장 서고 있다.
  • 깨진 남비에 떼운 뚜껑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나다카 타츠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연예인]]
  • 나비야 꽃이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관용어]]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6화 . . . . 1회 일치
          * 그는 방금 전 공격을 당하면서 알았다며 "이 근처에 있는 단체"라면 어떻게든 될 거 같다고 말하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1화 . . . . 1회 일치
          * 미도리야가 올마이트에게 진실을 확인할 무렵 "시에핫사이카이"와 [[오버홀]]이 얽힌 사건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에스퍼 거리에서는 빌런단체들 간의 항쟁으로 거대화 빌런 둘이 싸우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8화 . . . . 1회 일치
          >뭐죠 대체? 아침부터 단체로 몰려와서...
  • 나치 . . . . 1회 일치
         '나치'라고 하면 [[독일]]을 지배한 독재 정권을 주도한 [[아돌프 히틀러]] 휘하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혹은 히틀러 정권, 혹은 히틀러 정권이 통치하던 시기의 독일, 혹은 나치당의 주요한 구성원이나 지도자, 나치당 추종자[* 예를 들어 '돌격대','친위대' 같은 경우는 나치당의 구성원(당원)이 아니지만, 나치당의 외곽 단체로서 열렬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를 가리키는 말이다. 비교적 광범위하게 쓰이는 단어이다.
  • 낚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 . . . 1회 일치
         [[분류:관용어]] [[분류:일본어]]
  • 남유진 . . . . 1회 일치
         그러나,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에는 또 3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게다가 그 당시 [[박근혜|대통령이 대통령인지라]]. 결국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6.4 지방선거]]에서도 [[새누리당]] 후보로 구미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3선 고지에 올랐다. 그러나 이때 시민단체인 구미참여연대에서 만든 성남시와 비교카드뉴스가 화제가 되기도 하는 등 민심 이반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10856|*]]
  • 내추럴 하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네마와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네타바라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네토라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넷카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노동기준감독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정부기관]]
  • 노발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노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노현정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인물]]
  • 녹색 종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인터넷 은어]]
  • 농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뇌가 끓고 있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뇌내 꽃밭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다 . . . . 1회 일치
         [[분류:관용어]] [[분류:일본어]] [[분류:성경유래 관용구]]
  • 니라오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니시노 카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연예인]]
  • 니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다마시우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다메다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다멘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단기대학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교육]]
  • 단기선교 . . . . 1회 일치
         현실적으로, 단기선교는 말 그대로 '선교'로서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선교라고 해도 기껏해야 방학이나 휴가 기간의 몇주 정도인데, 참가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아마추어이고 선교 기간이 짧은 만큼, 실질적인 선교로서 효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 기존에 활동하던 단체를 지원하는 경우가 고작인데, 이것도 참가자의 자질이 부족하고 단기에 그치므로 크게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짐이 안 되면 다행.
  • 단신부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단카이 쥬니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당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인터넷 은어]]
  • 대군 . . . . 1회 일치
         [[분류:동음이의어]] [[분류:한국사]] [[분류:일본사]]
  • 데모데모닷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데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데부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도게자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도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도도부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도부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은어]]
  • 도야가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도짓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독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아동학대]]
  • 동군연합 . . . . 1회 일치
         다만 부부관계는 최악이라 헨리나 엘레오노르 둘다 정부를 거느렸으며, 둘의 불화는 악화되어 헨리가 엘레오노르를 가두기까지 한다. 이에 둘사이에 나온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단체로 대항했으며, 결국 리차드가 헨리를 투옥시키고 잉글랜드 왕위를 상속받으면서 모자동군연합이 됀다
  • 동일본대지진 . . . . 1회 일치
         [[분류:지진]] [[분류:일본사]]
  • 동조압력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레이프 . . . . 1회 일치
         [[분류:영어]][[분류:일본어]]
  • 로미오 메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인터넷 은어]]
  • 로쿠데나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루이토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리스트 컷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정신질환]]
  • 리얼충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마~앙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마더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마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마루코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마마토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마법병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마운팅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마의 2세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분류:육아]]
  • 마이사카 코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인물]]
  • 마츠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마치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마치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마터니티 포토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마토메 사이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웹사이트]]
  • 마토메야쿠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막부 . . . . 1회 일치
         [[분류:중국사]] [[분류:일본사]]
  • 만남계 사이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분류:웹사이트]]
  • 맘모스교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망나니 장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드라마]]
  • 매터니티 해리스먼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괴롭힘]]
  • 머슬봄버 . . . . 1회 일치
         [[캡콤]]에서 만든 프로레슬링 게임. 실존 인물이나 단체가 아닌 캡콤의 오리지널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다만 모티브 정도는 있다.] 이중에는 파이널 파이트의 캐릭터인 마이크 해거도 있다.
  • 메데타시메데타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관용어]]
  • 메시마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메시우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메일빙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메타 발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메타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속어]]
  • 멘헬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모닝구 무스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아이돌]]
  • 모랄 해리스먼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괴롭힘]]
  • 모레츠 사원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모메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분류:인터넷 은어]]
  • 모죠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인터넷 은어]]
  • 모테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모테모테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목소리가 뒤집히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몬스터 페어런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못난 나를 사랑해주세요 . . . . 1회 일치
         [[분류:만화]][[분류:일본 드라마]]
  • 무라하치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무언의 귀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무용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무치무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문옥주 . . . . 1회 일치
         [[분류:1924년 태어남]][[분류:1996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분류:일본군 위안부]]
  • 문호근 . . . . 1회 일치
         [[1967년]] [[피아노 연주자|피아니스트]] 첫 데뷔를 한 그는 이후 피아니스트 활동을 접고 1970년대 이래 각종 오페라를 연출하였으며, 진보적인 예술인단체인 민예총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이후 [[1997년]]부터 [[예술의 전당|서울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관으로 재직하던 중, [[2001년]] [[5월 17일]] 56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ref>{{뉴스 인용|성1=연합뉴스 |제목=오페라 연출가 문호근씨 타계 |url=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9000000/2001/05/009000000200105171428773.html |날짜=2001-05-17 |확인날짜=2018-09-05 |뉴스=한겨레신문}}</ref>
  • 미나모토노 요시이에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인물]]
  • 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애니메이션]]
  • 미래소년 코난/등장인물 . . . . 1회 일치
          하이하버 남쪽의 황무지에 거주하는 젊은이. 나이는 18세. 단체생활을 하나 오로 패거리들과는 다르다.
  • 미미도시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미소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미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민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민생위원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민폐료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바-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바닷마을 다이어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영화]]
  • 바리어프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바캇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인터넷 은어]]
  • 바코드 머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머리 모양]]
  • 박강현 . . . . 1회 일치
         '''박강현'''([[1990년]] [[2월 27일]] ~ )<ref>{{웹 인용 |제목= 171208 김주택 인스타라이브(미라클라스 단체 등장)|인용문=주민등록상 생일, 실제 태어난 날은 1989년 12월 27일이다}}</ref>은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이다. [[2015년]]에 뮤지컬 '라이어타임'으로 데뷔하였다. 크로스오버 남성 사중창 그룹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팬텀싱어]] 시즌2에 출연하여 '''[[미라클라스]]'''의 멤버로 결승에 진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 박경석 (1960년) . . . . 1회 일치
         [[2001년]] [[1월 21일]]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가 추락하여 이를 이용하던 장애인 부부가 사망 및 중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는 5개 관련 단체들과 공동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민운동을 시작하였고, 이를 계기로 그 해 4월 장애인이동권연대를 조직하게 되었다.
  • 박경호 (1949년)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달성중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박기환(정치인) . . . . 1회 일치
         '''지방자치제도 도입 후 [[TK]]에서 최초로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기초지방단체장.'''[*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울진군]]수에 당선된 신정 전 군수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구미시]]장에 당선된 [[장세용]] 현 시장이 있다.]
  • 박보생 . . . . 1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박세직 . . . . 1회 일치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1933년 출생]][[분류:2009년 사망]][[분류:대한민국 국회의원]]
  • 박은수 (1956년) . . . . 1회 일치
         1991년 대구 볼런티어센터 소장으로 취임<ref>[http://www.dgvolter.org/ 대구볼런티어넷 센터 소개]</ref> 하면서 장애인 전용버스 운행, 장애인 카풀 운동을 펼치는 등 장애인을 위한 본격적인 사회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1993년 노인도 장애인도 탈 수 있는 지하철을 만들자는 대구시민단체협의회(노장지협) 사무총장이 되었다. 대구 종합자원봉사센터 소장, 달구벌종합스포츠센터 관장, 대구시 휠체어농구단 단장등을 역임하였다. {{출처|날짜=2010-4-15|2004년 한국장애인고용촉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장애인들에게 대기업 직원, 공무원 등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반면교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반하면 패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배가본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만화]]
  • 배기철(정치인) . . . . 1회 일치
         [include(틀:대구광역시의 기초자치단체장)]
  • 배대윤 . . . . 1회 일치
         [[분류:194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진보중학교 동문]][[분류:안동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김대중]][[분류:노무현]][[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백춘희 . . . . 1회 일치
         '''백춘희'''(白春喜 [[1958년]] ~ )는 [[대한민국]]의 사회기관단체인, 정당인, 공무원이다. [[충청북도]] 출신
  • 버리는 대사 . . . . 1회 일치
         [[분류:동음이의어]] [[분류:일본어]]
  • 버리는 신 있으면 줍는 신도 있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버블 시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사]]
  • 법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벚꽃놀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베타보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변질자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보나 . . . . 1회 일치
         다만 [[미기(우주소녀)|미기]]는 파워풀한 파워댄스 스타일이고 보나는 춤을 가볍게 추면서도 선이 고운 타입이라서 같은 안무를 하면 [[미기(우주소녀)|미기]]와 상대적으로 비교된다. 두 사람의 스타일 차이가 궁금하다면 [[https://www.youtube.com/watch?v=4ZuN3soPv_4|이 영상]][* 흘러나오는 곡은 [[비욘세]]의 Ego]을 보자. 확연한 차이가 구분될 것이다. 썸남에서 겟남까지 광고에서도 단체 안무를 보면 보나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확연히 춤을 가볍게 추는 것을 알 수 있다.
  • 보테바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보통국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부녀자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부등교 . . . . 1회 일치
         [[분류:학교]] [[분류:일본 풍속]]
  • 부릿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부사이쿠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분류:바키 시리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만화]]
  • 분류:일본 아이돌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연예인]]
  • 분류:일본 전통의상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문화]]
  • 분류:일본 풍속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 불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분류:불교]]
  • 불임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속어]]
  • 블랙 블록 . . . . 1회 일치
         [[미국]]의 [[아나키즘]] 단체 혹은 운동전략.
  • 블랙기업 . . . . 1회 일치
         [[분류:신조어]] [[분류:괴롭힘]][[분류:일본 풍속]]
  • 비국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비둘기가 콩알총을 맞은 것처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관용어]]
  • 빗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비속어]]
  • 사고물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속어]]
  • 사람을 죽여 보고 싶었다 . . . . 1회 일치
         [[분류:관용어]] [[분류:일본어]]
  • 사이곳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사이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사축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사쿠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사키모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사]]
  • 산리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기업]]
  • 산마이오로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분류:요리]]
  • 삼고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속어]]
  • 삼일스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상디 . . . . 1회 일치
          * [[wiki:"카리브(원피스)" 카리브]] - 보물을 얻기 위해 조로, 루피와 함께 발라버린다.[* 그 이전에 카리브가 상디를 두려워 하는 것을 보면 굳이 단체로 싸우지 않아도 상디>카리브일 가능성이 높다.패기도 확실히 사용하는만큼]
  • 생리적으로 무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서비스 잔업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서상기 (1946년) . . . . 1회 일치
         * [[2017년 3월]] ~ :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회장
  • 서상일 . . . . 1회 일치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09년 [[안희제]]·[[김동삼]]·[[윤병호]] 등과 함께 항일무장투쟁 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한때 만주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했으며, [[1945년]] 8·15광복 후에는 [[송진우 (정치인)|송진우]]·[[장덕수]] 등과 함께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을 창설하고, 사실상 집단지도체제하의 정당의 최고위원이라 할 수있는 8총무단의 일원으로 선임되었다.
  • 서영춘(코미디언) . . . . 1회 일치
         그러나 사적으로 [[주당|음주를 자주 하는]] 영향으로 [[간]](肝) 건강이 나빠져 [[간암]] 발병으로 긴 시간 병고(病苦)를 치루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단체로 문병 온 후배 코미디언 중 [[심형래]][* 그런데 이 일화를 얘기하는 사람마다 그 당사자가 다르다. [[이경규]]이기도 하고 [[최병서]]가 되기도 하고... 결국 그 당사자만 아는 일일 듯.]의 낯빛이 유독 어둡길래 서영춘이 "형래야, 요새 어떻게 지내냐?" 라고 안부를 물었는데 심형래가 무심코 "네 선생님, 죽지 못해 삽니다"라고 대답하자 '''"너는 죽지 못해 사냐? 이놈아! 나는 살지 못해 죽게 생겼다!"'''라며 일갈했고, 이 한마디에 병실에 있던 후배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꺽꺽댔다고 한다... 게다가 서영춘이 세상을 떠난 후 영결식에서 후배 개그맨 [[엄용수]]가 "살살이 고 서영춘 선생님께서는 생전 국민들의 웃음과 즐거움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고, 대표적인 [[유행어]]로 '''요건 몰랐지 가갈갈갈, 붑빠라밥빠 붑빱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가 없으면 못마십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 이라는 내용의 고인 약력을 눈물을 삼키며 읽어 내려가는데, 정작 조문객들은 슬픈 분위기임에도 평소 서영춘의 우스꽝스러운 연기가 생각이 났는지 키득키득 거렸다고... ~~죽어서도 사람을 웃기는 역시 뼈그맨~~
  • 서울특별시장 . . . . 1회 일치
         수도라는 특성과 국가의 최대도시로서 행정적 특수성을 반영하여, 서울특별시장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장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1962년 1월 27일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1988년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이를 개정한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서울특별시는 특수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 서유리 . . . . 1회 일치
         [[손여지]]의 뒤를 이어 [[던전 앤 파이터]]의 2대 라디오 진행자이자 과거의 3대 [[던파걸]]. 본래 [[라그나로크]] 팬사이트 [[라그나게이트]]의 음악방송으로 유명했다. 라그나게이트 내에는 '''로나교'''라는 이름의 단체까지 있었을 정도.
  • 성시경 . . . . 1회 일치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R&B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일본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동문]][[분류: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동문]][[분류:순창군 출신]][[분류:토이]][[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골든디스크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분류:Mnet 엠카운트다운 1위 수상자]][[분류:1박 2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음악가]]
  • 성장이 나쁘다 . . . . 1회 일치
         [[분류:동음이의어]] [[분류:일본어]]
  • 세레브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세이와 겐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사]]
  • 섹슈얼 해리스먼트 . . . . 1회 일치
         [[분류:괴롭힘]] [[분류:일본어]]
  • 센터 시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교육]]
  • 소금대응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속어]]
  • 소년보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손요리 . . . . 1회 일치
         [[분류:요리]] [[분류:일본어]]
  • 손해보고 이득얻다 . . . . 1회 일치
         [[분류:관용어]] [[분류:일본어]]
  • 송상진 . . . . 1회 일치
         * [[1974년]] 4월 인민혁명당 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 당시 양봉업.
  • 송종익 . . . . 1회 일치
         [[1905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며 [[1906년]] 4월 [[미국]]으로 건너가 [[재미 한국인]]의 애국 계몽 운동 단체인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1908년]] [[전명운]]과 [[장인환]]이 미국 외교관 [[더럼 스티븐스|D. W. 스티븐스]]를 암살한 사건이 일어난 이후부터 재판후원회 재무로 활동하였다. [[1913년]] [[흥사단]] 창단 때 경상도 대표를 지냈으며 [[1919년]]에는 흥사단 이사장과 [[대한인국민회]] 재무를 지냈다.
  • 송진현 . . . . 1회 일치
         * [[서울고등법원]] 특별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10월 22일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효순·미선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미군 2명을 소환해 조사했던 [[의정부지방검찰청]]을 상대로 "관련 수사 기록을 공개하라"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들이 청구한 정보 내역 가운데 피의자 신문 조서 등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장갑차 운전병과 관제병에 대한 미군측 군사재판 원고 사본 등은 원심대로 한미 관계 등을 감안해 공개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심대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465906]</ref>10월 25일에 지난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집회에서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 송모씨가 "단체협약에 정한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노조활동에는 집회참가도 포함되고 따라서 [[집시법]]에 의해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당연해고할 수는 없다”면서도 "집회 도중 자의적인 폭력행위는 조합활동의 일부라고 볼 수 없다"며 "집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로 당연해고 사유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83535]</ref>
  • 쇼쿠오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숙녀 . . . . 1회 일치
         [[분류:한자어]][[분류:일본어]] [[분류:동음이의어]]
  • 숙년이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슈퍼히어로 팀 . . . . 1회 일치
         문자 그대로 다수의 슈퍼[[히어로]]들이 하나의 팀을 이뤄 활동하는 것이다. 슈퍼히어로가 단체로 등장함으로서 독자들에게 더 큰 흥미를 유발시킨다.
  • 스낵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스네이크 . . . . 1회 일치
         [[분류:인터넷 은어]] [[분류:일본어]]
  • 스님 미우면 가사까지 밉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속담]]
  • 스베리토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스이츠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스쿨 카스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스키야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요리]]
  • 스타 연구소 . . . . 1회 일치
         [[DC 코믹스]]에 등장하는 단체. 정식 명칭은 "The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Advanced Research Laboratories"지만 흔히 스타 연구소로 줄여 쓴다. ~~절대 [[스타크래프트]] 연구소가 아니다!~~
  • 스테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스피커 아줌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시간이 약 . . . . 1회 일치
         [[분류:영어]][[분류:일본어]]
  • 시골에 들어오면 시골에 따라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속담]]
  • 시로우토 동정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속어]]
  • 시치고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시프트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식극의 소마/214화 . . . . 1회 일치
          * 마침내 침묵을 깨고 심사의원 [[안(식극의 소마)|안]]이 입을 연다. 그녀가 지명한 건 네네. 그녀에게 "일본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운을 띄우는데, 정작 무슨 말인지 기억이 안 나는지 산더미 같은 책 뭉치를 한참 뒤적거린다. 분명 "우리 단체의 경전"이라더니 알고보니 그냥 사전도 끼어있었다. 아무튼 사전에서 "말보단 증거"란 속담을 찾아낸 안. 그녀는 아직 추가분 소바가 남아있을 테니 요리를 직접 먹어보라 권한다. 네네는 이제와서 소마의 소바따윌 먹을 필요가 없다고 거절하나, 안이 말한건 소마의 소바가 아니었다.
  • 신겐모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과자]]
  • 신경림(대학교수) . . . . 1회 일치
         시인 [[고은]]과 절친한 사이다. 고은이 만든 진보 문학 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고은을 보좌하며 행동대장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1989년에는 고은과 함께 방북을 추진하여 판문점으로 가다가 경찰에게 저지당하여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또 '고은 문학의 세계' 등의 저서를 통해 고은의 업적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작업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빼도박도 못 하는 신경림의 흑역사.
  • 신년선물연하장엽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신동일 (언어학자) . . . . 1회 일치
         숙명여자대학교의 MATE(Multimedia Assisted Test of English), [[YBM-Sisa]]의 [[SEPT]](Spoken Engish Proficiency Test), 크레듀가 참여한 [[OPIc]] (Oral Proficiency Interview computer), 교통부의 Pilot & Air Traffic Controller 대상 영어말하기능력인증평가, 교육부의 국가영어인증시험 등과 같은 학교, 기업, 국가 단위의 다양한 언어시험 개발/시행, 말하기/쓰기교육 콘텐츠개발에 관한 (책임)연구에 참여했다. 2000-2007년에 한국영어평가학회 총무로 일했고, 2007-2009년 동안은 비영리교육단체인 ACTFL((American Councils on the Teaching of Foreign Languages) 한국위원회를 설립하고 위원장을 맡았다.
  • 신적강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사]]
  • 신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신칸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신현준(군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군/조선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한국전쟁/군인]][[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15년 출생]][[분류:2007년 사망]]
  • 아게만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분류:은어]]
  • 아니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아데랑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기업]][[분류:모발 기업]]
  • 아동수당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아라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아바즈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비속어]]
  • 아사쿠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기업]]
  • 아소비닌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아저씨 사냥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아카짱가에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아타리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아테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아토노마츠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악평등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안가르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연예인]]
  • 안드로메다 스토리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만화]]
  • 안병용(기초단체장) . . . . 1회 일치
         [include(틀:경기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암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압박면접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애니 일본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애처 도시락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야규 무네노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인물]]
  • 야규 슈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인물]]
  • 야규 쥬베에 미츠요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인물]]
  • 야리만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야마토 나데시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얀챠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양시영 (1944년) . . . . 1회 일치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양윤재 . . . . 1회 일치
         * 2003.08 ~ 2006.08: 자치단체국제환경협의회(ICLEI) 집행위원(임기 3년)
  • 양키 . . . . 1회 일치
         [[분류:영어]] [[분류:일본어]] [[분류:동음이의어]]
  • 에가시라2:50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연예인]]
  • 에스컬레이터 식 학교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에스쿱스 . . . . 1회 일치
         ||<table align=center> [[에스쿱스]]의 개인 활동만 기록합니다. [[세븐틴(아이돌)|세븐틴]] 단체 단위 활동은 [[세븐틴(아이돌)|세븐틴]] 항목 참조 ||
  • 엔자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엔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음악]]
  • 여자력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여정남 . . . . 1회 일치
         * [[1974년]] 4월 [[인민혁명당]] 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
  • 역병신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역사 . . . . 1회 일치
         [[과거]]에 대한 기록이며 단순히 입소문 등의 수준이 아니라 큰 규모의 사건 등 영향력이 많은 일들이 기록된다.[* 단, 현대에는 기존의 정부나 단체, 공인의 기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역사 연구에서 벗어나 이러한 단순한 특정 시기의 '소문'이나 소소한 일상사, 사물 등을 통해 다른 시각에서 역사를 검토하는 '미시사'란 개념도 생겨났다.] 이를 다루는 학문을 역사학이라 한다.
  • 연소조 연중조 연장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열쇠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오니요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오다 노부나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인물]]
  • 오마모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분류:오컬트]]
  • 오미코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오미쿠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분류:점술]]
  • 오보카타 하루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인]]
  • 오봉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분류:기념일]]
  • 오스소와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오싱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드라마]]
  • 오오모노노누시노카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신화]]
  • 오오모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오오반후루마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오와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인터넷 은어]]
  • 오유우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오츠보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오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오카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오칸 아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오타쿠 서클의 공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인터넷 은어]]
  • 오토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오토코노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오토하(연예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연예인]]
  • 오픈 캠퍼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오하라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분류:오컬트]]
  • 오헤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온나코도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와가마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와타나베 나오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연예인]]
  • 요로즈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요시노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음식점]]
  • 요시다 세이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인]]
  • 요코타 메구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인]]
  • 우라 게시판 . . . . 1회 일치
         일본 인터넷에서 학교 등 특정 단체에 공식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사이트로서, 그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게시판. 익명 게시판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주로 학교 같은 것에서 만들어지고 학생들에게 관리가 된다. 때때로 개인정보 유출, 온라인을 통한 집단괴롭힘 같은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 우라가에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동음이의어]]
  • 우메즈 카즈오 . . . . 1회 일치
         [[분류:만화가]] [[분류:일본 인물]]
  • 우물가 회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우츠미 사토루 . . . . 1회 일치
         [[분류:의사]] [[분류:일본 인물]]
  • 우치벤케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우키시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동음이의어]]
  • 우효광 . . . . 1회 일치
         || 2009 중국 청소년 개발 재단 프로젝트, 중국 적십자사의 최우수 자선 단체상 ||
  • 운니의 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운명의 붉은 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울산광역시/인물 . . . . 1회 일치
         * [[이동권(기초단체장)|이동권]] - 북구(울산)
  • 웨이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위키 템플릿 . . . . 1회 일치
          * [[OrganizationTemplate]] - 단체 템플릿
  • 유곽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유니콘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신조어]] [[분류:동음이의어]]
  • 유카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전통의상]]
  • 윤덕주 (농구인) . . . . 1회 일치
         [[1935년]] [[숙명여고]] 시절 선수로 농구와 인연을 맺은 뒤 대한농구협회 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 등 각종 체육단체에서 활동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0449350 윤덕주 농구협명예회장 별세] 매일경제 2005.07.08</ref> 1935년 숙명여고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일제강점기 최고의 센터로 이름을 날렸으며 1940년대 초반 결혼 후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한 채로 코트에서 뛴 것은 유명한 일화가 되기도 했다.<ref name="dibigos"/>
  • 은지원 . . . . 1회 일치
         게다가 어릴 적에 외국에 가 있었기 때문인지 기초지식이나 어휘력 등이 상당히 빈약하다. 토토가 이전에 '뇌가 순수한 사람'으로 무한도전에 출연한 적도 있고, 젝스키스 멤버들이 단체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때는 은지원 혼자만 '친탁', '총망라'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며 한글 맞춤법도 자주 틀리는 편. 즉, 타고난 눈치나 잔머리는 뛰어나지만 후천적인 지식이 부족한 타입.
  • 음모론 . . . . 1회 일치
          * 프리메이슨은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비밀 단체로, 미국 정부는 이들을 분쇄하기 위해 비밀리에 영국 침공 계획을 세웠다.
  • 의식 높은 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의심암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분류:사자성어]]
  • 이강덕 . . . . 1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이강철 (1947년) . . . . 1회 일치
         * 페놀오염시민단체대책회의 대표
  • 이계순 (1927년) . . . . 1회 일치
         일본으로 유학, [[1940년]] [[교토]](京都) 제일고녀를 다녔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1421094 일본인들이 부러워한 조선인 석주명] 국민일보 2009.09.14</ref> 귀국 후 [[1953년]] [[부산]] [[경남중학교]] [[영어]]교사가 되었다. 이후 부산연세실업학교 교수 등을 거쳐 [[1964년]] [[서울대학교]] 사범대 영어교육과 교수가 되었다. [[1977년]] [[전문직 여성클럽]] 한국연맹 회장이 되어 여성단체 활동에 뛰어들었고 교수직과 병행하였다. [[1985년]]부터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을 맡았다. 1990년 3월부터 [[1991년]] [[12월]]까지 정무제2장관을 지냈다.
  • 이기택 . . . . 1회 일치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 고문으로서 [[해운대구]]-[[기장군]] 갑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신한국당]] [[김운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가 이끌던 통합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중도층의 지지를 일부 흡수하긴 했지만[[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82|#]], 기존의 30석에서 15석(지역구 9석 + 전국구 6석)으로 의석이 반토막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였고, 같은 야권의 경쟁상대인 새정치국민회의에 비해 너무나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울특별시 지역에서는 양천구의 서경석 목사를 비롯한 쟁쟁한 후보들을 내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강동구 갑의 [[이부영]]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낙선을 면치 못했고, 거의 전지역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부산광역시에서는 전원 낙선이었다. 그나마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몇 개의 의석을 건지긴 했으나, 김영삼의 [[신한국당]]이 과반수 확보를 위해 황규선(이천시), [[이규택]](여주군), [[최욱철]](강릉시 갑) 등의 당선자 빼가기에 나서면서 폭망 확정.] 물론 김대중의 국민회의도 이때 상당히 부진했으나, 무엇보다 [[김종필]]의 [[자민련]]이 50석으로 크게 약진한 것과 크게 비교되었다.
  • 이름뿐인 관리직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이명미 . . . . 1회 일치
         === 단체전 ===
  • 이민아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 동문]][[분류:영진전문대학 동문]][[분류:대구상인초등학교 동문]][[분류:상원중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
  • 이별대행업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이선희 . . . . 1회 일치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80년대 가수]][[분류:199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싱어송라이터]][[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198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새한국당]][[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계명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계명문화대학교 교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여성 기업인]][[분류:한산 이씨]][[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이센고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이수진(치어리더) . . . . 1회 일치
         2014년 12월 6일에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 치어리더 특집편[* 타이틀은 '야구여신 최강전'][* [[삼성 라이온즈]], [[NC 다이노스]], [[기아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의 치어리더들만 출연.]에서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대표 3인[* [[이연주(치어리더)|이연주]], 이수진, 장혜원.] 중 한 명으로 출연하여, '셰어 로이드의 Swagger Jagger, [[트랜스픽션]]의 Get Show, [[크레용팝]]의 어이(Uh-ee)'에 맞추어 치어리딩을 선보였다.[* 치어리더 네 팀의 단체곡은 '[[타카피]]의 치고 달려라 2014', [[현아(가수)|현아]]의 '빨개요', [[갓세븐]]의 '하지하지마'.]
  • 이시영 (1882년) . . . . 1회 일치
         그는 서부자의 아들을 애국단에 가입시켜 그가 자발적으로 군자금을 희사하기를 원하였으나, 서부자는 끝내 외면했다. 군자금은 마련해야겠고 저쪽에서는 응할 기미가 없자 최후 수단으로 하루밤 그의 아들을 앞세우고 그 집에 침범했다가 정체만 드러낸 채 실패하고 말았다. 이때 일경에 체포되어 강도죄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뒤 다시 [[최준]](崔俊), [[안희제]](安熙濟), [[서상일]](徐相日) 등 동지를 규합하여 [[광복단]]을 조직했다. 광복단은 무기를 구하고 병사를 길러 일본 세력에 무력으로 겨루자는 목적으로 조직된 무장단체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 이신학 . . . . 1회 일치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포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이준승 . . . . 1회 일치
         * 대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1987년 5월 8일에 택시회사가 교통사고를 낸 운전기사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단체협약은 근로자의 권익보호와 복리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해석돼서는 안된다"며 "이 사고는 근로자의 잘잘못을 따질 것이 없이 업무수행 중 발생한 사고이므로 회사측이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고 대전지방법원 합의부로 환송했다.<ref>매일경제신문 1987년 5월 9일자</ref>
  • 이지아(배우) . . . . 1회 일치
         || 2011년 || 아테나:더 무비 || [[한재희(아테나:전쟁의 여신)|한재희]] || [* 드라마 <아테나 - 전쟁의 여신>의 극장판이다. [[아이리스(단체)|아이리스]] 시리즈는 모두 드라마 종영 후, 압축된 버전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
  • 이지찬 . . . . 1회 일치
         |첫 출장 = [[KBO (단체)|KBO]] / [[2015년]]
  • 이차영 . . . . 1회 일치
         [include(틀:충청북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이챠이챠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이케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이토 시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연예인]]
  • 인왕서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인축무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인터넷 카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인텔리 야쿠자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일념발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불교 용어]] [[분류:사자성어]]
  • 일본어 단어를 찾아보기 좋은 사이트 . . . . 1회 일치
         [[분류:웹사이트]] [[분류:일본어]]
  • 일본어 대패질 노하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일본어의 청음과 탁음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일본의 대학서열용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일요목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임대윤 . . . . 1회 일치
         [[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울진 임씨]][[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자손사고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사고]]
  • 자시키로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분류:주거]]
  • 자의식과잉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자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장남교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컬트 종교]]
  • 장민호 (1962년) . . . . 1회 일치
         '''장민호'''(1962 ~ )는 [[일심회 사건]]의 핵심 관계자로서 이적 단체인 일심회를 결성한 뒤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혐의로 [[대법원]] 3부는 징역 7년에 추징금 1900만원,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다.
  • 장성환 . . . . 1회 일치
         [[분류:1920년 태어남]][[분류:201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군인]][[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태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대한민국의 교통부 장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공군사관학교 동문]][[분류:조선경비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공군방공포병학교 동문]][[분류:기후 대학 동문]][[분류:도야마 대학 동문]][[분류:육군대학교 동문]][[분류:국방연구원 동문]][[분류:국방대학원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 공군 중장]][[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공군무관]]
  • 장우석 . . . . 1회 일치
         [[2002년]] 지금은 사라진 [[독립영화]]제작단체 '제7예술'을 통해 알게 된 이동린 감독([[독립영화]]제작소 '네오드라마 픽처스')이 연출한 단편영화 《북회귀선》(2002)에서는 녹음(보)을, 《나의 메멘토》(2003)에서는 조연출과 조연을 각각 맡았다.
  • 장익 (1933년) . . . . 1회 일치
         '''장익'''(張益, [[1933년]] [[11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이자 시민사회단체인이다. [[로마 가톨릭교회]] [[주교]]이며, 세례명은 십자가의 요한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비서신부 등을 거쳐 [[천주교 춘천교구]]장과 [[천주교 함흥교구]]장 [[서리]] 그리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제4대 [[부통령]]을 지낸 운석 [[장면]](張勉)의 넷째 아들이다. 본관은 [[인동 장씨|인동]]이다.
  • 전가의 보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분류:관용구]]
  • 전근족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전상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첫 출장 = [[KBO (단체)|KBO]] / [[2016년]] [[5월 21일]]<br>[[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광주]] 대 [[SK 와이번스|SK]]전 선발
  • 전태일 . . . . 1회 일치
         [[1972년]] 기독청년 전태일 1주기 추도식으로 시작된 이래 1980년대에 와서 노동운동가 전태일 추도식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그의 어머니 [[이소선]]은 아들의 유언에 따라 사망직전까지 청계천 노조 지원과 노동 운동 지원에 헌신하여 노동자들의 어머니 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84년]] [[서울]]에서 노동운동가들 중심으로 전태일기념사업회가 조직되었고, [[1985년]] 전태일기념관이 개관하였다. 이후 전태일재단이 조직되어 '전태일문학상'과 '전태일노동상'을 제정하여 수여하기 시작하였다. [[1987년]] [[6.10 항쟁]] 이후 노동단체들이 모여 그해 [[7월]]부터 [[8월]]까지 노동자 대회를 열었으며 7월 15일에는 그의 어록, 초안 등을 참고하여 '87 노동자계급 해방선언'이 개최되었다. [[1988년]] [[11월]] 전태일의 분신 자살을 기념하기 위한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 노동자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어 매년 [[11월]] 전국 노동자대회가 열리고 있다. [[2002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전태일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승인하였다. [[1996년]] 9월 19일에는 서울 중구 을지로6가에서 '전태일 거리'를 선포하였고, 이를 기념하여 민예총 회원들이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고 있는 모습을담은 걸개그림 앞에서 추모공연을 하였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92000289120003&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6-09-20&officeId=00028&pageNo=20&printNo=2680&publishType=00010 한겨레 1996,09.20]</ref> 이 '전태일 거리'에서는 전태일을 추모하기 위한 '전태일 거리문화제'가 진행되고 있다. 1999년부터는 민주열사를 비롯해 의롭게 숨진 시민의 기념표석을 세우는 서울시'유적지 사업'에 포함되어 평화시장 분신장소에 기념표석이 세워졌다. 하지만 2003년 청계천 복원공사로 철거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0043117 전태일 동판 철거 ‘물의’ 경향신문, 2003.12.01]</ref>
  • 절연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정대철 . . . . 1회 일치
         |직책 = [[KBO (단체)|한국야구위원회 총재]]
  • 정시제 고등학교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정재학 (1856년) . . . . 1회 일치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조선 독립 요구는 불온사상이며 만세시위는 폭도들의 소요 사태라는 일제의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폭동 진압을 목적으로 한 대구자제단을 창립하는 데 참여했다. [[박중양]]이 단장을 맡은 이 단체는 민간의 수상한 활동을 정탐하여 경찰에 알리는 역할을 맡았고, 정재학은 발기인 및 평의원으로 참가하였으며 개인 재산으로 경비도 지원했다.
  • 정종원 . . . . 1회 일치
         '''정종원''' (1896년 5월 22일 ~ 1977년 3월12일)은 [[조흥은행]] 5대 행장이다. 동아일보 창간발기인으로 참여했고 대한아이스하키협회 4대 회장도 역임했다. 1960년 불교단체인 [[법시사]]를 창립한뒤 1990년까지 발행된 불교 전문 잡지 [[법시]]의 초대 발행인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경상남북도에서 공직생활을 거쳐 평안남도에서 군수를 역임했다. 그의 부친은 [[정재학]] 대구은행 - 경상합동은행 행장으로 일제하 27년간 행장 직을 유지했다. 또한 그의 조카인 [[정운용]]은 해방 후 첫 조흥은행 행장으로 선임된 바 있다.
  • 정찬성 . . . . 1회 일치
         오미가라 미치히로, 손환진 등 이 외에도 한국, 일본의 단체에서 얻은 8승
  • 정형돈 . . . . 1회 일치
         정형돈은 경북 김천에서 출생하였고 한때 [[경상북도]] [[김천시|김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아직 초등학교 입학하기 이전에 [[경상북도]] [[김천시]]으로 옮겨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다.<ref>{{뉴스 인용|제목='불안장애' 정형돈은 누구? '웃기지 않은 개그맨'에서 '예능계 4대천왕' 섭렵|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82&aid=0000550194|출판사=부산일보|저자=김상혁 기자|날짜=2015-11-12}}</ref> 고교 시절 '금강 소리 하나'라는 교내 연극부에서 학년 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94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예총]] 산하 6개 지부가 주관한 제8회 '부산 청소년 예술제'에 참가하여 '청소년 연극축전' 부문에서 '연기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부산시 고등학교 대표로 서울에서 개최된 '동랑 청소년 연극제'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 젖은 낙엽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조길형(1962) . . . . 1회 일치
         [include(틀:충청북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조성모(가수) . . . . 1회 일치
         2010년에 공채 탤런트 출신 구민지와 결혼하여 유부남이 되었다. ~~아아 들린다 여심이 단체로 쪼개지는 소리가~~ 다만 결혼 전에 아내와 관련된 좋지 않은 루머가 돌아 둘다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조성모가 직접 나서 결혼식 당일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울먹거리며 아내에 대한 해명을 해야 했었다. 눈시울까지 붉힌 그의 진심이 전달된 덕인지 이후로는 여론도 안정을 찾아 별다른 소음이 일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상당히 애처가이다. 부인 얘기만 나와도 눈에서 꿀이 떨어지고 함박웃음이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결혼 이후, 설거지 탓에 주부습진에 걸렸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다. 이를 들은 다른 남성 출연자들의 어색한 반응에, 설거지는 당연히 남자가 하는 것 아니냐는 투로 대응한 바 있다. [* ~~물론 그것 역시도 그 자리 남성 출연자들에게 공감을 사지는 못하였다. 그의 말에 네?? 하고 멍하니 쳐다만 볼 뿐..~~] 결혼 4년만에 임신 소식이 전해졌고, 2015년 10월 득남하여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2018년 8월 26일, KBS2TV [[슈퍼맨이 돌아왔다]] 방영분에 아들 조봉연 군이 잠깐 등장하였는데 조성모를 쏙 빼닮은 외모로 눈길을 끌었다. 배우 [[봉태규]]의 아들인 봉시하 군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 종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죽으면 부처님 . . . . 1회 일치
         [[분류:불교]][[분류:일본 풍속]]
  • 줄리아나 도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중화소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지뢰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지소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지옥의 미사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인물]][[분류:만화가]]
  • 지혜주머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동음이의어]]
  • 진찰권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분류:의료]]
  • 진창현(음악인) . . . . 1회 일치
          *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으로 일본에 건너온 뒤 계속 눌러 살면서 [[조선적]]을 고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방문했을 때도 생각치 못한 고초를 겪었지만, 이후에도 한국 국적으로든 일본 국적으로든 전환하지 않고 계속 무국적이나 다름없는 조선적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한 때 [[종북주의자]] 수준으로 의심받기도 했지만, 조선적 소지자이면서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등 북한계 단체와는 접점이 없이 악기 제작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국적 문제로 말썽이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조센징'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여느 교포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차별은 감수하고 살아야 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현악기 장인이었음에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상훈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인 듯 보인다.
  • 진학교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집단등하교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차명진 . . . . 1회 일치
         * 2011년 [[10월 11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서울시장 박원순 후보를 "양아치", "삥" 등의 적절한을 총동원해 원색적이 비난해서 논란이 됐다. "박씨는 한 손으로 채찍을 들어 재벌들의 썩은 상처를 내리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삥을 뜯는 식으로 사업을 운영해왔다. 이는 악어와 악어새의 동거"라며 "시민운동이 아니라 저잣거리 양아치의 사업방식"이라고 박원순 후보를 양아치로 규다했에 대해 투명하게 재정상태를 공개해온 시민운동단체의 활동을 양아치로 묘사한 것에 많은 공가이 어다
  • 착각 영국인 기사도 사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사건]]
  • 착각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착취용 애완용 아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참깨를 빻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창작:좀비도시 . . . . 1회 일치
         좀비도시를 둘러싼 민간인 단체는 다음과 같다.
  • 창작:치킨교 . . . . 1회 일치
          * 커낼 샌더스 : 최초의 치느님 선교 단체 [[KFC]]를 만들어, 전 세계에 치킨교를 선교하였다.
  • 챠라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천송이 . . . . 1회 일치
         ** 아시아 선수권 대회 리듬체조 단체 은메달
  • 체육앉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분류:모에요소]]
  • 초식계남자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최남선 . . . . 1회 일치
         1920년대에 문화 운동 활동한 동시에 같은 해 1928년 10월 [[조선총독부]] 내에 [[식민사관]] 유포를 위해서 만든 어용단체인 ‘[[조선사 편수위원회]]’를 창립했을 때 편수 위원직을 맡았다. 1930년 8월 [[경성제국대학교]] 법문학부 교수와 조선총독부·조선사편수회 간부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과 [[만주]]를 중심으로 한 '극동문화연구'를 표방하며 조직한 [[청구학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했으며 1937년 중추원 참의를 맡아 1938년 3월까지 재임하면서 매년 1200원의 수당을 받았다. 1937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3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조선문화의 당면과제'를 연재해 조선문화의 일본화야말로 당면한 문제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이라며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사설을 기고했다. 이어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총독부 어용기관지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에 각종 친일논설을 게재했다.
  • 최다빈 . . . . 1회 일치
         올림픽 시즌 시작 전 부츠 문제와 모친상을 당한 최다빈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피겨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구성은 다소 낮췄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발휘,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고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8월 초 예정되어있던 <아시안 트로피>에는 출전 직전 기권하였으며 그랑프리 전 챌린저 대회로 출전한 첫 대회 <온드라이 네펠라 메모리얼>에선 종합 4위를 기록, 두 번째 출전한 <핀란디아 트로피>에선 종합 9위를 차지하며 다소 부진한 출발을 알렸다. 올림픽 시즌 첫 그랑프리 대회인 중국 대회(<[[컵 오브 차이나]]>)에 출전해선 총점 165.99점으로 종합 9위를 차지했다. 6차 대회인 <[[스케이트 아메리카]]> 대회 출전도 예정되어 있었으나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과 불과 1주 밖에 차이가 안나는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미국 대회는 출전 직전 기권했다. 12월 초 출전한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쇼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국내 비공인 개인 최고점을 올렸으나, 프리에서는 잦은 실수를 범해 8위로 추락 종합 4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1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린 제 72회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선 쇼트에서 64.11점을 받아 4위, 프리에서 126.01점을 받아 2위에 오르며 종합 2위를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1,2,3차 총합 540.28점으로 평창행 올림픽 티켓을 1위로 따내면서 당당히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올림픽 출전 직전 프로그램 점검 차 출전한 피겨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선, 쇼트 5위와 프리 4위, 종합 4위(190.23)에 랭크되며 자신의 4대륙 최고 성적을 갈아치웠다. 또한 종합 점수는 개인 최고점에 불과 0.8정도 모자란 성적이었다. 4대륙에서 자신감을 얻고 출전한 올림픽에선 단체전 무대에서 65.73을 받아 쇼트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진 개인전 여자 싱글에서 불과 열흘만에 67.77로 다시 한 번 개인 최고를 갈아치우며 전체 30명의 선수 중 8위에 올랐다. 이어진 프리스케이팅에선 131.49를 받아 개인 최고점을 3.05점 끌어 올렸고 개인 최고 점수는 무려 8.15점 높인 199.26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쇼트와 프리에선 각각 8위에 올랐지만 종합 점수에서 7위에 오르며 [[김연아]] 이후 대한민국 선수 최고 등수를 마크했다. 한 달 후 열린 피겨 세계선수권에선 무너진 부츠로 인해 쇼트 21위로 부진했고, 공식연습 중 발목 부상이 염려되어 결국 프리스케이팅에는 기권했다. 하지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무대 2장의 티켓을 가져온 장본인이고, [[김연아]] 이후 ISU 공인 최고점수와 올림픽 최고 순위(7위)를 마크하는 등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로서 활약한 점은 이번 시즌의 가장 큰 성과였다.
  • 최동 . . . . 1회 일치
         |제목=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 츠츠모타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은어]] [[분류:사기]]
  • 치쿠아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칫빠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분류:인체]]
  • 카고메카고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카라스노 고교 . . . . 1회 일치
         전반적으로 수비력이 떨어지는 팀이었지만, [[후쿠로다니 학원|후쿠로다니 학원 그룹]]과의 단체 합숙 등으로 팀원들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이런 느낌은 많이 사라진 분위기. 다만 수비력이 떨어지던 시절에도 희대의 사기캐인 [[니시노야 유|주전 리베로]]와 윙리베로(...)급 활약으로 수비를 [[캐리]]했던 [[사와무라 다이치|주장]]이 있었다.
  • 카리아게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카마세이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분류:개]]
  • 카맛테쨩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카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카미마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카시오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카이고로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카치구미 . . . . 1회 일치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패전하기 직전인 1945년 7월, 브라질 일본인들이 조직한 신도연맹(臣道連盟)이라는 단체가 [[상파울로]]에서 결성되었다. 신도연맹은 이들의 조국인 '''일본을 응원하고, 승리를 믿는 조직'''으로서, 7월에 발족하고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12월에는 회원은 3만 가구에 달하게 되었다.
  • 카케오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카타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카타카나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카타테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칸닌부쿠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칼리파 하프타르 . . . . 1회 일치
         2014년 2월, 하프타르는 TV를 통하여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반 국민회의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키라고 선언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의회 의사당을 장갑차와 로켓포로 공격하여 의회 권한 정지를 선언했으며, 국민군은 벵가지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안사르 알 샤리아' 등 이슬람계 세력에 공격을 퍼부었다. 이 사실상 [[쿠데타]]를 계기로 하여 리비아 국민군에는 세속주의 반군 세력이 모두 결집하게 된다. 2014년 6월 국민투표(유권자 중 18%, 약 63만 명 투표)를 거쳐 동부지역에서는 대표자 정부(the House of Representatives)가 2014년 8월 4일 창립되어 일반 국민회의를 대체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국민군(the Libyan National Army)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 캡슐 호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캬바쿠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켄카양성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코나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동음이의어]] [[분류:인터넷 은어]]
  • 코노나가레 주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사상]]
  • 코뮤장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코타츠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코피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쾌락절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쿄로충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속어]]
  • 쿠와바라 쿠와바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분류:주문]]
  • 쿠챠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쿨 비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분류:환경보호]]
  • 키라키라 네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분류:이름]]
  • 키레이고토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키리후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키모오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키모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키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킷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킹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만화]][[분류:역사 만화]]
  • 타마노코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타베아루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취미]]
  • 타이라노 마사카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사]]
  • 타카하타 유우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연예인]]
  • 타코나구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타코베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타쿠마 마모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인물]]
  • 타타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분류:오컬트]]
  • 타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탈북자 망명정부 . . . . 1회 일치
         2016년 일부 [[탈북자]] 단체가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한 [[망명정부]]. 가칭 '북조선자유민주망명정부'로 알려져 있다. 2017년 초에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실제로 설립될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 태영호 . . . . 1회 일치
         외교관으로서 태영호는 런던의 극좌단체 행사에 참가하여 북한을 옹호하는 연설을 했으며, 언론이 북한에 대하여 자극적인 보도만을 일삼는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태영호는 영국 내의 탈북자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 털이 난 정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관용어]]
  • 테헤페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텐프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토시코 막스 . . . . 1회 일치
         [[분류:영국 인물]][[분류:일본 인물]]
  • 토오리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토요토미 히데요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인물]]
  • 토탈워: 쇼군 2/요원 . . . . 1회 일치
         >닌자는 술책과 잠입의 달인입니다. 이들의 닌자술은 미발견된 채로 적 영토에서 움직이는 동안, 적을 은밀히 감시하거나 군대나 읍성에 파괴 공작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들 역시 적 장군과 요원 둘 다 가리지 않고 죽이기 위해 어둠 속에 숨어서 공격하는 전문적인 암살자입니다. 또한, 이들의 잠입술은 닌자를 가문 군대의 매우 소중한 정찰자로 만들어 줄 뿐 아니라, 닌자의 암흑단체는 우호적인 지방을 시찰하면서, 군대가 오가는 최근 정황을 잘 파악해둘 수 있습니다.
  • 톤데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통합실조증 . . . . 1회 일치
         [[분류:질병]][[분류:일본어]]
  • 트로피코 4/건물 . . . . 1회 일치
         ||트로피코 섬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국제지원단체가 시민들에게 음식과 의료서비스를 지원합니다. 언제든지 해산 가능합니다.||
  • 특별고등경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사]]
  • 파리피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파치카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페이데이 갱 . . . . 1회 일치
          [[미국]]인. 본명은 톰 비숍(Tom Bishop). 배우 및 성우는 [[론 펄먼]]. 베인이 [[폭주족]] 단체인 오버킬 MC에 심어놓은 내부인이다. 정식 페이데이 갱단원이 되는 대가로 오버킬 MC의 동료들을 배신했다. 작중 나이는 61세. [[환갑]]을 넘었다.
  • 페이퍼 컴퍼니 . . . . 1회 일치
         [[분류:기업]][[분류:영어]][[분류:일본어]]
  • 편차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포렴을 팔로 밀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포챠포챠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폴리스 . . . . 1회 일치
         고전기 그리스 시대의 폴리스는 정치적 주권을 가지고 자치와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헬레니즘 시대]]에는 대부분의 폴리스는 자치권을 상실하여 단순한 지방자치단체나 행정구역으로 전락했다.
  • 푼스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의태어]]
  • 풍평피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프레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프로라 . . . . 1회 일치
         [[나치]]가 집권하던 1936년 당시 "Kraft durch Freude"[* 즐거움을 통한 힘. 기존의 사민당계, 공산당계 노조를 흡수하고 그 자산을 강탈하여 설립한 일종의 어용노조인 '독일노동전선' 산하의 단체로서, 노동자 복지와 레저 분야를 주로 담당하였다.]이라는 기관에 의해 건설을 시작했다. --쓸데없이 커다란걸 좋아하는 나치답게-- 20,000명의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시설로 설계되었다고. 하지만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건설이 중단되었다. 이후 프로라는 군사 시설로 사용되었고, 전쟁 막바지에는 피난민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소련군과 동독군의 막사로 사용되었다.
  • 프리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피우진 . . . . 1회 일치
         [[여군]]에 대하여 어느 정도 여성의 병 복무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여군 간부직을 늘려달라는 여성단체의 요구에 대하여 "군대를 모른다"고 비판하며 "내가 겪은 '남자들로만 이뤄진 징집 군대'로선 여군 간부는 자리가 비좁다. 여군 간부직을 늘리자면 여군이 더 필요한데, 여자는 죄다 간부직만 차지할 것이냐."고 한 바 있다. 위 일화도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현 국군 안에서 여군들이 마주하는 부당한 처우와 차별들에 대해서 직접 겪고 싸워본 사람이기 때문에 의미있는 발언. 다만 일반 여군들이 병 복무 시 마주하게 되는 부당처우 및 성차별적인 위협을 효과적으로 막을 방법이, 예전보다는 나아졌으나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이 같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모범 군인으로서 소령까지 진급했음에도 번번이 차별을 피할 수 없었던 피우진 본인의 일화만 생각해봐도...)
  • 하마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하야테처럼!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만화]]
  • 하이큐!!/등장인물 . . . . 1회 일치
         도쿄 단체 합숙에 참여한 학교.
  • 하츠모우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하카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전통의상]]
  • 하쿠다 켄 . . . . 1회 일치
         [[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계 일본인]][[분류:일본으로 귀화한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
  • 하트플러스 마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분류:마크]]
  • 한교원 . . . . 1회 일치
         2015년 5월 23일 친정팀인 인천전에서 수비수 [[박대한]]을 '''폭행'''하는 [[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kl/126480/127059|반칙을 저질렀다.]]--한교원투펀치-- 한번도 아니고 두번 연속으로. 첫 번째 주먹이 빗맞자 쫓아가서 주먹을 다시 날렸다. 그것도 '''중계 화면으로 방송'''되는 도중에... 게다가 겨우 전반 5분만에 있던 일이었으며 바로 퇴장을 당했다. 그의 커리어 역사상 첫 퇴장이라 한다. 이게 얼마나 어이 없는 반칙이었냐면, 스로인 상황에서 모든 선수들의 시선이 공에 집중되어있던 사이, 갑자기 한교원이 퇴장당하자 전북 선수들이 달려와 이유를 물었는데 주심이 상황을 설명해주자 아무런 항의 없이 그냥 다시 돌아갔다. 이후 카메라가 홈 팬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서포터즈들이 단체로 넋이 나간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한냐 가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한방의학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의료]]
  • 한행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분류:수행]]
  • 할머니가 기른 아이는 세푼싸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속담]]
  • 함가연 . . . . 1회 일치
         {{금|[[2007년]] 제10회 슈퍼코리아컵 댄스스포츠 선수권대회 라틴부문 6위|단체}}
  • 함대 컬렉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게임]]
  • 해자를 메꾸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핼로워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허가윤 . . . . 1회 일치
         * 2013년 2013 설특집 아이돌스타 육상 양궁 선수권대회 양궁 여자 단체 은메달
  • 허종 (1939년) . . . . 1회 일치
         [[1939년]] [[4월 29일]] [[경성부]]에서 [[허헌]]과 그의 계비 [[유덕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8년]] [[4월]] 아버지 [[허헌]]이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 참석차 온 가족을 이끌고 [[평양]]으로 갈 때, 허헌, 유덕희내외, [[허정숙]], [[허근욱]] 등과 함께 월북하였다.
  • 헤이안 시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사]]
  • 헤타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현재덕 . . . . 1회 일치
         광복 후 좌익 미술인 단체인 [[조선미술동맹]]의 아동미술분과와 [[동지사아동원]]에 가담했다. 동지사아동원에서는 필명이 박두루미인 [[박인범 (작가)|박인범]]과 함께 어린이들 대상의 구연 동화 활동을 했다. [[한국 전쟁]] 기간 중 현덕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월북했으며, 서울에는 부인과 딸을 남겨두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아동문학가로 일했다는 사실만 단편적으로 전해졌을 뿐, 활동상에 대해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 현재원 . . . . 1회 일치
         * 1996년 《[[구인회 (문학 단체)|구인회]]의 동상이몽》
  • 혐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호농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혼모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혼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홍명희 . . . . 1회 일치
         해방 뒤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하다 [[여운형]]과 함께 [[근로인민당]]을 조직했고 여운형 암살 후 지도자가 되기도 했으나 환경과 리더십의 부족으로 실패했다. 결국 이후 월북했다. 월북 계기는 1948년 4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한 제정당ㆍ사회단체 연석회의’에 [[김구]] 등과 함께 참석했다가 북한에 남았다. 그의 월북 동기에는 '친일파들과 결탁하여 단독정부 수립운동을 강행추진하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는 견해가 있다. ~~근데 [[김일성]] 정권도 핵심 실무인력에서는 친일 청산 안했잖아?~~
  • 홍성유 . . . . 1회 일치
         이후 《[[신사조]]》 주간, 《[[신사조]]》 집필위원 겸 편찬위원,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이사, [[한국저작권협회]] 부회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소설가협회]] 회장,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위원,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분과 회장,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 위원 등을 지냈다.
  • 홍세화 . . . . 1회 일치
         2010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이 되었고, 2010년 민주노총과 한신대학교에서 기획한 노동자 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진보신당의 당원으로 활동하다 2011년 11월엔 <[[진보신당]]>의 당대표로 선출되어 활동하기도 했다. 2013년 계간지 <[[말과활]]>을 창간했다. 이후 2015년 벌금형을 선고받고 돈을 내지 못해 옥살이를 해야하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회단체 일명 '[[장발장 은행]]'의 은행장으로 재직했다.
  • 홍해성 . . . . 1회 일치
         그러나 [[1931년]]에 [[극예술연구회]]를 창립하여 재기했다. 홍해성은 신극운동 단체인 극예술연구회의 공연작을 연출하며 연극계의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극예술연구회에서의 연출작은 총 9편이다. 이 시기에는 [[경성방송국]] 라디오 드라마 연출을 병행하고, 연극과 관련된 기고 활동도 활발히 벌였다.
  • 후리소데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전통의상]]
  • 후지와라 노리카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연예인]]
  • 후지와라 섭관가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사]]
  • 후카다 쿄코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여배우]] [[분류:O형]]
  • 후쿠오카 예비교생 살인사건 . . . . 1회 일치
         피해자 키타카와 히카루는 구마모토 현 아사쿠사 시(熊本県天草市) 출신이다. 현지에서는 수재로 평판이 좋아, [[진학교]]로 알려진 현립 구마모토 고등학교(県立熊本高)에서 공부를 했으며, 댄스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검도]]를 배워서 검도 2단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검도부 단체부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2015년 봄에는 [[도쿄대학]]에 응시했으나 실패하여, 후쿠오카 시내에서 동생과 같이 살고 [[예비교]]에 다니며 공부를 했다.
  • 흥친왕 . . . . 1회 일치
         [[분류:유교 신자|이희]][[분류:과거 급제자|이희]][[분류:대한제국의 황족]][[분류:대한제국의 부장]][[분류:대한제국의 친왕]][[분류:일본의 왕공족]][[분류:육군 장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한국의 귀족]][[분류:테러 피해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전주 이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한일 병합 조약 관련자]][[분류:운현궁]][[분류:대한제국 고종]][[분류:대한제국 순종]][[분류:영선군|영선군]][[분류:금척대훈장 수훈자]][[분류:서성대훈장 수훈자]][[분류:이화대훈장 수훈자]][[분류:19세기 한국 사람]][[분류:19세기 한국의 군주]]
  • 희빈 장씨 . . . . 1회 일치
         [[조선 숙종|숙종]]의 복위 명령에 병조판서 [[서문중]]은 이조참판 [[박태상]] 등과 함께 사람을 모아 ‘9년·6년과, 아들이 있고 아들이 없는 것은 어느 것이 중하고 어느 것이 경한가?’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인현왕후]]가 비록 희빈 장씨보다 더 오래 왕비로 있었으나 왕세자의 생모인 희빈 장씨가 더 귀하다는 뜻이다. 정원(政院)은 조정백관과 신중히 공론을 한 후에 결정지어질 때까지 명을 받들 수 없다는 거부의사를 표명했다.<ref>《조선왕조실록》숙종 26권, 20년(1694 갑술 / 청 강희(康熙) 33년) 4월 13일(경진) 2번째기사</ref> [[인현왕후]]의 복위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노론]]과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소론]]의 격렬한 언쟁이 오가던 가운데<ref>《숙종실록》에는 누락된 내용으로 《승정원일기》 4월 12일 ~ 4월 16일까지의 기사에 수록되어 있다.</ref> 4월 16일에 이르러 우의정 [[윤지완]], 공조판서 [[신익상]], 한성부우윤 [[임상원]], 병조참의 [[이유]] 등의 [[소론]]의 대표 인물들이 단체로 사직상소를 올리기에 이르렀는데<ref>《승정원일기》 숙종 20년 4월 16일 (계미) 원본356책/탈초본18책</ref> [[조선 숙종|숙종]]이 갑술환국을 일으키며 중앙을 [[소론]] 중심으로 채웠던 만큼 사태가 심각했다. 이 사건은 엿새 후인 4월 17일, 영의정이자 소론 영수였던 [[남구만]]이 '이미 복위하라는 왕명은 내려졌고, 자식이 어미(國母: [[인현왕후]])의 죄를 논하며 도로 쫓아내라 마라 의논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고 [[소론]]을 중재하여 결국 [[인현왕후]]가 왕비로 복위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ref>『숙종 20년 4월 17일 1번째 기사』</ref> 이 사건을 계기로 [[소론]]은 희빈 장씨를, [[노론]]은 [[인현왕후]]를 지지하는 세력이 되었는데 [[소론]] 영수인 [[남구만]]은 중립을 지켰다.
  • 히나마츠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 풍속]]
  • 히모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히키니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히키코모리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히토데나시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 히토모도키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비속어]]
  • 히토쯔마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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